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방정책 세 가지에 주목하라

2020.03.02 최신호 보기
정부가 2020년을 ‘신북방 협력의 해’로 삼기로 했다.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1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2020 신북방정책 전략’을 보고하면서 올해가 북방 경제협력의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고 확산하는 해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대외 경제전략의 두 핵심축으로 삼았지만,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등 성과를 거두는 신남방정책과 달리 신북방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다. 그러나 신북방정책은 단순히 경제전략이라기보다는 대외전략 방향의 기본 담론에 대한 논의임을 주의해야 한다. 제재와 같은 대외적 제약이 없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동남아시아와 인도는 경제적 이익 조율만 되면 추진이 어렵지 않으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점차 커지고, 남북관계의 부침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신북방 지역은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태우정부 이후 역대 정부 모두가 유사한 내용으로 북방정책을 시행했지만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기인한다.

첫째, 지정학적 리스크의 관리
따라서 신북방정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과제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관리다. 김대중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한미 안보동맹과 함께 중국과 경제적 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높이는 헤징(Hedging) 전략, 역내 다자주의 주도 전략을 혼합한 전략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미중 갈등, 미러 관계 악화 등으로 글로벌 국제질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특히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설치 이후에는 헤징 전략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다자지역주의 전략도 역대 정부에서 추구했지만 강대국 지지와 국내 합의의 부재로 큰 효과가 없었다. 미국과 중국 중 선택하라는 압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신북방정책의 성패는 결국 북방정책에 미국을 참여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시하면서 미국의 참여를 제안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신북방정책의 핵심 전제는 ‘한러 관계 개선은 한미동맹에 배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태지역 안보에서 미러 간 건설적 협력을 유도’할 수 있음을 미국에 인식시키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국이 더욱 능동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한일러, 한중러 등 새로운 소다자주의 경제협력의 활성화와 동북아개발은행·동아시아철도공동체 같은 미국, 일본 참여 다자경제기구 추진이다. 떠오르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는 미국 그리고 미국에 대항하는 중러 협력 강화라는 도식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각국이 안보·경제·에너지·물류 등 각 분야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동력과 방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반도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중개자로서 ‘위치 권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또 동아시아철도공동체와 동북아개발은행이 일본, 미국이 실질적인 중국 견제의 정치적 이익과 함께 경제적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서방의 대러·대북제재 우회
지정학적 리스크와 직접 관련된 두 번째 과제는 서방의 대러·대북제재 우회다. 서방의 대러 제재와 러시아의 대응 제재는 국제법상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없으나, 미국의 경우 제재 대상 기업 및 개인과 거래할 경우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 등을 언급하고 있어 사실상 신북방정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2014년 제재 시행 이전 사업 및 협약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으므로 이후 계약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 원칙이고, 정부 간 협력사업은 제재 대상이 아니므로 정부 또는 정부출연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제재를 받지 않는 수산업, 의료, 정보기술(IT) 등 양국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는 분야의 협력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초기 전략으로 좋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금융기관과 협력 강화를 통해 루블 및 원화 결제 계좌 개설, 해외 사업 입찰 시 수출입은행 대신 러시아은행 보증서 활용 등을 생각해볼 수 있고, 유라시아경제연합(EEU) 회원국을 통한 러시아 우회 진출, 유라시아개발은행(EABR) 지분 인수를 통한 기금 활용, 제재 대상 기업과 거래 시 합의를 통한 제3의 기업 설립 방안 등 다양한 대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재 대상이 아닌 사업이라도 미국 정부와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의 북극 LNG-2 사업 참여 결정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러 및 일러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을 동맹의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대북제재와 관련해서 신북방정책이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2375호 18항이다. ‘합작사업 및 협력사업을 금지하나, 그러한 사업이 비상업적인 것이고 공공인프라 사업으로서 이익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 사안별로 미리 대북제재위원회(커미티) 승인을 얻어 진행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해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 비핵화와 실천에 대한 보상으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보다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 추진의 동력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마이클 그린 선임부소장은 <중앙일보> 2020년 1월 17일자 칼럼에서 “철도사업은 완공될 경우 북핵 프로그램으로 자금이 오용될 위험도 별로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셋째, 신북방정책 추진 플랫폼 정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세 번째 과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비롯한 신북방정책 추진 플랫폼 정비다. 최근 경제협력 거버넌스(협치·협력) 이론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정부조직 중 민간이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약한 고리와 정부조직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중간지원조직을 어떻게 효능화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기업 협의체, 공공포럼 등 민간의 의견이 정부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민간에게 약한 고리가 되어야 하며, 정부 부처가 운영하는 협력 플랫폼과 청와대 그리고 지방정부 간 유기적 소통이 활성화되는 것을 돕는 중간조직이 되어야 한다.
또한 북방정책 대상국과 양자 포럼을 활성화하고, 한·러 지방정부 포럼이 극동에만 편중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무엇보다 신북방정책의 핵심인 남북러 3각 협력을 위한 정부 간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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