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회복시키는 방법

2020.03.16 최신호 보기



어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세상이 들썩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뉴스와 기사가 쏟아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열심히 찾아 읽고 듣고 전하고 나른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사람들은 이슈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한 뒤 누리소통망(SNS)에 자신의 생각을 올리며 공감과 소통을 이어간다.
좀 더 알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에 현대사회는 최적화돼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뉴스를 찾아보겠다고 작정하면 하루 종일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도 충분히 바쁘게 지낼 수 있다. 미디어는 사람들의 궁금증과 알 권리를 이용하고 사람들은 피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클릭과 터치를 멈추지 못한다.
인생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세상에 이슈가 없던 때는 단 하루도 없었다. 뉴스와 신문은 매일 사건 사고를 보도했다. 어떤 사건은 하루가 지나면 잊혔고 어떤 사건은 길고 오래, 변주하며 이어졌다. 미디어에서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것과 은폐하려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이슈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미디어에 나오지 않는 날이 온다.
인상 깊게 읽은 소설 가운데 로맹 가리의 <어떤 휴머니스트>라는 작품이 있다. 짧은 분량의 소설인데 인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소설의 배경은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독일이고, 장난감 공장을 운영하는 카를 뢰비와 그의 하인인 슈츠 부부가 나온다. 카를 뢰비는 책을 좋아하고 인간을 신뢰해서 하루 일이 끝난 뒤 슈츠와 책에 나오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15년 동안 그런 우정을 유지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대인인 카를은 공장과 집을 슈츠에게 판 것처럼 꾸미고 지하 은신처에서 지낸다. 슈츠 부부는 카를을 위해 식사 시간마다 요리와 포도주를 내려 보낸다. 저녁이면 그들은 예전처럼 인간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럴 때면 그 작은 지하실이 빛나는 것 같다. 처음에 카를은 신문도 보고 라디오도 들었지만 전쟁이 심해져 세상이 타락하자 인간에 대한 신뢰를 지키려고 미디어를 거부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진실을 모른 채 그곳에서 책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죽어간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슈츠 부부가 카를을 속이는 것에 분노했고 카를이 자신의 세계에 갇히는 것을 어리석다고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인간에게 자신의 세계를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간의 사소한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외환위기와 세기말, 사스와 신종 플루, 메르스 같은 사태를 겪으며 나는 세상의 흐름에 대해 파악하는 건 중요하지만 이 세상에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중대한 뉴스는 없다고, 인생과 일상을 포기하거나 내줄 만큼 중요한 뉴스는 없다고 믿기로 결심했다. 애써 뉴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내 삶은 도태하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카를 뢰비처럼 나만의 지하실에 내려가 살 수는 없지만 책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은 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자기만의 빛나는 순간을 지켜가자고 마음먹었다.
코로나19가 온 나라를 강타하며 너무 많은 뉴스와 너무 많은 의견, 추측과 비판 속에서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감염돼가는지 돌아보게 된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과나무는 못 심더라도 불안해서 우르르 몰려가 마트와 약국을 털어 오고, 이런 사람이 위험하다는 얘기가 돌면 그와 비슷한 느낌의 사람을 시야 밖으로 쫓아내야 안심이 되는 마음을 경계하고 싶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분들과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는 분들,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마음과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회복시킬 것이다.

 서유미_ 소설가.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소설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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