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수출업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무서운 ‘공포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수출 경기의 급격한 악화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바이러스 유출입을 막기 위한 국가 간 장벽이 높아지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교역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원자재-자본재-중간재-소비재로 얽힌 글로벌 생산분업 체계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교역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불확실성의 확대가 더 큰 위기 요인이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충격이 얼마나 클지, 또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당분간 수출 경기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정부와 수출 업계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비상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온 국민이 힘을 모으듯 수출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업계가 합심해 총력 대응에 나섰다. 분야별 장단기 대응책을 살펴본다.
▶울산항에서 수출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들| 연합
정부 중장기 대책
2019년 한국 경제는 수출시장 침체와 성장세 둔화를 함께 겪었다. 2018년 2.7%를 기록한 국내총생산(GDP) 실질성장률이 지난해 2.0%로 떨어진 데에는 상품 수출이 감소해 국내 제조업의 생산과 투자까지 위축된 영향이 컸다. 2020년은 거꾸로 수출과 성장세가 함께 회복하는 흐름을 국내외 대부분의 연구기관이 예측했다. 바탕에 깔린 예측 근거는 세계 교역이 회복세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무역 협상의 진전에 따른 불확실성 완화에다 신흥 경제권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 등에 힘입어 세계 교역이 신장률이 2019년 1.3%에서 2020년 2.4%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수출 강국인 한국에 세계 교역의 신장은 곧 수출 증가이며 성장세 회복의 청신호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악재가 등장해 수출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기업 자금애로 해소위해 무역금융 3조 확대
상품 수출이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2019년 4분기부터다. 월별로 보면 10월부터 꾸준히 수출 감소 폭이 줄어들면서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왔다. 특히 2020년 2월 수출은 반도체와 선박 등 주력 수출 산업의 업황 호전에 힘입어 15개월 만에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수출 회복 흐름에 급제동이 걸렸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국내 수출기업의 수출전망 경기실사지수(BSI)는 2019년 11월 87에서 2020년 2월 95로 꾸준히 상승 추세를 보이다 3월 전망치는 다시 85로 급락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이 3월 수출 실적에서부터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수출에 미치는 파급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수출 차질 요인들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2020년 수출과 경기 회복의 동력이 소실될 뿐 아니라 중장기 성장 기반마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지속되는 동안 수출입 활동의 일시적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이에 따른 기업들의 자금 애로를 해소하는 방안부터 내놓았다. 우선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국책 금융기관을 통해 공급하는 무역금융 규모를 올해 총 260조 3000억 원대로, 당초 계획보다 3조 1000억 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로써 2020년 무역금융은 전년에 견줘 28조 1000억 원(12.1%) 늘어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 대상 무역금융은 역대 최대치인 105조 원을 공급한다.
무역금융은 해외 수입자의 대금 미결제나 결제 지연에 대한 보험 보상, 대외채권 회수 대행, 수출계약 이행 지체 또는 물류 차질로 인한 피해 지원, 수출 채권의 조기 현금화를 위한 보증 지원 등에 쓰인다. 수출이 주력 매출인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제공하는 시설투자 및 운전 자금 대출도 당초 6조 9000억 원에서 8조 원으로, 1조 1000억 원 늘리기로 했다. 수출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 확대 방안은 정부가 마련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반영됐다. 예컨대 2020년 본예산에서 2960억 원으로 책정된 정부의 무역보험기금 출연액이 추경에서 500억 원 더 증액됐다. 정부는 추경에 반영된 수출기업 지원 예산의 경우 6월 말까지 모두 집행하기로 했다.
수출 역량 확충 위해 마케팅 지원 총력
코로나19 확산에 전 세계가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기업의 시장 개척 기회가 여전히 열려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정부는 유망 시장 발굴과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역량 확충을 위해 수출 마케팅 지원에 총력을 쏟기로 했다. 2020년 수출 마케팅 지원에 50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지역별 ‘수출활력 촉진단’ 가동, 전시회 참가와 무역사절단 지원 등에 나선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요 교역 상대국의 입국 제한도 기업의 수출입 활동을 당장 제약하는 요인이다. 입국 제한은 방역 차원의 조치인 만큼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어야만 풀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이에 외교부는 한국발 입국을 제한한 국가들 가운데 교역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나라들을 상대로 기업 관계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용하도록 하는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는 화상 상담 확대, 온라인 전시관 신설 및 확충, 긴급 해외 현지 마케팅 대행 등으로 수출기업의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화상 상담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본부와 전국 13개 지방지원단을 통해 국내 기업의 수요를 접수하고, KOTRA 해외무역관에선 다시 신청 기업별 현지 시장성 평가를 토대로 적합한 구매자(바이어)를 발굴해 1대 1 상담을 주선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KOTRA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깔면 집이나 사무실에서 온라인 영상통화로 상담을 할 수 있으며, KOTRA는 무료로 통역서비스까지 지원한다.
