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해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동해안으로 겨울 여행을 떠났다. 다섯째 회갑 기념으로 6남매가 30여 년 만에 함께 설악산을 찾았다. 동지 지나 소한을 앞두고 있어 가장 추운 때였지만 철부지 개나리가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6남매를 환영하는 듯해서 기뻤으나 겨울답지 않게 푸근하니 경자년 농사가 걱정되기도 했다.
1만 1000원 케이블카 요금의 가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 설악산 권금성에 가려고 케이블카를 탔다. 왕복 요금은 1만 1000원. 비쌌다. 그래도 일흔 살 넘은 누님들 무릎을 생각해 참았다. 케이블카를 내려 고래바위가 있는 봉화대에 오른 순간, 비싸다는 생각은 거세게 몰아치는 높새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눈앞에 펼쳐진 만물상과 장군바위를 비롯해 멀리 공룡능선·나한봉·마등령·저항령·울산바위까지, 멋진 풍광에 눈과 귀가 활짝 열렸다.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1만 1000원에 비경을 볼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걸어서 땀 뻘뻘 흘리며 가파른 바윗길을 1시간 30분 넘게 올라야 다다를 수 있는 ‘고생길’을 케이블카로 5분 만에 도착해 감상할 수 있는 가치는 충분히 있다. 30년 전 휠체어 탄 어머니, 만삭인 아내와 함께 권금성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케이블카 덕분이었다. 굳이 올라가야 하느냐며 손사래 치던 고희의 누님들도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고 밝게 웃었다.
‘금징어’ 대신 착한 가격의 대구탕
권금성의 경치를 구경한 뒤 저녁 먹으러 대포항에 갔다. 오랜만에 속초에 왔으니 회에 소주 한잔 곁들이는 호사를 누리려 했다. 가는 길 내내 통통하게 살 오른 오징어회를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오징어회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오징어가 아니라 ‘금징어’로 가격이 올라 사먹기가 부담스러웠다. 지구온난화와 북한 및 중국 어선이 동해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해 어획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2019년 10월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은 전년보다 84%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동해안 오징어 어업인 등에게 긴급경영안정자금 112억 원을 지원할 정도였다.
꿈이 깨져 실망하고 있으니 주인이 대구탕을 권한다. 오징어 잡으러 바다에 나간 어부들이 오징어 대신 대구를 많이 잡아 값이 ‘착해졌다’고 했다. 10월 중 대구 어획량은 1679톤으로 전년보다 83%나 늘었다. 생대구 위탁판매가도 10kg 한 상자에 2만 4500원으로 전년보다 30% 떨어졌다(보령수협 기준). 어쩔 수 없이 싱싱한 모둠회를 먹은 뒤 생대구탕으로 금징어의 아쉬움을 달랬다.
수요·공급에 결정되는 물건의 가격
권금성 케이블카 요금과 대포항 금징어는 물건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수요란 사람들이 어떤 상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으려 하는 욕구를 가리킨다.
사람들이 원하는 강도가 높을수록, 즉 수요가 많을수록 값은 오른다. 같은 32평 아파트라 해도 수요가 많은 강남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싼 것에서 알 수 있다. 2019년 가을장마와 태풍 등으로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 배춧값이 급등해서 ‘금추’가 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진다.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하기 때문에 물건이 지닌 가치(적정 가치)와 괴리된다. (적정)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 즉 노동력(임금)과 생산수단(자본과 토지 비용)으로 결정된다. 대부분은 가격이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나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 사치품은 다르다. 이런 상품들은 생산비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 형성된다. 해외 명품 같은 과시 상품은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 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려는 ‘사재기 심리’가 생겨, 강남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요는 많고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경우가 있다. 강남과 재개발·재건축 등 특정 지역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거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무겁게 물리는 것이다. 이럴 경우, 겉으로 보이는 가격은 정부가 정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실제 가격은 그것보다 훨씬 높게 형성될 수 있다. 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은밀하게 거래되는 것을 암시장(Black Market)이라고 한다.
암시장의 예는 암표다. 요즘은 상영관이 많아 거의 없어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극장가에 암표가 성행했다. 영화표를 먼저 사재기했다가 정가보다 비싸게 판다. 법적으로는 금지된 행위지만 비싼 값에라도 영화를 보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암표 시장이 형성된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입장권이나 방탄소년단(BTS) 공연 티켓 등에서도 암표가 발생할 소지는 있다.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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