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보존을 넘어 ‘공유 한옥’으로

2020.02.17 최신호 보기

▶관광객으로 붐비는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풍경.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간직한 한옥은 ‘관광 한국’을 이끄는 중요한 자원이다.

‘무채색의 기와지붕들이 이뤄내는 거대한 합창은 도시 속에서 차라리 하나의 인공적인 숲이고 역사로 다가온다. 나지막한 담장 사이로 이어지는 구불거리는 골목은 자동차 위주의 시끄러운 도로에서 즐길 수 없는 여유와 느림의 발걸음을 보장한다. 한옥은 건강하고 여유로운 집이다.’ 서울의 대표적 한옥 밀집지역인 종로구 북촌을 소개한 책 <북촌 풍경>에 수록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의 글 일부다. 
 
▶한옥협동조합이 조성한 경상북도 안동의 선성현 문화단지. 안동댐 수몰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관아, 동헌, 객사, 역사관과 민가촌 등을 성공적으로 재현해 문화자원과 전통체험 테마 공간 등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옥 개방성은 현대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
나무와 흙, 돌 등 자연에서 얻은 소재로 짓는 한옥은 자연 친화적인 집이다. 자연을 차단하는 현대 주택과 달리 눈과 비, 바람까지 받아들여 집의 일부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게 한옥이다. 나무나 돌, 흙의 수명만큼 집의 생명력도 길다. 다만 관리가 필요하다. 생명이 없는 시멘트 집과 달리 한옥은 숨을 쉬는 유기체와 같아서 생로병사 하기 때문이다. 나무와 흙은 세월에 따라 변형된다. 썩거나 풍화한 소재들은 그때그때 수리해야 한다. 김봉렬 교수는 한옥을 ‘마치 늘 돌봐줘야 하는 동반 동물같이 때때로 점검하고 수리해야 하는 번거로운 집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번거로움은 한옥이라는 생명체에 사는 즐거움이며, 늘 건강해질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한옥살이를 경험한 중장년층 3명 가운데 2명은 살고 싶은 집으로 한옥을 꼽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실천에 옮기는 이는 극소수다. 시공비가 비싸고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한옥협동조합은 그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우렁각시다.

▶한옥협동조합의 공사 모습. 강원도 원주에 치목장을 마련해 한옥 시공비 절감과 대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한옥협동조합

한옥협동조합은 2013년 12월 17일 설립됐지만 출발은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년쯤 전에 장남경 대표가 한옥 현장에 참여했다가 한옥의 매력에 빠진 것이 시작이죠. 초기에는 분야별 장인들이 모여 협업하는 커뮤니티 수준이었는데 ‘한옥의 보급’을 목표로 협동조합으로 발전한 거죠.” 문문주 한옥협동조합 기획팀장의 설명이다. 2015년에는 문화재형 예비 사회적기업(문화재청장)과 서울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도 지정받았다. 2017년에는 사회적기업 인증(고용노동부 장관)도 받았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혜택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택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쟁점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의지가 컸지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건 한옥의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아파트는 문만 닫으면 폐쇄된 공간입니다. 관계를 단절시키는 거죠. 한옥은 반대로 개방성이 뛰어난 집입니다. 한옥의 보급은 여러 사회적 문제의 원인인 폐쇄성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문문주 팀장은 한옥이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집이라고 강조한다. 눈비를 받아들이고 바람이 머무는 한옥의 마당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공간이다. 한옥은 유난히 창과 문이 많다. 문을 열면 여러 개의 방이 하나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바로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 구실도 한다. 한옥협동조합이 옛 한옥을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 한옥을 공유주택 등 사회주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키우는 이유다.
 
▶한옥협동조합이 개축한 생활 한옥. 한옥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주방과 화장실 등을 현대화해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한옥을 짓고 있다.│한옥협동조합

