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지역의 일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 상황에 맞게 일자리를 지원하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이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 중이다. 지자체가 청년들의 취업과 창업을 돕는 것이다. 지금까지 청년들의 대도시 이주로 지역 기업은 구인난을 호소했다. 중앙 부처의 하향식, 일률적 사업으로는 지역별로 차이 나는 고용 여건 대응에 한계가 있어 시작된 사업이다. 지자체가 지역 상황에 맞게 직접 기획하고 중앙정부인 행정안전부가 운영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2021년까지 7만 명 넘는 청년을 도울 예정이다.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으로는 경상북도의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와 광주광역시의 ‘광주청년 일경험드림’ 사업이 있다.
독일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했던 고경남 씨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의 도움을 받아 경북 문경에서 공연기획사를 창업해 도시와 시골의 문화 차이를 해소하고 있다. 광주시가 지원하는 일 경험으로 또 하나의 스펙(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평가지수)을 쌓은 서혜령 씨는 이전보다 자신감 있게 취업을 준비 중이다. 두 청년에게서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의 긍정적인 면을 들어봤다.
▶클래식 한 스푼 고경남 대표 | 고경남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고경남 씨다
경상북도의 지방 소멸 위험은 매우 심각한 단계다.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도민의 19.5%인 52만 9000명에 이르고, 설상가상으로 청년 인구 유출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다. 게다가 2016년부터는 인구 자연 감소가 시작되어 23개 시·군 중 19개 시·군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 경상북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 인구 유출 방지와 도시 청년들의 유입으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를 통해 경북 문경으로 이주해서 ‘클래식 한 스푼’을 창업한 고경남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독일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다 귀국해 서울에 있던 중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를 알게 됐다. 뭐든 풍요로운 대도시보다는 문화적 여건이 부족한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의미가 클 거라 생각했다.
-경북 문경에 정착하기 전 2년간의 한국 생활은 어떠했나?
=독일에서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살았다. 쾰른 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은 후 연주 활동을 하며 영주권자로 살았는데 건강에 이상이 생겨 귀국했다. 고향 구미에서 요양하며 몇 개월 머무르다 서울로 올라가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중 연주차 여러 번 문경을 방문했는데 좋은 느낌을 받았다.
-경상북도 중에서도 문경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조금만 돌아보면 자연과 함께할 수 있어 마음이 탁 트였다. 특히 점촌은 너무 외진 시골 같지 않으면서도 대도시와 접근성이 좋았다.
▶클래식 한 스푼 개관 공연현장
경북경제진흥원 덕에 사업 안정감 찾아
-창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사업단에 문의할 수 있어 좋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행정 업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사고하는 방식이나 업무 수행 능력이 달라 어려운 점이 많다. 클래식 한 스푼을 운영하면서 경북경제진흥원을 통해 ‘모르는 부분은 지금부터 배우면 된다’는 안정감을 찾았다. 자영업자로서는 그런 서류가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사업체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보면 새내기 사업가들이 사업비를 잘 구분해서 계획성 있게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이라고 할까?
-‘클래식 한 스푼’의 의미는 무엇이고, 문경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클래식 한 스푼은 쓴 커피에 달콤한 설탕 한 스푼처럼, 음악으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뜻이다. 문경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고 색다른 기획 공연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또한 바이올린 아카데미를 통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다루며 지친 일상에 신선한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함께 배우고 연주하며 아마추어 단체로 성장하는 단계에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시민이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고 있다. 기획한 소공연들을 통해 문경에서 접할 수 없었던 살롱, 하우스 콘서트도 연다. 이렇게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연주도 하고, 다양한 음악 공연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실제로 도시와 비도시의 예술교육 차이가 얼마큼 심각하며, 문경에서는 이러한 격차 해소가 어느 정도 진행됐다고 보는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문화의 격차가 한 번에 해소되진 않겠지만 희망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예를 들면, 문경에서는 일반인들이 접근조차 힘들었던 바이올린을 이제 클래식 한 스푼에 오면 할 수 있다는 인지도가 생겼다.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에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클래식 한 스푼에서도 클래식 연주나 색다른 기획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인식이 더해진 것 같다. 앞으로 여러 공연 기획을 통해 대도시와 소도시의 문화 차이를 좁혀갈 생각이다.
