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총 11조 7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했다. 이는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11조 6000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급감한 자영업자에게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공급하고, 소비 진작을 위해 각종 쿠폰·수당을 확대 지급한다.
시급성·집행 가능성·한시성 원칙 편성
정부는 3월 4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 극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추경은 코로나19 사태 극복과 경기회복 계기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라며 “시급성, 집행 가능성, 한시적 지출이라는 세 가지 원칙에 부합하는 사업 중심으로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총규모 11조 7000억 원 가운데 2020년 세수 부족을 메우는 3조 2000억 원을 제외하고 8조 5000억 원이 정부가 직접 쓸 수 있는 돈이다. ▲감염병 방역체계 고도화 2조 3000억 원 ▲소상공인·중소기업 회복 2조 4000억 원 ▲민생·고용안정 3조 원 ▲지역 경제·상권 살리기에 8000억 원을 투입한다. 70% 이상이 소비 등 내수 되살리기에 쓰이는 셈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예산이 우선 눈에 띈다. 매출 급감으로 인건비·임대료를 내기 어려운 소상공인·중소기업에 제공할 긴급 경영안정자금으로 1조 2200억 원을 편성했다.
4월까지 저임금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영세 사업장에 1인당 임금보조지원금 7만 원도 추가 지원한다. 정부는 4개월간 사업장당 총 100만 원가량이 지급될 것으로 추산했다. 전통시장 점포의 20% 이상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내린 시장에는 화재 안전시설 등을 국고로 지원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가 점포가 일시 폐쇄된 곳의 위생·방역, 재개점 등을 지원하는 데는 372억 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1만 5000개의 점포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서민과 취약계층 생계 안정 지원에 총력
이번 추경안에는 서민과 취약계층의 생계 안정을 지원하는 동시에 소비 촉진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원방안도 포함됐다.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등 138만 가구를 대상으로 최대 월 22만 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4개월 한시적으로 지급하고, 아동수당 대상자 263만 명에게도 1인당 10만 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제공할 계획이다. TV·냉장고 등 고효율 가전기기를 사면 기존 20만 원에서 최대 30만 원 한도 안에서 구매 금액의 10%를 환급해준다. 이를 위해 3000억 원을 투입한다. 어린이집·유치원을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양육하는 경우에 대비해 양육수당 예산도 271억 원 확대했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소비 쿠폰은 주로 6월 안에 쓰도록 하는 한시적 혜택”이라며 “지속해서 지원하면 재정 부담이 클 텐데 이번 추경에는 한시적 사업이 많다”고 말했다.
고용시장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을 4874억 원 확충하고, 취업성공패키지 참여 인원을 5만 명 더 늘려 19만 명까지 확대한다. 저소득층 구직촉진수당(50만 원, 3개월)도 재도입한다. 안일환 기재부 예산실장은 “소상공인이 어려우면 아르바이트 등 근로자들이 해고 위기에 놓이고 그들을 지원하려면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방역 강화… 감염병 전문병원 2개소 추가
코로나19 감염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도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다.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에 음압병실 120개를 확충하고, 음압구급차를 현재 46대에서 146대로 늘린다. 또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을 호남권에 이어 영남권과 중부권에 2개소 추가하고, 신종 감염병에 대한 연구를 전담 수행할 수 있는 바이러스 전문 연구소 설치도 바로 착수한다. 현재 예비비에서 충당하고 있는 폐쇄 의료기관 손실보상 등에 드는 예산 증가에 대비해 목적예비비 1조 3500억 원을 추가한다.
코로나19 발생으로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의 손실보상 예산도 책정됐다. 감염병 전문병원과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의료기관 등에 3500억 원을, 자금난을 겪는 의료기관에는 대출자금으로 4000억 원을 지원한다. 감염병 확진으로 입원·격리 조치된 환자에 대한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비로는 800억 원이 배정했다.
이번 추경 재원은 2019년 쓰고 남은 한국은행 잉여금 7000억 원, 기금 여유자금 등 7000억 원이 우선 활용된다. 나머지 10조 3000억 원은 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된다. 홍 부총리는 “대부분 재원이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돼 일시적으로 재정 적자가 늘어나지만, 지금의 ‘경제 비상시국’을 돌파해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3월 17일 끝나는 2월 임시국회에서 이번 추경안이 통과되도록 추진하며, 통과 2개월 안에 추경예산의 75% 이상을 집행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 “마스크 불편 국민께 송구”
문재인 대통령은 3월 3일 코로나19 확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마스크 공급과 관련해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는 점에 대해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언급한 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들이 긴밀히 협력해서 빠른 시일 내 해결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확진자 폭증에 지역 감염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수입도 여의치 않은 현실적 어려움이 분명히 있지만, 오랫동안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생산물량 확대 지원 ▲공평한 보급방안 강구 ▲공급 상황 투명한 홍보 등 세 가지를 당부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지휘본부(컨트롤타워) 역할에 더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때까지 정부의 모든 조직을 24시간 긴급상황실 체제로 전환해 가동해주기 바란다”며 “특히 모든 부처 장관들이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방역과 민생경제의 중심에 서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마스크 공급과 관련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 4일 “마스크 물량이 절대 부족하다”며 “배급제에 시장경제를 가미한 유통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대구시청에 들러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적 유통망을 통해 50%를 공급해도 잘되지 않아 의료진, 산업현장 노동자, 취약계층 등 꼭 필요한 곳에 마스크를 공급하기 위해 공적 개입을 더 심화시킬 생각이다. 그래서 배급제에 시장경제를 더한 유통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방역당국 “코로나19 ‘피해 최소화 전략’으로 전환”
정부가 코로나19의 방역 대응체계를 전반적인 ‘피해 최소화 전략’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3월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대응 지침’을 일곱 번째로 개정해 이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코로나19 확진환자는 의료진으로 구성된 시·도별 환자관리반(중증도 분류팀)이 중증도를 4단계로 분류해 중등도 이상의 환자는 신속하게 음압격리병실이나 감염병 전담병원 등의 입원 치료를 시행한다. 만약 의료기관 입원 중에 증상이 호전되면 우선 퇴원하고, 치료 담당 의사와 환자관리반의 판단에 따라 생활치료센터 또는 자가요양 조치를 취하게 된다.
또 입원 치료의 필요성은 낮으나 전파 차단과 점검(모니터링)을 위해 격리해야 하는 환자는 국가운영시설 또는 숙박시설을 활용한 지역별 생활치료센터를 설치·운영해 생활 및 의료지원을 한다.
생활치료센터에는 전담 의료진을 배치해 시설 내 확진자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며, 의료진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병원으로 신속하게 입원 조치된다. 이 센터는 시·도별로 시설을 선정해 인근 의료기관 등과 의료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형태로 운영되며, 우선적으로 대구광역시부터 운영한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