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리’ 여자농구 10% 확률로 100%를 만든다

2020.02.17 최신호 보기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선수들이 2월 9일(한국 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 영국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행. 과연 본선 무대 이변은 가능할까?
이문규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2월 10일(한국 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 B조에서 1승2패 3위로 본선행을 확정 지은 요소는 여러 가지다. 먼저 객관적 전력의 열세를 임기응변, 선택과 집중으로 극복한 사령탑의 전술이 평가받을 수 있고, 둘째 감독의 요구에 따라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의 치열한 승부욕을 들 수 있다. 한국은 B조 4개국 가운데 국제농구연맹(FIBA) 순위가 가장 낮은 19위였다. 스페인(3위)과 중국(8위) 등 톱10 국가와는 차이가 크고, 영국(18위)조차 신장과 선수층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한국은 예비 명단을 포함해 24명의 자원을 모으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고, 이 가운데 12명을 선발해 나갔지만 대부분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맏언니 격인 김정은(우리은행)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거의 뛰지도 못했다. 애초 중국에서 열리기로 했다가 ‘코로나19’ 재난으로 유럽으로 장소가 바뀌면서 장거리 이동과 시차로 인한 피로는 가중됐다.
이럴 경우 감독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결국 해볼 만한 상대인 영국과 승부에 집중했고, 82-79로 승리한 덕분에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본선행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열악한 팀 사정에 최상의 결과 일궈내
한국은 첫 상대인 스페인전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아 46-83으로 대패했고, 마지막 중국과 경기도 60-100으로 40점 차의 완패를 당했다. 일부에서는 두 번째 영국전에 집중하면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소진된 점과 다양한 선수 기용을 하지 못한 것을 들어 감독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 올림픽 예선전에 나갈 때 본선행을 목표로 잡았고, 팀의 사정 또한 열악했던 점을 고려하면 최상의 결과를 일군 사령탑을 칭찬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이문규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다. 간절함의 승리”라고 평가했는데, 영국전을 복기하면 그 말은 정확하다. 한국 시각으로 2월 8일 밤 열린 영국과 대결에서 한국 여자농구는 근래 보기 드문 저력을 과시했다. 40분 경기에서 82점의 고득점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는데, 강이슬(하나은행)은 6개의 3점슛을 꽂았고, 막판 얻은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키는 등 실수가 없었다. 김단비(신한은행)와 박혜진(우리은행)도 정밀한 외곽포로 한국 승리의 선봉이 됐다. 한국팀은 22개의 3점슛 가운데 13개를 적중시켰는데, 보통 40%만 돼도 수준급 평가를 받는 3점슛 성공 확률이 59%에 이른 것은 경이적이었다. 그만큼 온 정성을 다해 던졌다.
경기 뒤 선수들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심정이었다고 밝혔는데, 평소 잠자고 있던 잠재력이 결정적 순간에 분출한 것과 같다. 선수들의 괴력은 한국 여자농구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한국은 최약체로 출전해 은메달을 수확한 바 있다. 36년 전 일을 선수들이 직접 보지는 못했겠지만, 한국 여자농구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도 선수들 가슴에 자존심과 긍지의 근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정태균 해설위원은 “박지수가 수비와 공격에서 대들보 역할을 했다.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한 것은 한국 여자농구의 전통 때문이다. 영국전 1승을 가능케 한 놀라운 외곽슛 정확도가 방증한다”고 했다.
모두가 도쿄행을 의심했을 때 “무조건 영국을 잡고 올림픽에 가겠다”고 약속했던 이 감독의 과제는 올림픽 체제로 대표팀을 운영하면서 전력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본선에서는 더 강력한 상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 12개 팀의 면면을 보면 미국(1위), 호주(2위), 스페인(3위), 캐나다(4위), 프랑스(5위), 세르비아(7위), 중국(8위), 벨기에(9위), 일본(10위) 등 9개가 세계 톱10에 들어가 있다. 나이지리아(17위), 한국(19위), 푸에르토리코(23위) 등 3개 팀이 하위권이다.
 
▶도쿄행 티켓을 들고 기뻐하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대한민국농구협회

도쿄올림픽 1승 따내 8강 진입 목표
물론 조별리그에서 1승만 해도 8강을 바라볼 수는 있다. 하지만 해볼 만한 전력으로 평가되는 나이지리아나 푸에르토리코가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기는 어렵다. 한국은 세계 10위 이내 팀을 최소한 한 번은 꺾어야 8강 진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이 감독은 일단 “올림픽 본선에선 1승을 하는 것이 목표다. 승리를 따내고 8강까지 노려보겠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을 이끌며 은메달을 획득한 경험도 있다.
7월 본선까지 산적한 과제를 앞둔 이 감독은 고민이 많다. 가용 인원은 부족하고, 주전들만 내보내면 혹사시킨다는 비난도 터져 나온다. 이번에 ‘영국만 잡는다’는 전략이 주효했지만, 대진 추첨에서 어떤 상대를 만날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한국 여자농구는 10%의 확률을 100%로 만드는 ‘도깨비 팀’이다. 이 감독은 “높이의 열세가 예상되는 만큼 충분한 훈련 기간을 통해 수비 전술을 가다듬겠다. 공격에서도 3점슛을 덜 시도해야 한다”며 조직력과 공격 옵션 다양화 등에 집중할 뜻을 비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여자농구. 팬들은 악바리 근성의 한국 여자농구가 1승을 넘어 ‘이변’을 연출하길 기대하고 있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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