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이겨내고 ‘국민 생선’의 화려한 변신

2020.03.09 최신호 보기

▶국내 황태 생산의 70%를 담당하는 용대리의 황태덕장에 명태가 건조되고 있다. 명태 건조에는 추위와 바람, 눈이 필수적이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북어의 부릅뜬 눈은 무섭다. 북어는 제사상에 오르는 생선이다. 바람과 햇볕에 말라 수분이 사라진 생선이지만, 다른 신선한 생선을 제치고 산 자의 정성을 가득 담은 제사상에 오른다. 북어(北魚)는 말린 명태를 말한다. 북쪽의 찬 바다에서 사는 큰 생선이 명태다. 바다(水)는 오행에서 음(陰)이라, 음기가 가장 강한 생선이 명태다. 무섭게 뜬 눈으로 나쁜 기운을 내모는 생선이기에 제사상에 오른다. 귀신을 부르기도 하고, 내몰기도 하는 굿판에 북어가 오르는 이유다.
명태는 ‘국민 생선’이었다. 지금은 지구온난화와 어린 명태(노가리)를 남획해 수확량이 적어 대부분 러시아에서 수입하지만 한때 한반도 근처에서 가장 많이 잡히던 생선이었다. 가곡 <명태>의 사랑받는 가사를 잠시 음미하자. “에지프트의 왕자처럼 미라가 됐을 때/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용대리에서 삼대째 황태 덕장을 운영하는 일가족. 앞줄 왼쪽부터 김순녀, 이종구, 이건우, 뒤 이상진 씨

천혜의 자연환경 갖춘 용대리
명태의 별명은 서른 가지가 넘는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태’, 얼린 ‘동태’, 말린 ‘북어’, 하얗게 말린 ‘백태’, 딱딱하게 말린 ‘깡태’, 할복하지 않고 통째로 말린 ‘통태’, 반건조 상태로 코를 꿴 ‘코다리’ 등.
뭐니 뭐니 해도 명태의 화려한 변신의 정점은 ‘황태’다. 서민들의 쓴 소주에 호사스러운 안주가 되는 황태의 부들부들한 황금 속살은 바다 생선인 명태가 말라서 연출한 식감이라고 믿기 어렵다. 황태는 자연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잡은 명태의 배를 갈라 내장과 알을 꺼내고, 아무런 첨가물 없이 햇빛에 말리면 탄생한다.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말린다고 황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강한 추위와 바람, 그리고 대지를 뒤덮는 함박눈이 필수적이다. 물론 쨍쨍한 햇빛도 있어야 한다. 그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 바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다.
설악산 백담사 입구인 이곳에서 전국 황태 소비량의 70%를 생산한다. 매년 황태 축제가 열리고, ‘황태마을’로 불린다. 나무로 만든 덕장에는 겨우내 명태가 매달려 젖었다 마르길 반복하며 황태가 된다. 540명 주민이 모여 사는 용대3리에만 모두 22곳의 덕장이 있다. 용대리 황태덕장 총면적은 축구장 24개에 해당하는 17만㎡에 이른다. 해마다 3000만 마리, 2만여 톤의 황태가 만들어져 500억 원의 매출액을 올린다.
“아버지는 1960년대 초반 이곳에 정착해 처음엔 덕장에서 일하다가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덕장을 만드셨어요. 황태를 팔아 4남 2녀를 키우셨지요. 그 덕장을 형님과 제가 이어받았고, 이제는 형님 아들과 제 아들이 덕장 일을 하니 삼대가 용대리 황태를 가업으로 이어갑니다.”

▶아버지에게 덕장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장남 이종남 씨가 명태를 널고 있다.

