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친구

2020.02.17 최신호 보기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글을 쓸 때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어떨 때 영감이 떠오르는지 묻는 사람에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를 들려줘야 할까.
거리의 풍경을 관찰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할 때, 혹은 물소리만 남긴 채 샤워를 할 때…. 뭔가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너무 거창하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많은 창작자들이 언급한 바 있는 그런 얘기였다.
그래서 목소리를 점잖게 가다듬었지만, 아니었다. 글을 쓸 때, 특히 몰입해서 창작을 할 때 나는 며칠간 샤워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사방이 막힌 방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게 영감은 우아하게 오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뇌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서적인 활동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벌어지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렇게 홀로 버티다 보면 키보드가 닿는 손끝에 영감이라고 부를 만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흩어지고 말았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지만, 혼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잡학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고, 엉덩이와 의자가 하나 된 물아일체의 상황에서 그분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데는 무리가 따랐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요리를 해보기도 하고 추천받은 책을 읽거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다 좋았다. 역사 속 위인이나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이들의 얘기를 곱씹어보기도 하고, 훌쩍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다 좋았다. 분명 영감을 얻는 좋은 방법이지만, 내게 맞는 방법은 아니었다.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영감이 필요할 때, 나는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영감과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지는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와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했다.
“바쁘지? 잠깐 통화 괜찮아?”
“친구하고 잠깐 전화도 못할 만큼 바쁘면, 그게 사는 거냐?” 그가 언제나처럼 툴툴댔다.
바쁜 직장인. 바쁘다는 그 흔하고 평범한 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는 그럴듯한 말. 지인들 중에 바쁘다는 걸 은연중에 내세우거나 대놓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그가 유일했다.
내가 한숨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요즘 슬럼프야. 어떡하지?”
“뭘 어떡해? 넌 매일이 슬럼프였어.” 그가 다시 툴툴댔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살가운 사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듣기 좋은 말이나 맘에 없는 얘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와 친해질 수 있었다. 나보다 더 까칠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유일했다.
친구와 만났다. 나오라고 하면 나오지 않는 영감과 달리, 그는 내가 나오라고 하면 나왔다. 항상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누가 보면 앙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늘 핑퐁 게임의 연속이었다.
“문장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 힘을 빼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도 너처럼 힘이 하나도 없는데.”
“여기가 조금 무겁고 난해하지 않아?”
“어쩌라고? 쉽게 썼다는 제품 사용 설명서도 읽으면 난해해.”
그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과 이해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럴듯한 것보다는 솔직한 것이 낫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에게서 나오는 얘기가 정확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믿을 수 있었다. 격의 없는 대화는 그래서 가능했다. 또 다른 시각을 갖는 건 그렇게 가능했다.
영감은 멀리 있거나 특별한 데서 오는 게 아니었다. 내 일상을 지켜봐주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서 나왔다. 영감의 비밀이나 창작의 비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믿었던 내가 바보가 되는 순간, 영감은 찾아왔다.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재밌게 쓸 수 있을까?”
내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질문을 던지자 그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작가는 넌데.”



우 희덕_ 코미디 소설가.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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