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에 맞춰 입국한 중국인 유학생들이 2월 24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입국장 안에 마련된 중국발 입국자 안내소에서 신원확인과 연락처 확인을 받고 있다.│한겨레
민간·정부 방역 현장
코로나19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와 규모로 확산하면서 정부는 2월 23일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특히 대구 등에서 확진환자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지역사회까지 감염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방역 당국과 의료진, 시민 등이 각자 위치에서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곳곳의 노력들을 만나봤다.
다중이용시설 등 연일 소독해 바이러스 차단
“오늘도 일찍부터 움직였어요. 지금은 여의도 국회에 방역하러 와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방역을 요청하는 곳이 정말 많은데 이를 다 소화하는 게 굉장히 힘들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움직이려고 합니다. 저기, 지금 방역 시작할 거 같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2월 24일 저녁 원용남 한국방역협회 서울지회장이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와 동료들은 소독 작업에 매진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특히 2월 22일과 23일 주말을 끼고 대구 지역 등에서 확진환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다른 지역사회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원 지회장은 이날도 하루 종일 방역에만 매달렸다.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에 이어 오후에는 여의도 국회로 향했다. 2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확진환자가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사무처는 즉각 방역에 나섰고, 결국 2월 25일 국회를 일시 폐쇄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원 지회장은 “내일(2월 25일)도 일정이 빼곡하다. 현재로선 강남구, 마포구 등 시장에 갈 예정인데 비가 오면 일정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실내 방역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확진환자가 왔다 가도 해당 장소를 제대로 소독만 하면 바이러스는 99.9% 사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칫 전통시장 등에서 소독약이 식자재에 묻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독제는 인체에 거의 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역대원들이 서울 중구 신중부시장에서 방역에 앞서 구역 지도를 살펴보며 회의를 하고 있다.│한겨레
전주시 공공기관·시민 참여 ‘일제 소독의 날’ 운영
각 지자체에서도 전통시장을 비롯해 시민들이 많이 오가는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방역소독에 집중하고 있다. 송파구는 마천시장과 마천중앙시장 일대 방역을 이미 마쳤고, 2월 27일까지 관내 다른 전통시장과 상점가에도 방역소독을 하기로 했다. 방이시장·풍납시장·새마을시장·석촌시장 등 전통시장 4곳과 문정동 로데오거리 상점가 점포 1000여 개를 전문 방역업체가 개별 방문해 꼼꼼히 소독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주시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은 물론 시민이 참여하는 ‘일제 소독의 날’을 운영하기로 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2월 24일 전주시의회 임시회 개회식에서 “시민들의 역량을 총결집해 다음 주부터 정기적으로 소독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범시민운동 형태의 ‘시민 일제 소독의 날’을 당분간 운영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전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을 고려해, 2월 24~28일 한 주를 집중 소독주간으로 정하고 주택가와 주변, 공공기관, 다중이용 집합공간 등에 대한 소독 활동에 나섰다. 그다음 주부터는 매주 수요일을 ‘일제 소독의 날’로 정했다.
일제 소독의 날에는 모든 시민과 기관·단체 등이 전주 전역을 대상으로 소독 활동을 펼칠 방침이다. 시민들은 자기 집과 가게, 동네, 집 앞 골목길, 공동체 공간 등을 소독하고 공공기관과 민간 사업체·소상공인 등은 사무실과 작업실, 영업장 및 주변을 일제 소독한다. 또한 도로와 공원, 전주역, 고속·시외버스터미널, 백화점, 대형마트, 전통시장, 체육시설, 버스, 택시 등 다중이용시설과 다중집합공간에 대해서는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 각 시설 관계자들과 함께 일제 소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민간서도 방역소독, 마스크 착용 등 적극 독려
지자체 등 정부 차원에서 전통시장, 백화점, 대규모 점포, 병원, 지하철 역사 등의 방역소독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민간이 주도해 방역소독을 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서울 마포구 내 한 교육문화센터 엘리베이터에는 ‘본 사업장은 코로나19 특별방역을 실시한 청결 사업장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었다. 이 센터는 국내 코로나19 사태 발생 직후부터 예방 차원에서 매주 방역업체를 불러 방역소독을 하고 있다. 센터 측은 “2월 초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방역소독업체를 수소문했고, 2월 6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시간가량 공기 중 소독제를 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역업체 소독 일정이 밀려 방역소독을 하지 못한 2월 6일 이전에는 센터 자체적으로 소독용 에탄올을 구입해 2월 3일 월요일부터 전체 시설에 매일 수업 전후 소독 작업을 했다. 