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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교황 바오로 6세 필리핀 마닐라공항에서 피격. 교황 옆에 있던 한국 김수환 추기경 태권도 무술로 괴한 막아내. 김 추기경은 부상…. 마닐라=UPI”
1970년 11월 27일,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갑작스러운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필리핀을 방문한 교황이 공항에서 괴한에게 공격당했는데, 다행히 김수환 추기경이 태권도 실력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UPI는 인터넷 시대인 요즘 사람들에겐 무척 생소하겠지만 AP, AFP, 로이터와 함께 세계 4대 통신사 중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 코리아(KOREA)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1970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55달러로 세계 119위였다. 최빈국은 아니더라도 못사는 나라에 속했다. 그런데 그 나라의 김수환 추기경이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흉기 든 범인을 멋진 무술로 막아내며 교황을 보호했다. 한국이 대단한 나라임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물론이었다. 멀쩡한 김 추기경을 보고 ‘정말 다쳐서 입원까지 했더라면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우스개가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 사례
50년 전에 있었던 이 일화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Externality)의 생생한 사례다. 예상하지 않은 일(김 추기경의 교황 지키기)로 기대하지 않던 결과(한국의 브랜드 가치 상승)가 나온 것이다.
외부효과에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 외부경제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외부불경제가 있다. 과수원 옆에서 양봉을 하면 꽃가루받이가 잘되는 것과 서울·대구·광주 등 대도시 주변에 좋은 산이 있어 등산을 즐기는 것 등이 외부경제의 예다. 반면 상류에 공장이 생겨 물이 오염되면 하류에 있는 양어장이 피해를 본다든지 층간 소음으로 스트레스받는 것은 외부불경제다.
2020년 2월은 외부경제와 외부불경제가 엇갈리는 역사적인 달이다. 옆 나라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폐렴이 발생해 한국에서도 환자가 많이 나오고,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외부불경제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지금까지 외부경제가 발휘돼왔다. 외부불경제는 최소화하고 외부경제는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국제장편영화상·각본상으로 4관왕의 역사를 쓴 영화 <기생충>은 엄청난 긍정적 외부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기생충> 상영 매출액만 1억 7042만 달러(약 2016억 원, 2월 15일 기준)로 제작비(135억 원)의 15배에 이르렀다. 북미 매출액은 3940만 달러로 비영어권 영화로는 단숨에 5위로 뛰어올랐다. 일본에서는 2월 15~16일 주말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기생충 효과’는 다른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기생충>에서 소품으로 등장한 것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짜파구리’로 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 매출이 늘고 있다. 영어 자막에 Ramdon(람동)으로 번역된 덕분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도 퍼지고 있다. 스페인 감자칩 보닐라(Bonilla) 매출도 껑충 뛰었다. 방탄소년단(BTS) 팬클럽인 ‘아미’가 입는 ‘BTS 티셔츠’처럼 ‘Parasite(기생충)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기생충> 촬영 장소는 ‘팸투어(기자 등이 지자체나 여행업체 초청을 받아 관광상품·관광지를 탐방하는 것) 코스’로 개발되고 있다. 아현동의 돼지쌀슈퍼와 계단, 종로 자하문터널, 노량진 스카이피자 등이 후보지로 떠올랐다. TV 드라마 <겨울연가>(2002년 1월 14일~3월 19일)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촬영지인 춘천에 일본 관광객이 몰려들었던 것과 비슷한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기생충’이 가져다준 한글과 한국 홍보효과
<기생충>의 외부효과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한글과 한국의 홍보였다. 한글 대사에 영어 자막으로 전 세계에서 상영됐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당히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해 그의 눈물을 자아냈다. “형님,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쿠엔틴 타란티노 등 쟁쟁한 감독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을 왜 한글로 만들었느냐?”는 이해하기 힘든 질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글 바다를 이뤘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기생충> 4관왕에 대한 축하 인사를 한글로 올리기까지 했다. BTS의 한글 가사를 미국·독일·프랑스·멕시코 등의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는 것처럼, <기생충>의 한글 대사를 외국인들이 한글로 인용하는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기생충>의 가장 큰 외부효과는 한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아카데미상의 벽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아직 성취하지 못한 영역에서도 힘찬 도전에 열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골프, 야구, K-팝, 영화에서 이룬 ‘세계 제일’을 문학·미술·사상(철학)·경제·정치 등으로 확산시켜 <기생충> 4관왕의 외부경제를 최대화하는 게 우리의 자세다.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