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왼쪽에서 두 번째)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속도 내는 한중 신경제협력
2020년 한중 경제협력 관계가 한 단계 발전한다. 정부는 1월 20일 발표한 ‘2020년 대외경제정책 추진방향’에서 ‘한중 경제협력 관계의 업그레이드’를 올해 주요 추진과제로 꼽고 “한중 간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협 관계를 회복하고 서비스·신산업 분야 협력, 제3국 공동 진출 등 호혜적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양국 경제협력 관계의 심화·발전을 위해 교류·협력의 걸림돌을 최대한 걷어내 교역·투자 협력 고도화, 문화·인적 교류 활성화를 추진한다. 또 서비스 신산업 협력, 해외 인프라 분야 등 양국의 공동 관심 분야에서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협력 기회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환경 협력 등 글로벌 리스크 공동 대응에도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정부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2020년 안에 타결해 수출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RCEP는 중국이 미국에 맞서 추진한 아시아권 중심의 경제 블록이다.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등 16개국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RCEP가 타결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경제 블록이 형성된다.
한중 정상회담, 경제장관회의 잇따라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국은 우리의 제1위 교역국으로 중요한 교역 파트너일 뿐 아니라 투자, 인적 교류 등에서도 긴밀한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잠재력이 매우 큰 국가”라며 “올해는 양국 정상회담과 한중 경제장관회의도 예정되어 있는 만큼 성과를 내기 위한 핵심 어젠다들을 촘촘하게 점검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먼저 3월 서울에서 한중 경제장관회의가 열린다. 양국의 경제정책 통제탑(컨트롤타워)인 한국 기획재정부와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한다. 정부는 이번 장관회의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타결 △문화·관광·콘텐츠 교류 및 신산업 협력 강화 △양국 기업의 제3국 공동 진출을 위한 플랫폼 구축 등을 논의한다. 특히 고위급 협력 채널을 활용, 우리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한류, 관광, 반도체 등 한중 양국 간 걸려 있는 모든 문제를 열어놓고 논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방한도 예정대로 진행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월 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내신 기자회견을 열고 “시진핑 주석의 방한과 관련해서는 상반기 중이라는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중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며 시진핑 주석의 방한뿐 아니라 리커창 총리의 방한 일정까지 포함해 기존 외교 일정은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며 “정상외교를 포함한 다층적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서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일대일로와 신남방·신북방 정책 연계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한중 관계를 획기적으로 도약시킬 것”이라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에 이를 때까지 중국이 끊임없이 도움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 주도의 신실크로드 전략 구상)’와 한국 정부가 역점을 두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의 접점을 찾아 함께해 나가는 데 좀 더 속도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앞서 2019년 12월 23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중국의 일대일로와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다양한 협력사업을 실행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 “시진핑 주석과 내가 중국의 일대일로와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 간 연계 협력을 모색키로 합의한 이후, 최근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담은 공동보고서가 채택됐다. 이를 토대로 제3국에 공동 진출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협력사업이 조속히 실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공동보고서는 2019년 11월 27일 베이징 상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23차 한중 경제협력 종합점검회의에서 채택한 ‘한중 1.5트랙 공동보고서’다.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를 연계하기 위해 한중 경제공동위원회와 민관공동협의회, 정책연구기관 등이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양 정책 연계 시 시너지 효과 커”
중국의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대륙부터 아프리카 해양까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일대’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를, ‘일로’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9~10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처음 제시했고, 2015년 중국 공식 정책으로 수립됐다. 정책 연계(政策通), 인프라 연결(設施聯通), 무역 확대(貿易暢通), 자금 조달(資金融通), 민간 교류(民間相通) 등 이른바 ‘5통’을 추진 원칙으로 내세우는 대외정책으로 대규모 물류 허브 건설, 에너지 기반시설 연결, 참여국 간 투자 보증 및 통화 스와프 확대 등 금융 일체화를 목표로 한다. 일대일로가 구축되면 중국을 중심으로 육·해상 실크로드 주변 60여 개국을 포함한 거대 경제권이 구성된다.
중국은 일대일로에 한국, 북한, 일본 등 동북아 지역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글로벌 경제·통상 환경의 변화에 따른 대응과 새로운 성장 동력 모색이 필요한 한국의 신북방·신남방 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가 각각 추구하는 방향이 매우 유사해 협력의 가능성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으며, 협력이 주변국에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신남방정책과 일대일로를 연계하면 △RCEP 및 한중일 FTA의 조기 추진을 통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축 △민간 주도의 제3국 공동 진출을 통한 거대 신흥시장 개척 △역외 경제개발구 및 인프라 공동건설 협력 등이 가능하다. 환동해 관광사업, 두만강 국제관광특구 등 남북중 관광협력과 동북아 복합물류망, 동북아 슈퍼그리드, 북극항로 공동진출 등 동북아 통합 네트워크 사업도 할 수 있다. 이 원장은 “한국의 신북방·신남방정책과 중국 일대일로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려면 협력 대상국의 수요가 반영된 상생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북3성 일대일로-신북방정책 거점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가시적 경제협력 성과를 내는 것과 더불어 중국을 통해 북한과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과정이 갈등을 겪는 국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를 한중 간 협력 기반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일대일로, 신북방정책, 한반도 신경제구상 등을 북한, 러시아와 상호 연계해 새로운 한반도 평화경제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남북 철도가 이어지면 한국과 교역이 활발해질 수 있는 동북3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에서는 남북 경제협력과 철도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방향과 맞춰 남북 철도 연결 사업에 관심이 많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동방경제포럼에서 중국·러시아·일본·북한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과 경쟁구도를 타파하고 동북아시아의 장기적인 평화협력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경제협력 공간으로 동북3성 지역을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지린성의 ‘한중 국제협력시범구’, 랴오닝성의 ‘한중 산업원’, 헤이룽장성의 ‘한국 산업원’ 건설 등에 적극 참여하는 ‘중국 동북 지역의 한중 경제교류협력 강화 방안’을 2019년 11월 발표했다.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동북3성 지역은 중국의 일대일로와 한국의 신북방정책 간 접점에서 동북아 평화 정착 시 최대 수혜 지역이면서 한반도 신경제구상 실현의 핵심 거점”이라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