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채로 살아가기

2020.04.13 최신호 보기



처음에 나는 당장 먼 곳으로 떠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는데.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까? 여름? 가을? 겨울? 아니면 내년?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취재차 일본에 있었다. 교탄고 시의 미네야마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시골 마을이었다. 마치 내가 살아본 적 있는 그리운 옛날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거기서 나는 우라시마 전설(우라시 마타로가 거북이를 만나 용궁을 찾아갔다는 이야기)과 하고로모 전설(일본판 ‘선녀와 나무꾼’)을 따라 몇몇 지역을 이동하며 지냈다. 시골이라 해가 지면 식당이나 찻집도 문을 닫았다. 그마저도 한 마을에 한두 군데 있었다. 가로등은 어둡고 다니는 차도 딱히 없었다.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만 선명하게 들리는 저녁,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저기서 모퉁이를 돌면 집이 한 채 있고 나는 거기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나의 손에는 동네 마트에서 산 먹을거리가 들려 있었다. 그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점심은 몰라도 저녁은 일찍 먹을 게 아니면 먹을 것을 사다가 숙소에서 먹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마트에는 이방인의 식사로 여길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반찬이 소분되어 있었다. 나는 동네 주민들 사이에 섞여 사람들의 손이 많이 가는 찬거리를 사고,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팥밥도 샀다. 취재차 머무는 일주일의 저녁을 그렇게 먹었다.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로 붐비는 마트로 가서 그들처럼 장을 봐서 숙소로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해가 지면 일을 하러 왔다는 생각도 잊고 평화로운 저녁을 온전히 즐겼다. 매일 해결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나의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여행자가 된 것이 행복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보내고 교토로 이동했을 때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이상한 일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일본으로 취재를 떠나기 전에도 뉴스에서는 매일 코로나19 소식이 빠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도나도 ‘우한 폐렴’이라 부르다가 명칭에 특정 지역을 표기하면 차별 등 낙인이 이뤄질 수 있어 코로나19로 쓰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나는 취재를 준비하며 여행 가방에 휴대용 손 소독제와 마스크도 몇 장 챙겼다. 닷새쯤 지나자 손 소독제가 거의 떨어져가는데 드나드는 건물마다 입구에 소독제가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인적이 드문 시골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토에 도착해 마스크를 사려고 제일 먼저 약국에 들렀다. 마스크는 없다고 했다. 손 소독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는 규모가 작아서 팔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거기에도 손 소독제와 마스크는 없었다. 몇 군데를 더 들르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직원에게 어디 가면 살 수 있느냐고 물으니 아마 아무 데도 없을 거라고 했다. 정말이었다. 어딜 가든 마스크 판매대는 텅 비어 있었다. 내일은 들어오냐고 물었지만 모든 약국에서 알 수 없다고 했다.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불과 열흘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 후로 두 달 남짓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사람이 질환을 앓고, 일자리를 잃고,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국경 간의 이동은 불편해졌다. 어떤 나라는 거리 통행을 금지하고, 어떤 나라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 통행에 제한을 두고 있다. 세계 곳곳의 공공시설은 잠정 폐쇄됐다. 언제쯤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당장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일 새로운 충격이 그동안 내가 모르는 채로 누려온 일상을 돌아보게 했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품고 흘렀지만 그럼에도 나는 불확실한 가운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며 살았다. 그것이 나의 삶이고 생활이었다.
지금 우리는 개인의 자유가 아닌 공공의 안전을 위한 지침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익히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공공의 안전은 근본적인 생활윤리지만 그것을 개인이 소홀히 여기거나 지키지 않는다고 타인의 삶을,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자각은 우리에게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 중이다.
나는 궁금하다. 분명 당신도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지금을 통과한 우리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개인이 행하는 일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이에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두려움. 우리는 그동안 두려움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나로 인해 타인이 고통받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모르는 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더는 안 된다. 지금 내가 아는 가장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유진목_ 시인.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낸 이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등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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