센터 측은 “수강생들과 직접 대면하는 고객센터 직원들은 업무 시간에 전원 마스크를 쓰고, 내근직 직원들도 접객 시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2월 23일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 특수학교의 2020학년도 개학을 3월 9일로 미루고, 학원에도 휴원과 등원 중지를 권고한 가운데 휴원 결정 및 자체 방역소독을 하는 학원도 있다.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최 모 원장은 “교육부의 개학 연기 발표 및 학원 휴원 권고 전부터 크게 우려가 되어 자체적으로 방역업체를 불러 소독을 마쳤다”며 “오늘(2월 24일)부터 2주간 휴원을 결정했는데 휴원 해제 뒤에도 소독을 더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면역력이 약하고 기저 질환이 있는 60대층의 감염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이들 역시 면역력이 약하고, 잠복기가 14일로 긴 편이기 때문에 3월, 4월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그는 “사교육 영역에 있지만 우리도 교육기관인 만큼 당장 들어가는 비용 등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도 방역소독에 충실하려고 한다”며 “아이들에게 이메일로 교육 자료를 보내주고 가정학습을 독려하고 있는데 가정 내 위생 생활습관에 대한 안내도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 한 교육문화센터에서 방역업체가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센터 측
신천지 명단 발표 및 방역 현황 서비스도 나와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지자체에선 지역 내 신천지예수교회 명단 발표를 비롯해 방역 관련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은평구의 경우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에 확진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확진환자 동선에 포함된 구파발역의 방역소독 정보와 구내 신천지예수교회 명단 발표 및 폐쇄 조치 내용 등을 공지했다.
경기도는 도내 31개 시·군,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공공데이터 포털서비스 ‘경기데이터드림(data.gg.go.kr)’을 통해 경기지역 신천지 강제 폐쇄시설 세부 주소와 방역 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도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도민들에게 신천지 관련 방역 정보를 공개하게 됐다”면서 “추가 제보나 현장 실사 등을 통해 지도의 시설 리스트는 늘거나 줄 수 있다”고 말했다.
2월 24일 도에 따르면, 경기데이터드림에 접속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날 긴급 행정명령으로 폐쇄한 353개 신천지 시설의 세부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시군·소재지 주소·위도·경도·시설 구분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으며, 방역처리 조치 현황까지 실시간 갱신(업데이트)되고 있다. 지도를 클릭하면 신천지 시설의 분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방역처리 예정 시설과 완료 시설을 색깔로 구분해 시인성을 높였다.
개강 앞둔 중국인 유학생 방역·격리에 예비비 50억 투입
한편 정부는 3월 개강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입국할 중국인 유학생 관리 등을 위해 예비비 50억 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2월 2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국인 유학생 관리와 국가직공무원 시험장 방역을 위한 목적 예비비 지출안을 심의·의결했다.
예비비는 유학생이 입국한 뒤 거주지까지 이동하는 비용(학교·지자체), 기숙사를 배정받지 못하는 등 거주지를 정하지 못한 유학생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 확보(학교·지자체), 기숙사 방역 및 자가 격리자 관리 등에 쓰인다. 구체적으로 유학생이 입국한 뒤 14일간 기숙사에 머물거나 자가 격리하는 동안 관리하는 현장 인력(2376명)의 인건비로 25억 원을 투입한다.
유학생 관리 인력에 지급할 방역용 마스크·손 소독제·체온계(3억 원)와 기숙사 방역비용(12억 원)도 편성했다. 방역용 마스크는 기숙사 입소 유학생에 한해 지급하고, 전체 입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공항에서 거주지까지 이동할 때 착용할 일회용 마스크도 지원한다. 또 유학생이 입국한 뒤 행동 요령을 안내하고 마스크를 지급하는 인천국제공항 내 부스 운영비 명목으로도 2억 원을 편성했다.
중국인 유학생을 받는 대학에서도 2주간 격리 등 속속 입국하는 학생들을 안전하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2019년 4월 기준 국내 대학 중 중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경희대(3839명)는 480여 명을 서울과 용인에 있는 두 캠퍼스 기숙사에 입소시켰다. 경희대는 기숙사 건물 1개 동을 중국 학생 격리 공간으로 마련하고, 학생 1명당 화장실이 있는 기숙사 방 하나를 쓸 수 있도록 했다. 매일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하고, 생활필수품도 함께 지원할 예정이다.
인천대는 기숙사에 격리된 학생들을 위해 방역 작업을 거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고, 한국 문화 이해와 한국어 실력을 돕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수 있는 ‘넷플릭스’ 이용도 지원하고 있다. 인천대 코로나대책본부 장정아 통제관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차별적 격리조치라고 느끼지 않도록 꾸준히 신경을 쓰고 있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안전을 위한 보호조치’라는 설명에 학생들도 수긍해 잘 따라주고 있다”고 전했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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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