내설악 겨울바람 맞고 황태로 변신
이종구(58) 씨는 대여섯 살 때 마을 앞 개천에서 동해안에서 잡아 할복해 운반해온 명태를 씻어 덕장으로 나르던 동네 어르신들의 바지런하고도 고단한 일상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황태의 원래 고장은 함경도였다. 6·25전쟁이 끝나고 원산 출신의 실향민이 속초를 중심으로 터전을 마련하고 생활하며 고향에서 먹던 황태를 만들어보았으나 제맛이 안 났다고 한다. 검게 변할 뿐 황금색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해발 800m의 용대리가 남한에서 황태 생산의 적격지임을 알고 1963년 무렵부터 덕장을 만들어 황태를 생산했다.
“황태가 되려면 밤낮 기온차가 커야 하고, 한낮의 온도가 영하 2℃ 이하여야 합니다. 내장을 빼낸 명태를 바람이 세차게 부는 추운 곳에서 서너 달 동안 낮에는 녹이고, 밤엔 꽁꽁 얼리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러면 푸석푸석한 하얀 살의 명태가 속살이 노랗고 솜방망이처럼 연하게 부풀어 고소한 맛이 나는 황태가 됩니다. 내리는 눈은 낮에 지면에서 오르는 복사열을 막아 덕장에 적절한 기온을 유지해줍니다.” 이 씨의 자세한 설명이다.
명태의 배를 갈라 냉동하는 할복장도 미시령과 진부령 넘어 멀지 않은 속초와 고성에 있어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겨울철 황태 건조기간에 최저기온이 영하 18℃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고, 혹한기에는 영하 25℃까지 내려간다. 북서쪽 내설악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용대리 마을 좌우의 매바위와 용바위 협곡을 지나면서 2∼3℃ 기온이 더 떨어진다. 용대리는 사람이 살기엔 척박하지만 명태의 변신엔 최적지였다.

▶덕장에 매달린 명태. 명태는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고소한 황태로 변신한다.

33번 손길 거쳐 식탁에 올라
고향이 홍천인 이 씨의 아버지 고 이수봉 씨는 부인 김순녀(84) 씨와 결혼해 용대리에서 신혼 생활을 하며 황태와 인연을 맺었다. 평생을 황태 덕장에서 보냈다. 명태가 황태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최소한 서른세 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고 한다. 용대리 주민들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덕장을 손질한다. 할복해서 알은 명란젓으로, 내장은 창란젓으로 내준 명태를 12월이 되면 마을 앞 냇물에 깨끗하게 씻은 뒤 덕장으로 옮겨 끈으로 덕장에 건다. 고된 노동의 시작이다.
눈이 오면 눈을 털어줘야 하고, 겨울비가 오면 천막을 쳐서 비에 젖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낮에 촉촉하게 부풀었다 밤공기에 꽁꽁 얼어붙기를 반복하며 황태로 환골탈태한다. 황태로 변신하면 덕장에서 거둬 본격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뼈를 발라내고 살을 두드린다. 용대리 주민들이 대부분 황태를 가공하는 데 참여한다.
덕장에 걸려 있는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이름과 맛이 변하기도 한다. 덕장에서 15일이 지나면 흑태, 30일 지나면 30% 건조된 풍태, 60일 지나면 50% 건조된 설태, 90일 지나면 70% 정도 건조된 맛태, 그리고 120일이 지나야 노란 황태가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덕장 운영은 장남 이종남(67) 씨가 맡고, 셋째 종구 씨는 황태 요리 식당과 황태 가공식품을 파는 매장을 하고 있다. 종남 씨의 아들 상진(39) 씨와 종구 씨의 아들 건우(31) 씨도 대를 이어 황태 만드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덕장에 젊은 피가 수혈된 것이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용대리는 최적의 황태덕장으로 꼽힌다. 푸른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명태가 건조되고 있다.

황태가 우리 몸에 좋은 이유
“황태가 왜 몸에 좋은가요?” 종구 씨는 답한다. “명태가 마르면서 황태가 되면 단백질의 양은 4배로 늘어납니다. 단백질이 전체 성분의 56%를 차지할 만큼 고단백 식품이 되는 거죠. 황태에는 인체 세포를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리신’이라는 필수아미노산과 뇌의 영양소가 되는 ‘트립토판’이 많이 들어 있어요. 눈을 밝게 하는 비타민 A도 풍부해요. 부들부들하게 씹히는 부드러운 맛에다 담백함과 고소함까지 있으니 누구나 좋아합니다.”
술꾼에게 황태해장국은 큰 사랑을 받는다. 과음으로 피로해진 간을 보호하는 ‘메티오닌’ 등 아미노산이 풍부하다고 한다.
용대리에서 황태를 생산하는 41개 업체가 참여한 ‘인제용대 황태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종구 씨는 이미 황태국밥과 황태강정, 황태삼합처럼 황태를 주인공으로 한 요리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황태와 유산균을 결합한 과자를 만들어 6월에 출시하려 한다. 또 황태를 가공한 반려견 사료도 만들고 있다.
“황태와 어울리는 유산균을 발아시켜 배양하는 특허를 취득했어요. 단순히 황태를 포장해 팔거나 요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의학적으로 몸에 유익한 가공식품을 만들어 공급하려고 합니다.”
명태는 살아서는 바닷속을, 죽어서는 바람 속을 헤엄친다고 한다. 덕장에 걸린 채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명태의 피부에 겨울 햇볕이 포근히 스며든다.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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