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에 몸 던진 ‘백의 천사들’

2020.03.09 최신호 보기

▶2월 29일 대구시 동구 동대구역에서 육군 제2작 전사령부와 50사단 장병들로 구성된 육군 현장지원팀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고위해 방역 작전을 펼치고 있다.│연합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대구·경북 지역을 향해 전국에서 피해 극복을 기원하는 온정이 쏟아지고 있다.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이곳은 감염자 치료·방역의 한계로 치닫는 상황이다. 현지 의료진이 격전을 벌이는 동안 의료봉사 자원자들은 생업을 제쳐두고 대구로 뛰어들고, 기업들은 기부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누리소통망(SNS)에서는 대구와 경북 주민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핵심어 표시(해시태그)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대구·경북을 향한 온정의 손길
“대구에서 의료 인력뿐 아니라 마스크와 고글, 방호복 등 방역용품도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서둘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전남 광양 옥룡보건지소 공중보건의 김형갑 씨)
코로나19로 대구가 멈춰 서자 전국 각지의 의료진이 발 벗고 나섰다. 검체 채취와 치료 지원을 위해 의료봉사에 나선 이들은 정부의 의료봉사자 모집 공고 이후 닷새 만에 800명을 훌쩍 넘겼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1총괄조정관은 2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2월 24일 저녁부터 대구 지역에서 봉사할 의료인을 모집한 결과, 28일 오전 9시까지 총 853명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직무별로 보면 의사 58명, 간호사 257명, 간호조무사 201명, 임상병리사 110명, 행정직 227명 등이다. 전날 490명이 지원한 데 더해 하루 새 363명이나 늘어난 규모다.

차출된 것처럼 둘러대고, 안전하다 안심시키고
전남 광양 옥룡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인 김형갑(29)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월 26일 새벽 6시께 지역의 또 다른 공중보건의 1명과 함께 대구에 도착했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감염 의료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공중보건의들을 돕기 위해 대구 지역 진료 파견에 자원했고, 순번에 따라 이날 대구에 투입됐다. 가족과 친구들이 걱정하며 “꼭 가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그냥 그렇게 정해졌다”고 차출된 것처럼 둘러대고 집을 나섰다. 그는 이날부터 2주 동안 다른 지역에서 투입된 89명의 의료진과 함께 자가격리 상태인 대구 지역 의심환자들의 집을 방호복을 입고 방문해 검체를 채취하는 ‘이동채취반’ 일을 하고 있다.
경기 안성시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 송명제(33) 씨는 2월 24일 대구 진료 파견을 자원했다. 그는 3월 11일 대구 선별진료소에 배치될 예정이다. 송 씨는 “지금 대구가 많이 힘드니까 어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들었는데 어머니가 눈물을 보였다”며 “의사가 제일 안전하니 괜찮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4월 공보의 전역을 앞둔 그는 “전역 직전까지 대구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송 씨는 5년 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경기 고양 명지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며 응급실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고 진료 활동을 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그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현장에서 환자를 돌볼 필수 의료 인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다”고 말했다.

▶김형갑 공중보건의가 2월 26일 새벽 6시께 대구시청 앞에 도착해 찍은 사진(왼쪽)과 경기 안성시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면서 2월 24일 대구 지역 진료 파견에 자원한 송명제 공중보건의│본인

