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영화 <할로윈>의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독재자 임모탄 조/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악당 베인
요즘이 아니라도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마스크를 쓴 학생들을 본다. 미세먼지 때문이라면 실내에서는 쓸 필요가 없는 것이고,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기도 아닌데 말이다. 감기에 걸렸나? 왜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다 어떤 교수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을 하지 못한 경우 종종 그런다고. 그렇구나, 마스크를 쓸 만한 명분이 있었구나.
그렇더라도 마스크 쓴 학생들을 보면서 강의를 하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왜 그럴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것에서 권력자의 불투명성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선글라스를 써서 눈을 가리거나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얼굴 정보 일부를 숨기는 것이다. 마주 보고 대화할 때 얼굴의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대화는 말 그 자체뿐만 아니라 눈의 표정, 입과 주변 근육의 움직임 등도 많은 말을 한다. 그런 표정의 변화에 담긴 정보야말로 말보다 더 진실을 전하기도 한다.
요즘처럼 마스크착용이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서로 얼굴 전체를 공개한 채 대화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민주적인 것이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만약 선글라스나 마스크로 얼굴의 일부를 가린 채 대화를 한다면, 거기에는 권력관계가 개입되어 있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즉 자신의 정보를 가린 채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힘이 센 자다.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낸 채 대화에 임해야 한다. 자신은 투명하게 드러낸 채 보이지 않는 상대와 이야기하는 건 불안을 넘어 무서운 일이 된다.
취조실의 혐의자를 떠올려보라. 불투명한 창문 밖에서 수사관들이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과 표정을 살피고 있다. 나는 그들을 볼 수 없다. 죄를 짓지 않은 혐의자조차 동요와 공포를 느낄 것이다.
시선의 비대칭이 주는 권력관계
바로 이런 시선의 비대칭이 주는 권력관계는 영화에서 어떤 장치를 만들게 했다. 바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다.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마스크를 활용한 사례는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마스크일 것이다. 이 다스 베이더 마스크에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이야기를 만들고 감독한 조지 루카스는 처음부터 마스크로 중무장한 다스 베이더 캐릭터를 창조하지 않았다. <스타워즈>의 콘셉트 디자이너인 랠프 매쿼리가 디자인한 초기 다스 베이더는 루카스의 제안에 따라 전통 베두인 복장을 한 모습이다. 다스 베이더가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제국군의 비행선이 공화국군의 비행선을 침략하는 장면에서다. 매쿼리는 한 우주선에서 다른 우주선으로 이동해야 한다면, 우주 공간을 통과할 테니 호흡 장치 같은 게 있어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과학적 사고를 했다. 그리하여 얼굴 전체를 가린 투구를 디자인해서 감독에게 보여줬다. 루카스는 과학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그 호흡기 달린 투구에서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다스 베이더는 영화 내내 어떤 비밀을 간직한 채 투구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의 캐릭터로 결정되었다.
그 결정은 다소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는 어떤 필연성이 있다. 조지 루카스는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와 일본 문화의 열렬한 팬이다. 구로사와의 <거미의 성> 같은 사극 영화에는 사무라이 대장의 투구가 나온다. 루카스는 그 사무라이 투구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전투에서 투구만 쓰는 게 아니라 가면도 뒤집어쓴다. 그것은 무척 공포스러운 인상이다. 단순히 가면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얼굴의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병사가 마주한 적의 얼굴 표정에서 공포를 본다면, 자신감이 생겨 훨씬 잘 싸울 것이다. 하지만 무표정한 가면에 가려서 그것을 읽을 수 없다면,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무표정, 즉 정보의 변화가 없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없다. 사무라이의 가면은 그런 기능을 한다.
▶(왼쪽부터) 랠프 매쿼리가 디자인한 다스 베이더의 초기 스케치/ <양들의 침묵>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한니발 렉터
악의 화신인 투명하지 않은 권력자
그렇다면 매쿼리가 디자인한 다스 베이더의 투구에서 루커스가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마스크로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는 바로 최고의 권력자인 것이다. 투명하지 않은 권력자, 시선의 비대칭성을 적극 활용하는 자는 반드시 악의 화신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순간 악당의 길로 쉽게 빠져든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투명 인간>이나 영화 <할로우 맨>에서 주인공은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자신의 몸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자마자 악당이 된다. 그런 면에서 투명 인간은 잘못된 번역이다. 원제 ‘The Invisible Man’은 ‘보이지 않는 사람’ 또는 ‘자신을 감춘 사람’에 가깝다. 투명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온전하게 노출시킨 사람이다.
익명성을 무기로 악플을 다는 사람은 ‘투명 인간’이 아니라 ‘숨은 인간’이다. 그런 호칭이 그 비열함을 더 잘 보여준다. 결국 프리퀄(기존의 작품 속 이야기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 포함 6편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선한 편에 있던, 다시 말해 투명했던 아나킨 스카이워커라는 기사가 왜 악의 상징인 마스크를 씀으로써 ‘숨은 인간’이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시리즈 마지막 회에 죄를 뉘우치고 아들 앞에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다. 악에서 선으로 돌아오자 죽음을 무릅쓰고 투명해진 것이다.
이 악당의 기호를 적극 활용해 성공한 영화는 쉽게 나열할 수 있다. <시계태엽 오렌지>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할로윈> <양들의 침묵> <스크림> <다크 나이트 라이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 프로레슬링에서 반칙 캐릭터는 늘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반칙 캐릭터에 대한 가장 악랄하면서도 통쾌한 보복과 응징은 마스크를 벗기는 것이었다.
요즘 외출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챙긴다. 밖에 나가면 거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얼굴을 가릴 때 그것은 더 이상 특권이 아니다. 게다가 건강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것이지 자신을 숨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마스크를 썼을 때 내가 보호받는 안정된 느낌을 받는다.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고, 또 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내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다는 안정감도 동시에 느낀다. 그것은 묘한 기분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