산업부와 KOTRA는 1월 1차로 51개 회사를 선정해 KOTRA 해외무역관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현지 마케팅과 거래선 관리, 수출계약 체결 지원, 각종 인·허가 취득과 현지 유통망 구축 등이 지원 내용이다. 산업부는 3월 12일부터 이달 말까지 2차 지원 사업 대상을 모집하고 있다. 이번에는 지원 대상 기업을 120개 사로 늘리고, 지원 내용도 강화했다. 선정된 기업마다 코트라가 운영하는 수출전문위원을 배정해 수출 목표 시장에 맞는 진출전략 컨설팅을 해주고, 현지 시장조사, 인증 취득, 전시회 참여 등 수출 전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2월 20일 서울 트레이드타워에서 열린 국무총리 주재 확대무역전략조정회의| 연합
범정부 차원 민관 합동 대응체계 가동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교역의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 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에 맞는 다각적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과 생산 분업 체계의 약화는 국내 주력 제조업에 언제든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세계 교역의 중심에 편입된 가운데 중간재의 수출 비중이 큰 나라는 공급망 불안 위험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그동안 산업부 장관과 무역협회장이 공동의장으로 주관해온 무역전략조정회의를 국무총리 주재 회의로 격상해 범정부 차원의 민·관 합동 대응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2월 20일 열린 확대무역전략조정회의에서는 우선 6대 분야(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의 주요 국가별 공급망 점검과 함께 앞으로 위기 경보 관찰(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품목 및 유형에 따라 수급 안정화에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범용성이 높은 부품과 소재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국외 공급망이 흔들릴 경우를 대비한 다양한 대응 방안을 이미 마련했다. 업계 공동의 적정 재고 확보, 수입선 다변화, 국내 대체 생산 확대 등이 주요 대응 방안이다. 정부는 7개 관련 부처와 15개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협업채널을 가동해 대응 방안에 따라 환경·노동제도의 탄력적 운영, 특례 제도 적용, 세제 및 금융 지원 등에 나설 방침이다.
투자 활성화와 산업 기반 확충의 기회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국내 투자 활성화와 산업 기반 확충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인건비 등 비용 절감만 중시해온 공급망의 한계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제는 단순한 비용 경쟁력보다 수요-공급 기업 간 연계성, 수급 리스크의 안정적 관리, 정보와 물류 인프라의 발달 정도 등을 두루 고려한 공급망 구축이 국내 업계의 공통 과제가 됐다.
위험 분산과 공급만 안정을 위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해외 진출한 기업의 국내 복귀(유턴)와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중심으로 유턴 기업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확충하고, 항만 배후단지 입주 기준 완화 등 파격적인 지원을 적용하기로 했다. 국내로 복귀하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4조 5000억 원 규모의 시설투자 지원 프로그램도 신설했다. 또 기존 국내 기업의 설비 증설에 대해서도 유턴 기업과 마찬가지의 세제 혜택을 적용할 수 있도록 상반기 중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외국기업의 투자는 국내에 직접 공장을 짓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뜻하는 ‘그린필드형 투자’가 집중 유치 대상이다. 이런 그린필드형 투자에는 2020년부터 현금지원 한도를 투자액 대비 30%에서 40%로 확대했으며 현금지원 대상 업종도 늘렸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첨단 기술과 핵심 제품을 보유한 외국기업에게는 정부와 지자체, 투자유치 기관이 공동으로 투자의 전 과정에 걸쳐 일괄(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기 처방보단 무역 구조의 혁신 강조
수출용 원료와 자재 조달을 특정 국가나 특정 기업으로부터 수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우 제 3국 등으로 공급망 분산을 유도하는 정책도 추진된다.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글로벌 공급망 전환 보증’이 신설됐다. 해외에서 생산이나 공급을 갑자기 중단해 국내 원·부자재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제3국으로부터 수입에 소요되는 자금의 대출과 선급금을 보증해주는 제도이다. 또 제3국 대체 상품의 품질 인증이 필요하면 서류심사만으로 인증 변경을 승인하고, 사후에 성능시험을 진행하는 이른바 ‘패스트랙’ 절차를 밝게된다.
업계가 공동으로 자재를 구매하거나 물류를 공유하는 ‘밀크런(Milk Run)’ 제도도 공급망 구조 개편 방안의 하나이다. 밀크런은 우유 회사가 축산 농가를 차례로 돌면서 원유를 수거하던 데서 유래한 물류 시스템이다. 정부는 이런 밀크런 방식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개별 기업이 공급선을 다변화하면 여기서 발생하는 통관 및 물류 부담이 생기는데 이를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반기 중에 우선 주요 소재·부품의 생산 국가와 품목별 수요 등을 조사해 순위가 높은 밀크런 대상 지역과 품목을 선정하기로 했다. 이어 업종별 단체 등을 통해 밀크런 활용 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을 찾아 그룹화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물류방식, 비용 분담 등 구체적 실행방안은 수요-공급 기업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고, 통관 절차 간소화 등 정책적 지원은 맞춤형으로 병행할 방침이다.
코로나19이 부른 수출 위기는 단기 처방만으로 돌파할 수 없다. 긴급 금융 지원을 늘려 수출 기업의 애로를 해소하는 방식은 임시 방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하거나 세계 통상 환경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진다면 임시 방편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특정 시장과 특정 품목에 치우친 무역 구조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언제든 다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정부는 통상 환경의 변화와 대외 위험(리스크)에 흔들리지 않을 무역 구조의 혁신을 강조한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