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트론 직원들이 2019년 국산화에 성공한 다이아몬드 촉매제를 연구하고 있다.
‘악전고투’ 수출 중소기업 현장 가보니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있는 이너트론은 유무선 통신기기 분야에서 최고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으로 2019년 4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글로벌 강소기업에 뽑혔다. 수입에 의존하던 디지털 무선마이크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했고, 5세대(5G) 통합형 멀티플렉스 장비를 개발해 일본·미국·유럽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일본 등에서 수입하던 다이아몬드 촉매제(슬러리)와 반도체 부품인 형광막을 국산화해 발광다이오드(LED) 패키지를 만드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등 반도체 부품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이너트론은 110건의 특허출원 등 기술 투자를 기반으로 전 세계 대기업 15곳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2022년 수출 1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수출 전선에 비상
그러나 최근 코로나19로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2020년 1월 말부터 중국에 있는 협력업체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일부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이너트론의 주 매출원은 이동통신 기지국에 들어가는 수동 상호변조(PIM) 측정장비와 유연성 무선주파수(RF) 필터 등이다. 모두 이너트론이 직접 개발했지만 일부는 국내외 업체와 협력해 생산하고 있다. RF 필터처럼 단가가 워낙 낮아 국내에서 생산하기 힘든 부품은 중국 협력업체가 맡았다. 이너트론 서수덕 연구소장은 “그런 제품은 중국에서 받아 국내에서 검사를 한 뒤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기업에 납품해야 하는데, 중국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납기를 맞추기 어려워졌다”며 “고객사에 양해를 구하고 납기를 미룬 것도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고객들이라 아직은 양해해주는데 더 길어지면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또 앞으로 중국에 생산을 맡겨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계속 밀리면 피해가 누적될 겁니다. 중국 협력업체는 최근에 자기 공장은 열었다고 하는데, 그쪽도 현지에 다른 협력업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협력업체들의 30~40%만 가동한 모양이더라고요. 2월 말에는 정상 가동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협력업체 가동률이 저조해 지금 봐서는 3월 말이나 돼야 생산을 재개할 것 같습니다.”
중국 협력업체에 생산을 위탁하던 부품을 최대한 국내에서 해결하기 위해 이너트론 직원들은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과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에 있는 협력업체들에 부랴부랴 요청했지만, 과부하가 걸린 건 국내 협력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기존보다 훨씬 많은 일이 그 업체들에 긴급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시간은 없는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니, 우리도 과부하지만 협력업체들도 과부하가 걸려서 걱정입니다.”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있는 이너트론 사옥
일본 출장도 어려워 피해 더 커질 듯
게다가 이너트론의 주된 업무가 대량 양산 건이 아니라 개발이나 샘플 수준이기 때문에 협력업체들은 큰돈이 되질 않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그쪽에선 ‘수량이 많은 양산 제품을 생산해야 해서 샘플은 맡기 힘들다’고 계속 얘기하는데 우리도 방법이 없잖아요. 이제 와서 다른 신규 업체를 찾는 것도 힘들어 그냥 계속 부탁하고 있습니다. 전화로만 얘기하다 안 되면 직접 찾아가서 사장님한테 부탁하죠. ‘상황이 이런데 어떡합니까. 이번만 봐주세요’ 하고 있습니다.”
국내 협력업체에 맡기면 생산단가는 자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보통 국내 견적 가운데 재료비만 가지고 중국 협력업체들은 납품까지 할 수 있다. 국내 생산단가가 중국보다 평균 40% 비싸기 때문에 그만큼 이윤은 줄어든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너트론이 위기(리스크)관리 차원에서 개발까지 중국에 맡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개발까지 맡겼다가 이번처럼 문제가 생기면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생산만 어려워진 게 아니다. 해외 영업도 어려워졌다. 특히 2018년 이너트론 수출액 가운데 78%를 차지한 일본이 문제다. “일본에 출장을 자주 갔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출장 대신 메일로만 연락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프로젝트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질 않거든요. 그쪽 고위급과 얘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지금 당장은 두드러지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피해로 다 쌓이죠.”
▶이너트론 직원들이 통신기기 관련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기회가 되는 부분 분명히 있을 것”
무엇보다 회사 차원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직원의 안전이다. 100명이 넘는 직원 가운데 한 명이라도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노심초사다. ‘실내에서 늘 마스크를 쓰고 다녀라’ ‘퇴근하면 집 밖에 나가지 마라’ ‘주말에도 외출을 자제하라’ 등 주의를 당부하고 직원들도 노력하고 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큰 위기 상황이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기회가 될 여지도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의 이동통신 대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에 생산을 맡겼다. 생산 거점을 아예 중국에 놓고 있던 기업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중국만 믿고 가기에는 힘들겠다’고 판단한 미국 기업들이 공급처 다변화 차원에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의 몇몇 대기업으로부터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이너트론에서 생산할 수 있는지 검토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동통신 쪽은 중국의 제조단가가 워낙 저렴하지만 기술력은 한국을 알아주기 때문에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데가 한국밖에 없거든요. 코로나19로 힘들어진 부분도 있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같이 수출 위주로 하는 동종업체들은 사정이 비슷할 거 같고, 기회가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대기업보다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치명적일 수 있다. 서 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한꺼번에 생기는 게 아니라 계속 쌓일 수 있다.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대출받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자금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할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실질적 지원 받도록 노력”
이에 따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자금 지원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수출지원 대책을 3월 4일 내놓았다. 지원 대상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수출입 지연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감염증 예방·진단 관련 업종을 영위하는 벤처·스타트업 ▲혁신형 산업 주체기업(브랜드K, 규제자유특구 입주기업, 스마트공장 보급기업)이다. 선정된 기업에는 전년도 수출 규모에 따라 최대 1억 원까지 수출바우처(사용권) 형태로 지원한다. 중기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약 103억 원의 특별예산을 편성해 지원할 계획이다. 기존 수출지원기반활용(수출바우처) 사업 참여기업의 수출마케팅 활동 애로 해소를 위해 지원 기간을 최장 6개월까지 늘린다.
아울러 보조금 사용률이 저조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사업 재참여 제재도 한시적으로 완화해 피해기업을 지원한다. 중기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해 관련 지침을 개정하고 상반기 집행 예산을 재편하는 등 속도감 있는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 피해기업 지원을 위한 대체 수입선 발굴과 온라인 전시회 참여 지원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수출바우처는 규모·역량별 맞춤형 해외마케팅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라며 “중기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