문화재수리업 등록으로 기술력 인정받아
한옥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아파트처럼 똑같은 집은 없다. 지역과 땅의 생김새, 주인의 삶까지 반영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좋은 한옥을 지으려면 무엇보다 터와 장인의 실력이 중요하다. 한옥협동조합은 2017년 문화재수리업(보수단청업) 등록을 마쳤다. 설계부터 집을 짓는 대목과 가구를 만드는 소목, 기와를 다루는 와공, 절집과 궁궐에서 볼 수 있는 단청 기술을 보유한 화공까지 15명의 직원은 문화재수리기술자(기능자)와 설계사 자격증을 갖춘 이들이다. 실력만큼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이들은 안동댐 수몰지역 선성현의 관아와 동헌, 군관청 등 36개 건축물 이전 시공, 경기도 파주시 삼릉 공릉 수복방 및 수라청 복원공사, 종로 탑골공원 팔각정과 서문 보수 공사, 경기도 용화사 대웅전 신축 등 굵직한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특히 경상남도 고성군 위계서원 공사는 170년이 된 기존 자재를 활용해 외부는 원형을 살리고 내부는 현대적으로 재탄생시켜 한옥 리모델링 실력도 인정받았다. 서울시가 보유한 북촌과 서촌의 공공 한옥 30여 채도 한옥협동조합의 손길로 오늘의 모습으로 재탄생됐다.
한옥은 크게 전통 한옥과 근대 한옥, 현대 한옥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생활 가옥으로서 전통 가옥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 밀집지역인 북촌과 서촌, 익선동, 돈암동 등지의 한옥들도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까지 지어진 근대 한옥이다.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부족한 주택문제가 반영돼 세를 놓기 좋게 방의 수를 늘리는 등 변화를 거쳤다. 생활을 반영하는 집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게 당연하다. 한옥협동조합도 한옥의 전통은 지키면서 현대 생활에 불편하지 않은 한옥을 짓는 일에 많은 힘을 쏟는다. “창호와 온돌, 단열, 화장실과 주방 등에 현대 기술을 접목합니다. 디자인과 기능은 과거의 것을 잇지만 생활의 편리함 또한 놓치지 않는 거죠. 도시에서 과거처럼 나무를 때는 온돌을 놓을 수는 없잖아요.” 한옥의 보급이 목표인 만큼 한옥 인테리어도 많은 공을 들이는 분야다. 아파트, 공공건물, 근린생활시설은 내부만이라도 한옥 인테리어를 도입하면 한옥이 주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어 최근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저변 확대와 전문인력 양성 위해 교육사업도
교육과 체험 활동도 한옥협동조합이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북촌의 막다른 골목에 정갈하게 지어진 대지 60평(198㎡), 건평 27평(89㎡)의 한옥에는 한옥협동조합 교육관 간판이 걸려 있다.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열린 한옥이다. “서울시가 보유하고 있는 공공 한옥입니다. 관광객도 쉽게 들어오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합니다.” 마당에는 한옥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구조물이 빼곡하고 집 내부에 노출된 기둥과 보, 서까래 등 구조물에도 기둥, 굴도리, 배도리 등 이름을 적어놓았다. 방 한가운데 놓여 있는 하얀색 모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무량수전의 골조를 3D 프린터로 제작한 것이다. 분해·조립이 가능해 한옥의 구조를 살피고 부자재의 기능과 역할을 배울 수 있다.
한옥살이에 관심이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한옥 교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진로탐색 교실, 스님들을 위한 불사(佛事) 교육 등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옥 모형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한옥 전문가가 직접 교육을 진행해 인기가 높지만 교육비는 받지 않는다. 교재도 무료로 제공한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도리와 한옥이 미래 주택으로 퍼질 수 있는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종로구 북촌마을에 자리 잡은 한옥협동조합 교육관. 한옥의 대중화를 위한 교육공간으로 관광객이 한옥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물 등이 빼곡하다.

한옥 건축을 꺼리는 데는 비싼 시공 비용도 한몫한다. 표준화가 안 돼 있는 데다 목수 등 장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한옥협동조합은 한옥의 시공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질 좋은 원목 확보와 나무 가공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강원도 원주에 나무를 다듬는 치목장을 직접 운영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있다. 부설 연구소는 기술과 부재의 표준화를 위한 연구에 매진 중이다. 한옥은 모두 같은 듯하지만 지역마다 다르다. 눈이 많은 지역의 지붕은 각이 가팔라야 하고, 비가 많은 지역은 지붕이 넓어야 한다. 같은 지역이라도 땅의 생김새와 건축주 요구에 따라 부자재는 다양하게 가공해야 한다. 표준화가 쉽지 않은 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옥협동조합은 연구를 쉬지 않는다. 느리더라도 성과가 쌓여 더 좋은 한옥을 향한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한옥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짓는 집이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건축학원 등록도 마치고 개원을 준비 중이다. “기술이 좋다고 전문가는 아닙니다. 문화적 소양도 기술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을 열 건축학원이 기술인의 인문학적 교양을 키우는 데도 주력하겠다는 이유다.
 
▶한옥협동조합 문문주 기획팀장. 한옥 설계와 시공뿐 아니라 한옥의 우수성을 알리는 교육과 강의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장인들의 허브
문 팀장은 한옥을 “도시의 팍팍한 삶을 위로하는 집”이라고 규정한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문화재가 좋고 한옥이 좋아서” 건축학을 다시 공부하고 지금까지 한옥 외길을 걸었다. 한옥협동조합은 문 팀장과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의 ‘허브(중심이 되는 곳)’다. 15명의 직원뿐 아니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장인의 수는 50명(팀)이 넘는다. 좋은 일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한옥협동조합이 잘 돌아가면 일자리도 늘고 전통 주거문화도 되살릴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투명하게 짓습니다.” 한옥이라면 작은 보수공사까지 마다하지 않는 한옥협동조합의 고객에 대한 약속이다.

글 윤승일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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