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정말 눈에 보이지 않을까?

2020.01.13 최신호 보기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한글을 보면 그 창제 원리가 기하학적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세종은 형태에 상당히 높은 안목을 가진 디자이너라고 할 만하다.

세종의 며느리 선정은 매우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첫 번째 세자빈으로 간택된 휘빈 김씨는 가문을 보고 선택했는데, 세자(문종)가 그를 좋아하지 않아 결국 퇴출됐기 때문이다. 가문은 좋은데 얼굴이 못 생겨서 세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라 판단한 듯하다.
새로운 며느리 간택을 위해 세종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세자빈 후보들을 모두 한 방에 모으고 그 중에서 뽑으라는 것이다.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이조판서 허조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렇게 뽑으면 오로지 외모로만 판단하게 되고 덕성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세종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람을 잠깐 보고 어찌 덕을 알 수 있으리오. 이미 덕으로 뽑을 수 없다면 용모로 뽑지 않을 수 없다.”(박영규 <조선의 왕실과 외척>)

▶애플 아이맥.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은 단지 겉모습이 아니라 영혼이라고 말했다.

세종은 외모가 내면보다 우선하다고 봤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이 대목을 보면, 세종은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설립자이자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안상수는 세종은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의 한글을 보면 세종이 형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종은 외모가 내면보다 우선한다고 본 것일까? 조선시대에는, 특히 왕실에서 세자빈을 간택할 때는 무엇보다 덕성을 중요시하지 않았던가? 그런 전통적 세계관은 현대까지 이어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1등은 진(眞)이고, 2등은 선(善), 3등에 가서야 미(美)를 겨우 껴준다. 실제로는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한데, 굳이 이렇게 아름다움의 가치를 뒤로 미루는 것은 조선시대 전통이 여전히 현대에도 관통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런 가치관으로 볼 때 세종의 간택 조건은 대단히 파격적이다. 그는 진정 외모와 아름다움이 최고라고 여겼을까?

이것은 디자인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디자인이란 대체로 겉모습을 꾸미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면 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내연 기관과 각종 장치들은 공학자들이 만든다. 같은 기능과 성능의 차를 어떤 형태로 할지는 대개 디자이너가 결정한다.
물론 디자인에 따라 공학적인 설계가 바뀌기도 하며, 형태는 기능에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어떤 대상을 내용과 형식으로 따로 분리하는 인식체계에 잘 적응돼 있어서 겉은 그럴 듯한데 알맹이가 없다는 식의 판단을 좋아한다.  이런 인식에 따라 마치 얼굴은 잘생겼는데 성질이 포악하다든지, 디자인은 멋진데 성능은 떨어진다든지 하는 비평을 쉽게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디자인은 일종의 꾸미기 기술, 속임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번드르르한 외모에 속지 말라는 경고와 비슷하다. 이런 가치관은 서양에도 있어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보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불세출의 배우 마릴린 먼로가 가장 좋아한 문장이라고 한다.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면, 이 차가 얼마나 과시적인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가치관을 경멸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세기말의 유미주의자인 오스카 와일드다. 그의 대표작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헨리 워튼 경이라는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건 천박한 사람들뿐일세. 세계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있어.” 
이 말은 겉모습이,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진짜 의미와 의도는 숨어 있다는 뜻일 게다.
그럼 그런 의미와 의도는 시각적인 형태를 띠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기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사람들의 의사소통은 대체로 그런 법이다.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속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겉모습으로 뻔하게 노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뜻을 아예 감추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어떠한 시각적 단서를 남긴다. 그것은 암시일 수도 있고 상징일 수도 있다.

▶세기말의 유미주의자인 오스카 와일드는 겉모습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정확히 통찰한 작가였다.

암시와 상징을 통해 본질을 드러내야
겉모습 또는 디자인이란 바로 암시와 상징적인 방법으로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다. 암시와 상징을 통해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수준 높은 디자인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겉모습’을 뜻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건 디자인의 의미와 정반대입니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의 근간을 이루는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결국 여러 겹의 표면들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겁니다.”
이 말은 겉모습과 형식은 알맹이와 내용과 완전히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롤스 로이스 팬텀이나 에쿠스 같은 차의 외관을 보면 우리는 그것이 과시적인 형태라는 것을 느낀다. ‘아 뭔가 권력이나 부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구나’ 이렇게 말이다. 결국 그런 과시적인 형태가 그 차의 본질인 것이다. 시장에서 팔리는 투박하고 평범하게 생긴 소쿠리는 그 내용 또한 그런 외관과 일치하는 것이다.
처음 논의로 돌아가 세종이 정말로 판단하려고 했던 것은 세자빈 후보의 미모만이었을까? 그 겉모습을 통해 내면을 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말로도 ‘덕성’이라는 내면은 꾸밀 수 있다. 하지만 말을 면밀하게 들어보면 그것이 진실한 것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외모로도 그 진실과 거짓을 가늠할 수 있다. 허세와 속임수조차도 보지 않고, 또는 듣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덕성, 그리고 마음이 고은 것도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겉으로 드러난 표현과 형식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내용과 일치할 때 성취된다.
하지만 여전히 겉모습으로 그것을 판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겉모습이란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겉모습, 즉 디자인은 내용과 별개가 아니면서도 동시에 수수께끼인 것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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