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속물적 욕망의 오브제

2020.02.17 최신호 보기

▶시트로엥 DS 21.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나온 모델과 같은 차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다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을 보고 반가웠다. 파리에 있는 중앙정보부 요원이 김형욱을 잡는 데 동원하려고 그곳의 조직폭력배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다. 자동차가 멀리서 다가오다 우회전해 어떤 건물의 차고로 들어간다. 차고 안으로 장면이 바뀌고 차에서 내린 중정 요원이 폭력배들과 만난다. 이 장면은 프랑스의 거장 장 피에르 멜빌이 감독한 1967년작 <고독>(원제는 ‘사무라이’)의 한 장면을 똑같이 연출한 것이다. 어떤 인터뷰를 보니 우민호 감독은 멜빌 감독의 이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등장하는 자동차는 프랑스 자동차 역사상, 아니 세계 자동차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칭송받는 시트로엥 DS다. 이 차는 1955년에 처음 발표되었고, 1975년까지 생산되면서 시대마다 약간의 디자인 변화가 있는데, 전조등에서 차이가 분명하게 보인다. 멜빌 감독의 <고독>에 나오는 DS 19 모델은 1960년대에 생산된 차고, <남산의 부장들>에 나온 차는 1970년대에 출시된 DS 21 또는 23 모델로 보인다.

꼭 한 번 소유하고 싶은 꿈의 자동차
시트로엥 DS가 1955년, 파리 모터쇼에서 발표되었을 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차는 고급 품목이라 가격이 비쌌는데도 공개된 지 15분 만에 740여 대, 그리고 하루 동안만 1만 2000대의 주문을 받았다. 이 차는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앞선 차였다. 차체에 기존의 스프링이 아닌 물과 공기의 압력을 이용한 ‘수기압식(hydropneumatic)’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처음 도입했다. 그 결과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편안한 승차감을 안겨준다. 이것은 차를 타봐야만 느낄 수 있다. 모터쇼에서 그걸 경험할 수 없는 관객이 주문을 했다는 건 기술이 아닌 순전히 시각적인 외관 때문인 셈이다.
65년이 지난 지금 봐도 그 외관은 예사롭지 않다. <클래식 & 스포츠카>라는 영국의 잡지는 1999년에 시트로엥 DS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선정했다. 그럴 정도니 1950년대 중반의 모터쇼 관객들에게 이 차는 외계에서 온 듯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DS는 그 모양이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것이었다. 차체가 뒷바퀴를 가리고 공기역학적 디자인으로 뒷부분으로 갈수록 쐐기 형태를 갖는다. 옆에서 보면 차의 선이 단절이나 굴절 없이 유려하게 흐른다. 이 유려한 선이야말로 DS 매력의 핵심 포인트다. 또 차체와 지붕을 연결하는 기둥인 필러가 아주 얇고 유리창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차보다 훨씬 큰 점도 특이한 것이었다. 그런 모습이 마치 미확인비행물체(UFO)를 연상시키며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시트로엥 DS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것이 있다. 바로 롤랑 바르트가 <신화>라는 책에서 이 차의 디자인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한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가 대중적인 소비재를 비평함으로써 그 차에 대한 명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시트로엥’이라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오늘날 자동차가 위대한 고딕 성당과 거의 정확한 등가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 최고의 창조물은 익명의 예술가들의 열정으로 고안되고, 전 인구가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미지로 소비한다.”
DS를 소개하는 글마다 반드시 이 부분이 인용된다. 내가 볼 때 그 부분을 발췌 인용한 자동차 전문 필자들 중 정말로 롤랑 바르트의 ‘새로운 시트로엥’이라는 글을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마도 그들은 인용한 것을 재인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르트가 그 글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시트로엥 DS의 마술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차에 대한 현대인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 태도란 굳이 시트로엥 DS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명차’ ‘드림 카’처럼 사람들이 선망하는, 꼭 한 번 소유하고 싶은 꿈의 자동차에 대한 소시민이 갖는 태도를 꼬집는 것이 그 글의 요지다.

자동차는 기술적 진보의 상징이자 대단히 매력적인 오브제(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작품에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다. 자동차가 대중화된 뒤 미학적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외관의 가치는 기능과는 별도의 상징성을 창출한다. 외관으로 차별화된 차는 단지 이동 수단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시의 수단으로 전용되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 모든 물건은 과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옷이나 신발, 시계, 가방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는 패션 상품이 그렇다. 하지만 자동차보다 더 확실한 과시 수단이 있을까? 왜냐하면 사람들이 집 밖으로 가지고 다녀서 지속적으로 시선을 끌 수 있는 물건 중 자동차만큼 크고 비싼 것은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기술적 진보를 상징하는 우주 비행선, 여객기, 여객선, 자동차 중 자동차만 유일하게 광범위한 개인적 소유물이 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1955년 파리모터쇼에서 발표된 시트로엥 DS 19

소시민의 경박한 물신주의에 대한 경멸
이런 특징으로 인해 자동차 광고는 언제나 지위나 계급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광고에서 자동차 소유자는 늘 높은 지위와 부유함을 암시하는 소품과 배경에 둘러싸여 있다. 성과 대저택, 요트가 있는 휴양지, 가죽 코트를 입은 귀부인과 기사, 젊고 아름다운 여성 등. 영화 속에서도 자동차는 그런 연상과 상징을 잘 활용한다. 멜빌 감독의 <고독>에서 시트로엥 DS는 범죄의 도구로 활용되지만, 그 날렵하고 세련된 외관으로 인해 주인공 알랭 들롱이 연기하는 ‘고독하고 쿨한 킬러’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준다.
롤랑 바르트가 ‘새로운 시트로엥’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자동차의 구실과 가치가 전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르트는 이 모델의 이름인 DS가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여신(de´esse, 데에스)’과 같다는 점에 착안했다. 바르트는 현대인이 소비하는 물건 중 자동차는 가장 난도가 높은 기술적 산물이자 또한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그것을 고딕 성당에 비유하며 하늘에서 떨어진 것, ‘여신’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마술적인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런 여신은 모터쇼 전시장에서 단지 바라봄의 대상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만지는 대상이 된다. 관람객은 차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이것은 여신의 격하(格下)다. 반면 소시민의 지위는 향상된다. 그 지위 향상이란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 만족이다. 다시 말해 마술적인 힘을 지닐 정도로 아름다운 자동차를 소유함으로써 지위 상승이라는 소시민의 세속적 욕망이 이뤄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오늘날에도 흔히 목격하지 않는가. 비록 충분히 부유하지 못해도 차만큼은 남들의 시선에서 부끄럽지 않을 브랜드를 구입하는 것이다. 결국 바르트가 시트로엥 DS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소시민의 경박한 물신주의에 대한 경멸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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