대구시의사회 호소에 순식간에 250여 명 모여
3월 25일 대구로 파견을 갈 공중보건의 조중현(29) 씨 역시 “대구에 먼저 가 있는 공보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레벨디(D) 방호복을 입고 벗기를 반복해야 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환자를 돌본다고 들었다”며 “다른 지역에서도 의심 증상으로 선별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은 상당히 초조하고 불안해하는데 대구는 얼마나 더할까 싶어 자원했다”고 말했다.
대구 지역 내 의사들도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성구 대구광역시의사회 회장은 2월 25일 5700명의 대구시의사회 회원에게 ‘동료 여러분의 궐기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보냈다. 이 회장은 호소문에서 “의료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 신속한 진단이 어렵고 확진환자조차 병실이 없어 입원 치료 대신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며 “지금 바로 선별진료소로, 대구의료원으로, 격리병원으로, 그리고 응급실로 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은 공동 운영하던 개인 의원에 이날부터 10여 일간 휴가를 내고 국가지정 코로나19 치료 거점병원인 계명대 동산병원으로 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의 호소문이 전파를 타자 대구 시내 의사뿐 아니라 경북, 광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자원이 이어지고 있다. 2월 26일 대구시의사회 설명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까지 대구에서 231명의 의사뿐 아니라 광주 10명, 경북 3명, 경남 2명, 전주 2명, 인천 1명, 서울 1명 등 전국에서 250명의 의사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일부 의료진은 이날부터 바로 대구의료원, 선별진료소, 격리병원 등에 투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대구의료원에서 유완식 원장에게 코로나19 현황 설명을 들은 뒤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 “자원봉사 의료인이 진정한 영웅”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7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생업을 잠시 미룬 채 대구·경북 지역으로 집결하고 있는 전국의 의료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인이 부족한 대구 등 현장에 자원봉사를 떠난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이분들이) 진정한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의 호소에 전국 각지에서 뜨거운 호응이 이어지며 현재까지 250여 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문 대통령의 언급을 전했다. 강 대변인은 “사실 문 대통령은 이미 정책실장을 통해 곧 확정할 추가경정예산안에 자원봉사자에 대한 보상안을 반영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대구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매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추경안에 자원봉사자 보상안 반영을 지시하며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방역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분이 많다. ‘착한 임대인’을 지원하듯 그런 분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언급을 했다고 강 대변인은 덧붙였다.
3월 4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총 5328명이다. 이 가운데 대구시 내 누적 확진자는 4006명이며 경북 지역 누적 확진자는 774명이다. 이로써 대구·경북 지역 누적 확진자는 4780명에 이르고 있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를 최대한 투입했지만, 아직도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대구시는 의료봉사에 참여한 의료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더 많은 의료진의 참여를 당부했다. 대구시청 대변인실 홍헌주 주무관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 지역 의료진의 숫자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폭증하고 대구의료원, 계명대 동산병원 등 확진자가 몰려 있는 병원 의료진의 피로도와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아직도 더 많은 의료인이 필요한 만큼 뜻있는 분들의 신청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월 28일 오후 광주 북구 신안동 의사회관에서 광주광역시의사회가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구·경북을 지원하기 위해 의료진을 파견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연합

기업·지자체는 잇따라 성금과 구호물품 지원
봉사 의료진 외에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300억 원을 긴급 지원했고 현대차·LG·SK 등도 각각 50억 원의 성금을 내놓았다. 이 밖에 이랜드(10억 원), 롯데(10억 원), 오비맥주(10억 원), 대성에너지(2억 원), 교촌치킨(2억 원) 등이 동참 중이다. 기업들은 마스크, 손 소독제, 방호복 등 필요한 물품을 기부하고 피해를 본 지역 협력사에 대한 지원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울산시와 강원도, 수원시 등 자치단체는 성금과 마스크 등을 대구시에 전달했고 제주도도 한라봉 800상자(2.4톤)와 삼다수(500㎖) 8만 병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대구 대표 기업인 금복주와 DGB대구은행을 비롯해 장보고식자재마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등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보낸 성금과 방역물품도 속속 들어오고 있다. 배우 이영애·박서준·윤세아 씨, 방송인 장성규 씨 등도 성금을 기탁했다.
SNS에는 ‘#힘내요 DAEGU’ ‘#힘내라 대구·경북’ 등 해시태그를 단 응원 글이 퍼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대구는 위기에 더욱 강해져요. 힘내라 대구야~~!!” “힘내라! 대구, 힘내라! 경북” “힘내세요~! 다 같이 힘내요” 등 응원 글을 올렸다. 대구가 고향인 한 시민은 “어떤 역경도 하나일 때 맞설 힘이 강해지고 이겨낼 수 있다”면서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의료진의 사진을 올렸다. 이 누리꾼은 “현장에서 고생하는 분들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다”며 ‘#힘내라대구경북’ 해시태그를 달았다. 대구시 공식 SNS 계정에도 “#힘내라 대구” “코로나19 떠나라” “직원분들은 식사 잘 드시고 좀 쉬었다가 일하시나요? 대구 시민을 위해 힘내세요” 등의 성원이 잇따랐다.

강민진 기자
<한겨레> 김민제·박수지·강재구 기자
대구/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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