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너 나 못 이겨!”
2013년 8월 개봉된 영화 <감기>(김성수 감독)에서 주인공 김인해(수애)가 한 말이다. 영화에서 호흡기로 감염되는 바이러스가 초당 3.4명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퍼진다. 치사율 100%라는 사실이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정부는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병된 도시를 폐쇄한다. 시간당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 <감기>는 신종 바이러스가 전염될 때 초기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홍콩에서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들어온 밀입국자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모두 죽었다. 몽싸이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는데, 밀입국자 브로커인 병기와 병우 형제 가운데 병우가 최초로 감염된다. 몽싸이는 도망치고 병우는 약을 사러 간 약국에서 기침하면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된다. 병우가 슈퍼전파자가 됐다. 병기 형제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밀입국자들이 죽은 사실을 보건당국에 신고하고 몽싸이와 함께 격리됐더라면 바이러스는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확실성과 공포감 먹고 자라는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좋아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공포감이다. 불확실성과 공포는 바이러스가 활보할 수 있는 터전이다. 어둠과 음습함이 악의 싹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경로를 통해 감염되고,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는 사실이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에서만 2월 12일 0시 현재, 4만 2638명이 감염돼 1016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두려움을 키운다.
불확실성(Uncertainty)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을 가리킨다. 공포감은 ‘~카더라’식의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사람들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주가가 급락하고 여행과 쇼핑 등을 삼가며 공장 가동을 중단시킨다.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이 경제적 비용으로 직결된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란 잠재 비용이 갈수록 실제 비용으로 현실화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주름살을 깊게 한다. 미국의 유명한 통계학자이자 저술가인 나심 탈레브는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사건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을 ‘블랙스완(Black Swan·흑조)’이라고 불렀다. 코로나19는 일종의 블랙스완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난치병은 아니다. 방역을 제대로 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감염됐더라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중국과 가장 가까운 한국에서 환자가 28명(12일 정오 현재)에 머물고, 사망자가 없으며, 국내 환자 중 4명은 이미 완치됐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협조를 얻으면 이른 시일 안에 극복할 수 있는 전염병일 뿐이다.
불확실성과 비교되는 것이 위험(Risk)이다. 위험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의 원인과 어떤 확률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 범위안의 사건을 가리킨다. 그 사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Controllable). 불확실한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서 위험한 사건으로 바뀐다. 대처하는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된다.
악이 사라지듯 나쁜 바이러스는 죽는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는 피하는 것이 올바른 대처법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의연하게 맞아야 한다. 소나기 속에서 우왕좌왕하면 당황하고 공포에 빠져 뜻하지 않은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소나기를 맞으면서 질서를 유지하고, 소나기 피할 곳을 찾으며, 소나기에 약한 사람을 돕는 등 일을 나눠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해야 한다.
<감기>에서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김인해의 딸 미르(박민하) 몸에 항체가 형성됐다. 항체를 추출해 백신을 개발하고, 대량생산해서 보급해 바이러스는 퇴치됐다. 공포에 떠는 군중 속에서도 강한 책임 의식을 발휘한 소방서 구조대원 강지구(장혁)와 의사의 본분을 다하며 바이러스보다 강한 모성애를 발휘한 인해,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미르 등의 역할 분담 덕분이었다.
병은 인간의 숙명이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동식물과 바이러스도 지구의 공동 주인이다. 인간의 의술과 치료약 개발에 따라 바이러스의 생존술도 그만큼 진화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19는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찾아왔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하게 해주는 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오는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 시스템을 갖추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무섭다고 도망가면 영원히 지고 만다.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면서 그것을 이기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것이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비용이 적은 방법이다.
봄이 오고 있다. 봄바람이 불면 바이러스도 슬슬 꼬리를 내릴 것이다. 밝고 따뜻한 햇볕이 비추면 악이 사라지고 선이 자라나듯 나쁜 바이러스는 죽는다. 우리 함께 외쳐보자.
“코로나19, 너 우리를 절대 이길 수 없어!”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