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남녀

2020.01.20 최신호 보기



인생의 맛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맛일까.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늦은 저녁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한 입 먹어봐.”
커다란 창에 달빛이 낮게 머무는 그곳은 번잡한 도시의 한가운데라고 믿기 힘들 만큼 조용했다. 사람 대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커피 향이 공간에 가득 퍼져 촘촘한 하루를 이완했다. 그녀가 검은 손길을 내밀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녀가 내게 떠먹여주듯 내민 포크에는, 초콜릿케이크에 녹인 초콜릿을 얹어 초콜릿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초콜릿케이크가 있었다.
차마 그 손을 난처하게 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으로 케이크를 받았다.
“잘 먹네? 맛있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네.” 내가 엉겨 붙은 입으로 말했다.
내가 단맛을 즐긴 건, 초등학교 시절 탕약을 마신 뒤 털어 넣던 자두 맛 사탕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내 사전에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롤리팝, 도넛, 시럽, 휘핑크림 따위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삶이 그다지 달콤하지도 않았지만, 달콤한 것이 삶을 단맛으로 채워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가 직접 만들어서 건넨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은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에 그대로 있었다. 그 냉동실 문이 그녀에 의해 열리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 손에는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들려 있었다. 한두 번 홀짝이면 사라지고 마는 작은 잔이었지만, 이 카페에서 제공하는 가장 쓴 커피였다. 나는 쓴맛이 좋았다. 쓰면 쓸수록 좋은 그 맛에 경도됐다. 쓴맛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그 맛을 즐겼다. 동물들이 독으로 인식해서 본능적으로 뱉어내는 쓰디쓴 것들이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순간 씀바귀를 생으로 먹고, 고삼차를 들이켜도 미동도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 모금 마셔볼래?”
내가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담긴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친 퇴근길에 맛보는 진한 초콜릿케이크 하나로 세상 행복해 보였던 그녀는, 단것을 너무 많이 먹어 입이 쓴 사람처럼 잔을 받았다.
“잘 마시네? 괜찮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별로 안 쓴데?” 눈은 웃지만, 입은 울고 있는 그녀가 말했다.
그녀와 내가 보유하고 있는 미각은 극과 극이었다. 그녀는 쓴맛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만으로 입 안이 씁쓸해지는 음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아이디는 ‘달콤초코’였다. 단맛이 인생의 궁극이라 믿고 있었다. 단것을 먹으면 천국이 열린다고 말했다. 누구나 저렴한 입장료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천국. 그녀에게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롤리팝, 도넛, 시럽, 휘핑크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내게서 씀바귀를 뺏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쓴맛과 단맛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맛에 대한 우리의 지향은 정반대였다. 같은 음식점에서 늘 다른 음식을 먹었다. 치킨집에서 나는 프라이드, 그녀는 양념이었고, 냉면집에서도 그녀는 비빔냉면, 나는 물냉면이었다. 분식집에서도 나는 김밥, 그녀는 순대였고, 모처럼 탕수육으로 합의를 본 중국집에서조차 그녀는 ‘부먹’, 나는 ‘찍먹’이었다. 그녀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카페에서 나와 그녀와 걸었다. 그리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봤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어떻게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오늘 저녁 다시 출근해도 좋은 사람처럼 환해진 얼굴로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 해?”
“아니,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 그 맛.”
“어?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 가지 맛으로는 알 수 없는 인생의 맛. 우리는 서로가 가지지 못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그 맛을 다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한 입, 한 모금일지라도 각자의 취향을 공유하고, 또 존중했다. 맛이란 어쩌면 순간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인생의 조각을 함께 맛보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인생의 맛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맛일까.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그녀가 포장해온 초콜릿 칩 쿠키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한 입 먹어봐.”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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