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매달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지음 ●아작 펴냄
공상과학(SF)적 상상력과 페미니즘의 열정, 로맨스의 달콤함과 인문학적 감수성을 동시에 갖춘 정세랑의 SF 단편집이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그의 초기 단편부터 최근 작품까지, 일관된 방식으로 추구해온 SF적 상상력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통제와 지배를 꿈꾸는 이들이 아니라 사랑과 공감의 세계를 택하려는 사람들이 정세랑 단편의 진정한 중심인물이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에서는 강력한 남성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기보다 우정과 연대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이들은 결코 부드럽고 연약하지 않다. “이런 세계라면 그냥 사라져버려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주인공,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강인하고 힘 있다. 초반부에는 ‘로맨스 소설’인가 싶다가 어느 순간 ‘SF 소설의 본심’을 보여주는 경쾌한 스토리텔링(이야기하기)은 ‘SF 소설이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정여울 위원(<나를 돌아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공간을 말하다
● 이상호 지음 ●북바이북 펴냄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할 뿐 아니라 다르다. 정치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간과 부동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간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건 그 속셈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간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건 어떤 사회, 문화, 가치 속에 사느냐와 직결된다. 이 책은 공간을 12가지 학문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읽어내며 어떤 공간을 모색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에 따라 다른 생각이 다른 공간을 만드는 것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결국 살아가는 세상과 나의 삶이 공간에서 어떻게 수렴되고 실현되는지, 그리고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 살피게 된다. 글쓴이가 앞머리에서 공간 역사학과 공간 철학을 다루는 건 의미심장하다. 공간은 단순히 ‘주거’의 요소에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거기에서 구현되는 가치, 실현해야 할 의미 등을 포괄적으로 담는 중요한 요인이다. 역사, 철학, 경제, 심리, 경영, 인문, 정치, 문화, 사회, 공학, 디자인 등의 시각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간을 바라볼 것인지, 이만큼 풍부하고 다양하게 다루는 책은 흔치 않다.
김경집 위원(인문학자)
가짜뉴스의 고고학
● 최은창 지음 ●동아시아 펴냄
짝퉁에도 등급이 있다지만, 아무리 훌륭한 짝퉁도 원본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가짜뉴스도 진짜 같은 가짜가 많다. 하지만 간혹 거짓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예외도 있다. 유행 중인 코로나19 소식을 최초로 전한 한 중국인 의사는 권력층에 의해 괴담 유포자로 취급됐다. 그러나 그가 전한 소식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그의 죽음과 남긴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기본적으로 가짜뉴스는 사실에서 소외된 사람의 알고 싶은 욕구를,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의 확증 편향을 교묘히 파고드는 거짓이 많다. 또 비공식적으로 사람의 의중을 떠보거나, 정치판에서 보듯 상대를 위축시키고 자신의 편을 결집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 역할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책은 가짜뉴스, 소문, 선전(프로파간다) 같은 허위 정보가 누리소통망(SNS)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세상에서만 특별한 쟁점이 아니며, 인류와 함께해온 나름의 오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다룬다. 또 최근 심각해진 그 폐해에 대한 대응 방안도 담고 있다.
이준호 위원(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과학의 품격
● 강양구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과학은 자연을 탐구한다.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은 일반인들에게 어렵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과학을 떼어놓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학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리가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그래서 책에는 ‘과학의 의미를 묻는 시민들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과학은 항상 선이 아니다. 사실 과학과 기술은 대부분 양날의 칼이다. 그리고 과학도 인간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과학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뗄 수 없는 과학이라면 품격 있게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20대부터 오랜 시간 여러 가지 곤욕을 감수하면서 까칠하게 우리 사회에서 과학의 품격을 고민한 과학 언론인의 기록이다. 과학기술의 민낯을 이해하고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품격 있게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송기원 위원(연세대 생명과학부 교수)
출근길의 주문
● 이다혜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
40대 초반인 내겐 ‘선배’라고 부를 여성 선배가 많지 않다.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여성 선배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여성들이 40대를 지나 50대가 되어서까지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가능한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출근길의 주문>은 40대 직장인인 작가가 선배 입장에서 쓴, 사회생활 하는 여성들을 위한 지침서다.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나만의, 우리 조직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공적인 자리에서 질문하기, 끝맺음까지 명확하게 말하기, ‘사교 주간’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 만나기 등 여성들이 사회생활에서 취약한 점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무엇보다 책은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좋아하지는 못하더라도 존중해주자고 말한다. 여성이 일 잘하는 여성을 배제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아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길을 내는 방법이다.
송현경 위원(내일신문 기자)
도개울이 어때서!
● 황지영 지음 ●사계절 펴냄
오랜만에 동화에서 도깨비를 본다. 최근에는 ‘마녀’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는 듯해서 더 반갑다. 옛이야기풍 도깨비도, 떠꺼머리 남자 도깨비도 아닌 것 역시 반갑다. ‘정수리에 질끈 묶은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아올라’ 있는 말괄량이 여자아이,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을 전전하는 갈 데 없는 요즘 아이로 등장한 도깨비 도개울은 아주 유쾌하다. 덕분에 메밀묵 장사하는 엄마와 할머니가 원망스럽고,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사는 아빠는 마음에서 한사코 밀어내고, 날마다 놀려대는 정유찬 때문에 살기 힘든 주인공 수아가 힘을 얻는다. 도깨비의 단골 메뉴인 감투와 방망이가 적재적소에 사용되며 이야기에 딱 달라붙는 것도 재미있다. 도깨비방망이는 딱 한 번 ‘뚝딱’ 소원을 들어주면서 장쾌한 규모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는데, 금과 은을 쏟아내는 자본 숭배가 아니라 착하고 바람직한 생명 존중 방향이다. 자칫 진부한 교훈으로 흐를 수도 있는 이 주제를 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살려낸 솜씨가 믿음직스럽다.
김서정 위원(동화작가)
영웅, 그들이 만든 세계사
● 이내주 지음 ●채륜 펴냄
영어 ‘히스토리’ 안에 ‘스토리’가 들어 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역사는 이야기다. 이야기라도 객관적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는 비허구이기에 역사는 건조하고 딱딱해지기 쉽다. 이 점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역사 이야기’가 사실과 상상, 역사와 문학 사이에서 다양한 서술을 한다. 이 책은 역사적 사건의 결정적 장면을 택해 극적 효과를 거두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30여 개 꼭지는 세계사의 전환점이 된 장면을 각각 ‘3막’으로 나눠 서술하는데, 주로 제2막에서 그 장면을 묘사하고 앞과 뒤에는 역사적 배경과 평가를 배치해 재미와 의미를 모두 얻고 있다. 역사 학습이 사건에 관한 정보 외우기로 흐른 현실에서 인물과 그의 갈등 이야기로 역사 현장을 상상하며 배우게 해주는 책이다. ‘영웅’이라고 할 수 없는 인물도 더러 있지만 인종, 종교, 환경 등에 관한 설명을 이야기에 녹여 세계사의 맥락을 짚어주어 흥미롭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
최시한 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