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역협회 소속 방역대원 10여 명이 2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오장동 신중 부시장에서 코로나19 확산방지 방역을 위해 모였다.
서울 신중부시장 특별 방역현장 가보니
“방역대원이 찾아왔다” 반가운 손님 맞은 상인들
“생활비는 그렇다 쳐도 가겟세가 걱정이에요. 방역대원이 고생하며 구석구석 소독을 해 감염될 우려가 없으니 손님들이 전통시장에 안심하고 찾아오면 좋겠어요.”
2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오장동 신중부시장에서 5평 남짓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 모 씨가 울상을 지으며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김 씨가 매달 내는 가게 월세는 150여만 원. 하지만 지난 한 주 전체 매출은 30만 원가량에 그쳤다. 가게를 찾았을 때 손님은 5명. 이마저 방역당국 관계자를 비롯해 시장 상황을 조사하러 나온 공무원이 전부였다. 맞은편에서 이야기를 듣던 과일 가게 주인 오 모 씨도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원래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는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보다 중국 사람들 보기가 어려워졌어.”
이날 오후 3시쯤 시장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방역협회 소속 방역대원 10명이 그들이다. 방역복을 입은 방역대원들은 점포 1000여 곳을 돌아다니며 방역활동을 벌이느라 바빴다. 한파에 소독약이 얼어서 소독약 분사기에서 약이 나오지 않을 때면 방역 관계자들은 전기난로로 분사기를 데우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제 남대문시장 방역을 했거든요. 그런데 땀 배출이 안 되다 보니 입고 있던 옷이 완전히 젖었어요. 날씨가 추워서 젖은 옷이 얼어버리니까 괴롭더라고요. 사태가 빨리 끝나야 할 텐데 말이죠. 모두가 고생이에요.” 이날 방역활동을 벌인 박 씨의 이야기다.
방역 뒤 오후부터 시장 근처 주민 발길 이어져
시장에 매출 혹한기가 불어닥친 건 1월 20일 남대문시장에 코로나19 12번째 확진자가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소식을 들은 손님들은 이곳 신중부시장에도 발길을 끊었다. 보름가량 바이러스 잠복기가 지났고 2차·3차 감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시장을 찾는 손님은 없었다.
이날 방역대원들의 노고를 알았던 걸까. 오후부터 시장 곳곳에 손님들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니, 잘 지내셨어? 내가 매출 좀 올려주러 왔지!” 오후 5시, 어스름이 깔릴 무렵 오장동에 사는 염 모 씨가 최 씨네 식료품점 앞에서 밝게 인사를 건넸다. 마스크로 얼굴이 반쯤 가려졌지만 최 씨 눈가에 미소가 번지는 게 분명히 보였다. 염 씨는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온갖 나물을 비롯해 양파와 귤 한 상자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현금 3만 4000원이 사장 최 씨 손에 쥐어졌다. 염 씨는 가게를 나서며 다시 인사말을 전했다. “내일 또 올게.” 고마운 인사말 때문이었을까. 최 씨는 점포 물건을 정리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동네 단골들이 오니까 손님이 적어도 가게 문 닫기가 어려워요. 내일 쉬려고 했는데 문 열어야겠네. 하하.”
퇴근 시간에 다다르자 최 씨 가게뿐 아니라 다른 가게에도 손님들 발길이 이어졌다. 시장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퇴근길 정장 차림으로 들러 물건을 사가고 있었다. 낮보다는 손님이 늘어난 모습이었다. 늘어난 손님만큼이나 시장도 다소 활기를 찾았다.
▶2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평화시장에서 한국방역협회 방역대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연합
4대문 주변 전통시장 9334개 점포 방역 마쳐
이날 방역대원들이 준비한 소독제 양은 총 240ℓ였다. 방역대원 측은 65대 1 비율로 물과 희석해, 3.3m²(약 1평)당 40㎖를 뿌렸다고 설명했다. 방역대원 박 씨는 2시간여 방역활동을 하면서 상인들에게 소독약의 무해성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몸에는 해가 없습니다. 그래도 식자재에 소독약이 묻을까 봐 이쪽에만 뿌렸어요. 이 정도면 코로나19 할아버지가 와도 다 죽을 겁니다.”
방역 현장을 찾은 원용남 한국방역협회 서울지회장도 상인들 앞에서 소독제 효력을 확신했다. “확진자가 왔다 가도 소독하면 바이러스는 99.9% 사멸이에요. 소독제를 뿌리면 코로나19 청정지역이 되는 겁니다.” 그는 연이어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시민들이 불안감에 전통시장을 찾지 않아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일이 없도록 특별 방역을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찾아와도 됩니다.”
서울시는 신중부시장을 포함해 2월 14일까지 사대문 주변 전통시장 9334개 점포에 대한 방역을 마쳤다.
▶방역대원이 신중부시장 내 가게에서 방역을 하고 있다.
중구청 “다음 주면 진정세로 접어들 것” 전망
“지금처럼 방역만 제대로 해도 다음 주엔 사태가 진정세로 접어들 겁니다. 그럼 시장도 다시 북적일 거고요.”
위상복 서울시 중구청 전통시장과장은 앞으로 상황을 이렇게 전망했다. 이처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중구청 내 시장 상권 방역에 철저히 대비했기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다 보니 제일 직격탄을 맞는 곳이 쇼핑센터예요. 그 가운데서도 골목형 시장이거든요. 그래서 서울시에 신중부시장 등 골목형 시장 중심으로 긴급히 방역 요청을 했어요. 또 남대문시장이라든지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등 2000~3000평의 큰 시장도 방역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고요. 일부 시민은 규모가 있는 사업장이나 큰 시장만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는데, 저희는 사업장 규모랑 관계없이 전면적으로 방역을 하고 있습니다.”
방역은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을 우선순위로 진행하고 있다. 또 시민들이 코로나19 의심환자가 다녀갔다고 민원을 넣으면, 바로 해당 구역 방역을 시행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방역 요청이 중요한 이유다.
▶방역대원들이 신중부시장에서 방역에 앞서 구역 지도를 살펴보며 회의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위해 긴급 융자지원
2월 17일부터 말까지 중구에선 기금 40억을 투입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긴급 융자지원을 하기로 했다. 연리는 1.4%로 아주 낮다. 위상복 과장은 “서울시에서도 1000억 정도 똑같은 지원기금을 운용하는데, 중구에서 관련 안내를 하고 있어요. 70~80%가 도매상권인 동대문시장에서는 이와 관련해 임시 상담소를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상인들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 운영하면서, 코로나19 예방 안내와 체온 점검 등 검진도 진행하고 있으니 필요한 사람은 이용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겨내자 코로나!” 방역이 한창이던 때 신중부시장 상인연합회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여 구호를 외쳤다. 그 옆을 지나가던 시민들도 같이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한 관계자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를 떠올리며 “이번 사태도 보건당국과 시민들의 힘이 더해져 곧 지나갈 겁니다”라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시장 상인들이 대대적인 소독을 진행한 방역업체 직원들에게 크게 고마워하더라고요.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손님들도 안심하고 다시 찾을 거고요. 결국 메르스도 지나갔잖아요. 메르스 사태 때 주민들이 신중부시장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찾아줬어요. 바닥으로 떨어진 매출이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빠르게 회복됐던 기억이 있죠.”
글·사진 강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