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산도의 봄은 유채꽃의 향연이다. ‘여유로움과 느림’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본다.
느림의 미학이라니? 느림은 행복이라니?
자본주의에서 느림은 패배다. 속도 경쟁에서 이겨야 산다. 남보다 빨라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빠름은 미덕이었다. 빠름은 행복이었다. 빠름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부터 선착순과 선행 학습에 내몰렸다. 그래서 빠름이 몸에 배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느림이 행복이고, 느림의 미학이라는 반자본주의적 구호가 동경의 대상이 됐다. 어느덧 슬며시 느림이 빠름을 앞지르는 시대가 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에서 오토바이 탄 인간과 달리는 인간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과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발바닥의 물집,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어느 때보다도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것이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속도 엑스터시(황홀감)와 느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13년 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선정
느림을 느끼고 싶었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숨을 쉬고,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그래서 전남 완도군에 위치한 청산도에 갔다. 물론 13년 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느리고 풍요로운 삶’을 지키는 마을)로 선정된 청산도에 간다고 느림의 행복을 저절로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서편제> 촬영 장소로 유명한 청산도에 간다고 진도아리랑의 깊은 맛을 그냥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온통 푸른 자연이라 청산(靑山)도라고 이름 붙여졌고, 옛날엔 신선이 산다고 선산(仙山)으로 불린 섬에 간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자연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 1박 2일 시간을 내서 청산도에 간다고 해도 느림의 미학보다는 바쁨의 엑스터시를 벗어나기 어렵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전남 완도까지 5시간 걸린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50분. 서울에서 아침에 떠나도 저녁 해 질 때쯤 청산도 숙소에 짐을 풀 수 있다. 한두 곳 바삐 둘러보고, 저녁 먹고 피곤한 몸을 누인다. 다음 날 서울 가려면 낮에는 출발해야 한다. 오전 한나절 겨우 청산도를 볼 수 있으니 어찌 깊숙하게 느림의 미학이니, 느림의 행복을 느낄 수 있으랴. 하지만 포기는 하지 말자. 청산도는 무언가 느림의 즐거움을 도시인들에게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3월 24일, 청산도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상서마을이다. 돌담장 길로 유명하다. 바람이 거센 섬의 돌담은 육지의 담과는 달리 흙을 넣지 않고 돌만으로 쌓는다. 강담이라고 부른다. 구멍이 숭숭해 허술해 보인다. 과거 새마을운동의 결과로 돌담장은 헐려나갔다. 돌담장 대신 쌓기 시작한 시멘트 담벼락은 오래지 않아 낡고 허물어진다. 하지만 섬들의 돌담은 수백 년이 지나도 견고하다. 이유는 역설적으로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장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쌓은 돌 사이에 흙이 없어 그 공간으로 바람이 분산돼 통과한다. 꽉 막지 않고 통과시켰기에 오랜 세월 무너지지 않았다. 섬사람들과 거센 바람이 맺은 평화협정인 셈이다.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때로는 위태롭게, 때로는 단단하게 서로를 붙잡고 있다.

▶청산도의 상징인 돌담마을 골목길. 바람을 막지 않고 통과시켜 바람과 인간, 돌담이 오랜 시간 공존한다.
