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한달
정부가 2019년 12월 16일 강력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12·16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정부 대책에 서울 및 수도권 주택시장은 일단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서울 일부 지역 아파트의 경우 매수세가 뚝 끊기고 매매가격의 상승 폭도 하향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언제든 집값 불안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는 거시경제적 변수가 여전히 많다. 그간 집값 상승기 때 잠잠했던 지역으로 투기 수요가 이동하는 이른바 ‘풍선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5억 원 이상 고가 아파트 거래 위축 ‘뚜렷’
12·16 대책 발표 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고가 아파트의 거래 위축이다. 시가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 강력한 대출 규제가 곧바로 수요 급감을 불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신고시스템의 등록 자료를 보면, 2019년 12월 17일부터 2020년 1월 1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서울지역에서 계약이 이뤄진 아파트 거래는 모두 1315건이다. 이는 12·16 대책 발표 전 한 달여 동안(2019년 11월 20일~12월 16일) 계약 건수(6982건)에 견줘 무려 81%나 줄어든 규모이다. 특히 대출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15억 원 초과 아파트의 거래 감소율이 92%로, 9억 원 이하 아파트(77% 감소)보다 훨씬 높았다.
아파트 매매가격은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전체에서 정부 대책이 나온 뒤 3주 연속 상승률이 둔화하는 추세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의 주간 상승률은 대책이 발표된 2019년 12월 셋째 주 0.2%를 기록했다가 넷째 주에 0.1%로 꺾인 뒤 다섯째 주 0.08%에 이어 2020년 1월 첫째 주 0.07%까지 내려갔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3주 연속 하강 곡선을 이어가는 것은 2019년 6월 초중반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상승률 낙폭(12월 셋째 주 0.33%→1월 첫째 주0.07%)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더 컸다.
반면에 서울의 종로·성북·도봉구, 경기도의 구리·용인·화성시, 인천의 부평구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정부 대책 발표 뒤 오히려 상승해 대조를 보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일부 지역의 집값 상승을 정부의 강력한 수요 억제 대책에 따른 ‘풍선 효과’의 조짐으로 보기도 한다. 규제 대상이 아닌 9억 원 이하 주택 매물이 비교적 많고, 교통망 확충 같은 개발 호재가 등장하는 곳으로 청약 열기나 투자 수요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가 확고하고 돈줄을 조이는 대책들을 한꺼번에 쏟아내 부동산 시장이 조정 국면을 유지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역대 최저 수준의 금리를 바탕으로 한 유동성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않으면 가격 상승 압력을 받는 곳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가격 안정 위해 강력 대책 끝없이 내놓을 것”
12·16 대책 이후 시장 상황에 대한 정부의 판단은 조심스럽다. 국토부는 1월 14일 발표한 ‘12·16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한달, 주택시장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자료에서 “현시점에서는 집값 상승 폭이 완화되었을 뿐 아직 안정세가 확고하다고 판단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2018년 9월 13일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 방안에서도 가격 하락을 통한 안정 효과는 대책 발표 9주 차부터 시작됐다”라며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과열 양상이 재연된다면 즉각적으로 추가 대책을 마련해 전격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12·16 대책 이후 서울 일부 지역에서 전셋값이 꿈틀거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진단을 내놓았다. “최근 전셋값 상승 현상은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신학기를 대비한 학군 수요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2020년 상반기 서울 내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이 2만 2000호 수준으로 충분해 전셋값 급등 가능성은 낮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또 “서울 지역에는 임대료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30만 4000호와 등록임대주택 48만 6000호를 확보해두고 있어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분양가 상한제의 확대 시행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에 대한 국토부 응답은 이렇다. “과거에도 분양가 상한제로 공급 위축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18년 4만 4000호에 이어 2019년과 2020년에도 연간 4만호 이상으로 2008년 이후 역대 최대 물량이 차질없이 공급되고 있다. 사업이 본격화된 재건축·재개발사업 단지도 13만 1000호로 풍부하다.” 국토부는 “시장 불안을 유발하는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도심 내 주택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과도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지게 되면 집값도 점차 안정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일부 지역에서 단기간에 과도하게 상승한 집값은 실수요자의 부담이 되므로 상당 수준 하락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시장 상황을 엄중히 모니터링 하고 있으며, 특히 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세제, 대출 규제, 주택 거래와 공급 전반에 걸친 강력한 대책을 주저 없이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부 의지와 방침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부동산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7일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서민들이 위화감을 느낄 만큼 급격한 일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원상 복귀시키도록 노력하겠다"며 “부동산 투기를 잡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더욱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