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바에는 혼자인 것이 낫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할 수 없을 때, 슬픈 일이거나 기쁜 일이거나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걸 알아차릴 때, 밤에 혼자 깨어 울 때, 내가 타인에게 전한 것이 독이 되어 돌아올 때, 나는 아무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적당한 선에서 사회적 관계만을 맺으며, 업무와 관련된 것 외에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상처를 덜 받고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맞다. 속내를 많이 드러낼수록, 생각을 많이 말할수록, 감정을 더 표현할수록, 나는 관계들 사이를 유영하는 나의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고스란히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든 미움이든 남에게 드러내는 일을 두려워한다. 사랑을 표현하고 거절당할까 봐, 혹은 사랑한 만큼 돌아오지 않을까 봐, 마찬가지로 미움을 감추고 상대가 감지하는 그것을 부정한다. 안전하기 위해서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조금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말하거나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보다 안전하다. 이런 경우에는 앞에서 목소리 내는 사람의 처지를 지켜보다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앞에 선 이의 목소리에 같은 마음이라 해도 그의 처지가 곤혹스러워지면 목소리를 보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이것을 용기라 부른다. 용기를 내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관계 맺는 일은 용기를 내는 일이다. 용기를 내는 데 필요한 것은 용기 말고는 없다.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럴 바에는 혼자인 것이 낫다’는 생각은 관계 맺는 일에 지쳐버린 사람에게 찾아온다.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말자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에드윈 슈나이드먼은 자신의 책 <자살하려는 마음>에서 자기 자신과 맺는 내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는 용기를 내지 말자고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 그런 뒤 ‘그래, 그러자’ 혹은 ‘그러지 말자’ 하고 내가 나에게 대답하는 것, 오늘부터 매일 산책하자고 생각하는 것, 약속 시간에 늦지 말자고 결심하는 것,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 싫은 사람 앞에서 웃지 않기로 하는 것, 어떤 사람을 미워하기로 하는 것 혹은 사랑하기로 하는 것은 내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슈나이드먼은 ‘자살하려는 마음’을 그것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보다 살아가는 일을 이제 그만하자고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행위에 초점을 둔다. 실제로 우리는 그것을 결정하고 실행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에게만 은밀히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이럴 바에는 혼자인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지친 마음으로 혼자이길 택하고 난 뒤에도, 우리는 혼자가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관계 맺는 일을 나와 타인의 일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로 생각하기보다 나와 나 사이의 일로 관점을 바꿔보면, 나와 나 사이에 무수히 많은 타인과 세상사가 오가게 된다. 내가 타인을 마주하고, 내가 세상의 온갖 일을 대면하는 것보다 나와 나 사이에 타인을 다녀가게 하는 것이, 나와 나 사이에 내가 속한 사회의 좋고 나쁜 일을 통과시키는 것이 조금 덜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이제는 다르게 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므로 혼자인 것이 필요하다고. 타인을 통하지 않고 나를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면 타인이 내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부당한 일을 겪거나 차별당했을 때, 내가 세상으로부터 배제되었을 때, 타인 그리고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일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그리고 혼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당신은 나를 부당하게 대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차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당신과 당신 사이로 무수히 지나가는 타인들과 당신 곁에 서는 타인을, 당신과 당신 사이에서 천천히 조금씩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유진목_ 시인.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낸 이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등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