돌담 사이를 지나며 존재를 뽐내는 바람
돌담장에는 하늘초와 맥문동, 노랑하늘타리 등의 식물이 한 가족처럼 붙어 있어 켜켜이 쌓인 세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돌담 사이를 천천히 걸어본다. 소리가 들린다. 바람 소리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허공을 지나치는 바람은 소리도 없다. 하지만 돌담 사이의 구멍을 스치며 바람은 소리를 낸다. 돌 사이를 지나며 스스로의 존재를 나타낸다. <장자>는 바람을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숨결’이라고 표현했다. “바람은 일어나지 않을 때는 고요하지만 한번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다 바람이 멈추면 뭇 구멍들이 모두 고요해진다.”(재물론) 돌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느림의 행복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다행이다. 느림의 기쁨이다. 저녁을 앞두고 이웃집 노인에게 맛있는 찬거리를 나눠주기 위해 대문을 나와 돌담길을 걷는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의 느린 발걸음이 정겹다. 이방인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상서마을에는 이름도 생소한 구들장 논이 있다. 산비탈에 돌로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들고 논바닥에 구들돌같이 넓적한 돌을 깔고 개흙칠을 해서 방수 처리를 했다. 그 위에 흙을 덮어 물을 가두고 논을 만들었다. ‘청산도 큰애기 쌀 서 말도 못 먹어보고 시집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척박한 섬이었다. 그렇게 돌이 많은 땅을 구들장 놓듯 가꾸어 논농사를 한 것이다. 절박한 몸부림이다. 방에 온기를 유지시키는 구들장이 청산도에는 먹거리를 공급해주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북두칠성이 선명하다. 카시오페아자리도, 사자자리도 눈에 확 들어온다. 하늘이 별로 뒤덮였다. 내친김에 길에 길게 누웠다. 문득 ‘忙(바쁠 망)’자를 떠올린다. 마음을 잃어버리면 바빠진다. 느리지만 마음은 잃어버리면 안 된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다. 풀벌레 소리, 바닷바람 소리, 유성 떨어지는 소리…. 나는 누구인가.

▶영화 <서편제> 세트장인 한옥 주막에서 내려다본 청산도 앞바다
11코스 17개 길로 구성된 ‘슬로길’
과거 청산도는 고등어 파시로 유명했다. 파시(波市)는 바다 위의 시장이다. 어류를 거래하기 위해 열리던 해상 시장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해마다 6월부터 8월까지 청산도 도청리 포구에 파시가 섰다. 크고 작은 배 수백 척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고등어가 고갈되면서 고등어 파시는 막을 내렸다. 물고기 떼가 사라지자 어선도, 사람도 떠났다. 섬사람들은 전복이나 김, 미역 등을 양식하며 살아간다.
이튿날 청산도의 슬로길을 본격적으로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청산도 슬로길은 11코스 17개의 길로 구성된다. 전체 구간이 마라톤 풀코스와 같은 42km에 이른다. 시간상 1코스만 보기로 했다.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진다. 되도록 천천히 걸었다.
슬로길 1코스에는 <서편제>를 촬영한 서편제길이 나온다. <서편제> 주인공 유봉과 송화, 동호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며 돌담길을 내려오는 장면이 5분간 롱테이크(1~2분 이상의 숏이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방식)로 촬영됐다. 반갑다. 촬영 세트장으로 만들었던 초가집은 막걸리를 파는 주막으로 바뀌어 영화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에서는 마침 만개한 유채꽃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색과 노란색이 현란하게 교차한다.
화창한 날씨에 꽃처럼 일렁이는 파도 ‘화랑포’
서편제길 한쪽에는 당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청해진 장보고 대사의 신하였던 한내구 장군을 신으로 모신다. 한 장군이 청산도를 지키다가 늙어 죽자, 섬 주민들은 돌무덤을 만들어 그 옆에 당집을 짓고 수호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천천히 걷다 보니 초분(草墳)이 눈에 띈다. 땅속에 묻히지 못하고 땅 위에 망자를 모셨다.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망자의 관을 덮어놓았다, 3~5년 뒤 뼈를 수습해 매장한다. 명절 기간에 상이 나거나 상주가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상이 나면 임시로 초분을 했다가 정식으로 매장한다고 한다. 풍장(風葬)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마치 수평선의 바다와 하늘의 경계처럼 모호하게 느껴진다.
숨을 천천히 쉬며 다시 걷는다. 화랑포 전망대가 나온다. 화창한 날씨에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파도가 마치 꽃처럼 보인다 하여 화랑포(花浪浦)라 부른다.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가 눈부시다.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