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다는 높고 몇 척의 배가 집을 향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심난한 날씨처럼 웅숭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고 요새는 통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자지 않았다. 그러다 아침이 오면 정신을 잃듯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에 어땠는지 혹은 어디서부터 기억하지 못하는지를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잘 떠오르지 않아도 그렇게 한다.
얼마 전에 죽은 아기 고양이의 몸을 쓰다듬은 내 손바닥의 감촉도 자주 생각한다. 그 아이는 제 어미의 꼬리를 잡고 놀다, 마른 젖을 빨다 어미가 사료를 먹으면 조그만 얼굴을 들이밀고 함께 먹다가 어미의 몸에 몸을 맞대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 깨어나면 다시 어미의 꼬리를 잡으며 몸을 이리저리 뒤치고 놀았다.
아기 고양이가 죽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꽤 담담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남편은 내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려 할 때 놀라지 말라고 늘 운을 뗀다. 그건 자신이 지금 놀라 있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 그러면 나는 덜컥 겁이 나지만 그러지 말고 그냥 말해, 한다. 그럴 때는 조금 화가 나는 것 같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데. 잔뜩 속이 상해서 생각한다.
줄기가 죽었어. 어디서? 저 앞의 길에서.
줄기는 아기 고양이의 이름이다. 나는 남편을 따라 줄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면서 내가 돌보는 고양이가 죽은 것은 처음이구나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아기 고양이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도 같다. 그 순간 내가 그토록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1년 전 남편과 함께 시작한 서점 마당에 터를 잡은 고양이들을 괴롭히는 이웃이 있어 경찰을 불렀던 일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서점에 출근해 있으면 자주 죽은 줄기 생각이 난다. 제 어미는 알까. 나는 물어볼 수도 알려줄 수도 없다. 그저 혼자 있는 어미 고양이를 보기만 한다. 남편은 새끼를 잃은 어미 고양이에게 더 열심히 간식을 챙기고 밥을 주고 물을 갈아준다. 서점에 낯선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다시 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멍하니 앉아서 마당에 아기 고양이가 있었지 하고 생각한다. 우리 말고는 그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몇 걸음 다가가서 ‘기온아!’ 하고 이름을 불러본다. 기온이는 죽은 줄기의 어미다. 나는 기온이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양이를 묻고 돌아온 남편이 줄기가 생전에 어미 꼬리를 잡고 놀던 영상을 보여주는 바람에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너무 예쁜 아인데. 금방 죽은 고양이의 몸을 만지고 돌아왔는데. 화면 속에서 줄기가 너무 개구지게 살아 있어서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런 건 다 한낱 감정일 뿐이고. 이 땅에 오직 사람만이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사람 말고도 많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잔인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속절없이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동물을 애도하는 법을 모른다. 애도는 표현하는 것일까 아닐까. 그저 품고 있는 것으로 될까. 그건 너무 옛날의 방식일까. 모르긴 해도 내가 사는 세상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게 싫기도 하고 멋대로 생각하라지 하는 심중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떤 때는 표현하고도 싶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에 나도 많이 슬퍼한다고 알려주고 싶지만 입을 다물게 된다.
나는 슬픔에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쪽이다. 누구나 슬퍼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슬픔은 슬퍼할 자격을 동반한다. 기쁨도 어느 정도는 슬픔과 같다.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안다.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덜 천박해지는 방법일 것이다.
유진목_ 시인.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낸 이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등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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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