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대학교 대외협력팀 관계자들이 2월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들머리에서 이날 입국한 중국 유학생들을 버스에 태우기 전 마스크와 장갑을 제공하고 체온을 재고 있다.| 한겨레
전면적 중국인 입국 금지가 해법인가
코로나19 확진환자가 최근 급속도로 늘면서 시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시민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정부가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않아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며 “지금이라도 전면적으로 중국발 입국 차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은 2월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발 입국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특별검역절차가 이뤄지고 있어 추가적인 입국 금지를 검토하는 것보다는 현재 수준에서 위험 요인 유입을 막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법무부의 출입국 통계를 보면 중국인 입국자 전원을 대상으로 별도 입국장에서 소독과 발열 점검을 하고 ‘자가진단 앱’을 쓰게 하는 등 중국 국적자의 입국은 특별입국절차로 관리·통제되고 있어 실질적으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는 많지 않습니다.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2월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국내 유입과 확산 차단을 위한 법무부 조치 및 경과를 설명하며 “2월 4일 0시부터 중국 위험지역에서 입국 제한 조치를 시행해 29일까지 25일간 총 9만 5743명을 차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주 우한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발급한 사증 효력을 정지해 총 8만 1589명의 입국을 원천 차단했고, 후베이성 발급 여권 소지자와 중국에서 환승 입국 시도자 등 총 1만 3965명을 중국 현지 탑승 단계에서 차단했습니다. 국내 공항·항만에 도착한 입국 제한 대상자 189명은 중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를 통해 2월 4일부터 하루 입국자가 평균 3만 명에서 5000명대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2월 28일은 처음으로 1000명 아래로 줄어 870명에 그쳤습니다.
중국인의 신규 비자발급 건수도 크게 줄었습니다. 법무부가 코로나19 잠복기간이 14일인 점을 고려해 신규 비자신청 중국인에 대한 ‘건강상태 확인서’를 의무적으로 제출받아 후베이성 등 위험지역 방문과 감염병 증상 여부를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조치로 주중 전체 공관 사증발급 건수가 1월 14만 8311건에서 2월 2805건으로 98%나 줄었습니다.
국가 간 상호주의에 입각해 신중한 접근 필요
입국 금지는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주의 깊게 살펴볼 문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101주년 3·1절 기념사에서도 이런 원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지금 세계는 재해와 재난, 기후변화와 감염병 확산, 국제 테러와 사이버 범죄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 요인이 더 많아지고 있다”며 “한 국가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으로 초국경적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물론 인접한 중국과 일본,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코로나19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해 중국 등과 상호주의에 입각한 초국경적 협력과 혐오 대신 화합 및 배려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2월 24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과 관련해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 등 이미 실효적으로 80% 이상의 (중국인) 출입국자가 통제되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어떤 조치를 하면 상호주의가 작동되는 경우가 자주 있어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정 총리는 이어 “우리 학생들도 중국에서 많이 공부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선 중국인 유학생을 보호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입국 금지가 차별·혐오 대상이 돼선 안 돼
전면적인 입국 금지가 성숙한 민주국가에 걸맞지 않은 조치라는 국제사회의 판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럽의 경우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연합(EU) 및 중국과 인접하지 않은 대다수 국가가 중국발 여행객에 대한 별도의 차단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런 이유로 코로나19와 관련해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선포하면서도 교역과 이동의 제한은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국제적 여행과 교역을 불필요하게 방해하는 조처가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든 국가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WHO의 권고는 국제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과학적 근거가 없는 국경 봉쇄는 WHO의 국제보건규칙(IHR) 위반입니다. WHO는 감염병과 싸우기 위해 국제공조와 다자주의 원칙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에 따라 입국 금지 조치가 인종·국적·성 등에 따라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며, 제한을 하더라도 최소 침해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보건규칙의 최고 권위자인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교수가 한 학술지에서 언급한 내용은 곱씹어볼 만합니다. “각 나라가 국제 규칙을 위반하고 자국 이기주의로 가는 것에 대해 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입국 제한 조치는 과학에 의존해야 하고 인권침해나 인종차별이 없어야 한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