▶클래식 한 스푼이 기획한 공연에서 춤과 음악, 스크린 영상이 어우러진 모습 | 고경남
공연 기획으로 대·소도시 문화 차이 좁힐 생각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고, 독일에서는 클래식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예술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지식과 정보 과잉 사회에서 정서적인 부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예술교육은 개인의 생각 자체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세상에 유익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창조하도록 이끄는 것이 예술이다. 그래서 독일이나 선진국에서는 영재를 발굴할 때 악기를 한 가지 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경우를 예로 많이 들고 있다. 천재성이 있으며 예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은 개인의 이득보다 사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능력을 사용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영유아의 경우 미디어를 통한 동요 익히기보다 엄마와 함께 음악학교(무지크슐레, Musikschule)에 가서 선생님이 노래를 가르쳐주고 같이 따라 부르며 율동하는 동요 배우기를 한다. 그런 다음 어떤 악기를 배우고 싶은지 알기 위해 다양한 악기들을 접해보는 수업을 한다. 초등학교(그룬트슐레, Grundschule)에 가면 악기를 하나씩은 다룰 줄 안다고 친구들끼리 이야기한다. 그런 아이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아비투어, Abitur)이 있다고 음악 배우기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평생을 동반 악기와 함께한다. 이렇게 예술의 생명력은 길며, 이러한 교육이 넓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내 자식이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해 전공은 어려우니 그만두게 한다거나 영어·수학 과외에 밀려서, 또는 사교육비가 없어 음악을 못 배우는 차원이 아닌 것이다.
-문경에서 생활하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문경읍 갈평리 용흥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로 가는 길이 문경 생활에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이 해맑게 뛰놀고 도자기라는 예술과 근접해 있으며 바이올린 수업에도 열정을 가지고 있어 내가 가면 늘 반겨주는 게 정말 행복하다. 혹시라도 수업에 늦는 날,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쉬운 것 없는 도시 아이들보다 순수하고 예쁘다.
-앞으로 계획은?
=꾸준히 공연예술 기획을 하며, 바이올린 아카데미도 성장시켜 아마추어 앙상블 단체로 활동하면서 지역문화에 또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배출된 여러 예술인, 문경으로 오고 싶은 예술인들과 화합해 예술문화 도시 문경을 만드는 것이다. 나도 행복하게 살고.
박유리 기자
창업공간 입주 기회 제공 등 1인당 연간 3000만 원 지원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란?
창업투자생태계조성형은 청년들에게 지역에 머무르며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원 유형이 다른데, 창업 희망 청년은 공동 창업공간 입주 기회를 얻거나 임대료 등 창업 비용을 지원받는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사업은 경상북도의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는 일회성 사업이 아니다. 2017년에 실시된 ‘유턴 일자리 지원 사업’을 통해 체계적인 사업관리와 예산 집행을 위한 고민의 산실이다. 경상북도는 사업 시행 전에 청년 10명을 시범적으로 선발해 도시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문경에서 충분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 중인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는 역량 있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도시 지역 청년들을 경북 시골 마을로 유입, 지역 자원을 활용해 창업과 창직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전국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높은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에는 100명 모집에 625명이 지원했고, 2019년엔 759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이 7대 1 정도다. 경상북도가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를 통해 지방 소멸의 위기와 시골 마을 공동체 부활의 중요성을 크게 홍보해 청년들 사이에서 시골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관심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은 매우 유의미한 정책 효과다.
경상북도는 사업 추진 상황을 점검(모니터링)하면서 1인당 연간 총 3000만 원을 지원하며 사업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의 예산 사용 편의와 사업 추진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산 지출 대행 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 창업 초기 교육 수요자의 요구 분석을 기반으로 한 상시 교육 프로그램(집합 교육)을 연 16회 이상 제공한다. 찾아가는 현장 교육을 수시로 시행하고, 사업 참여자 간 네트워킹으로 지역사회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