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 압해도 바닷가에서 재래식 방법인 지주식으로 김을 생산하는 배창남 씨와 아들 배수철 씨가 김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덕스럽다. 종잡을 수 없다. 해가 비쳤다가 흐렸다가, 비바람이 불다가 어느새 갠다. 남해안 바닷가 날씨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바다는 모든 것을 품는다. 모든 것을 받아준다고 해서 바다라고 했던가.
전남 신안의 바다는 갯벌이 명품이다. 광활한 갯벌은 찰흙처럼 고운 펄로 이뤄져서 어른 허벅지까지 푹푹 빠진다. 과거에 갯벌은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 간척과 매립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오염된 수질을 정화하고, 홍수를 조절하고, 철새의 서식지가 됐다. 갯벌에 사는 여러 동식물의 생태적 가치가 밝혀지며 이제는 보존의 대상이 됐다.
▶지주식 김 양식장 모습
아흔아홉 번 손길 거쳐 밥상으로
펄이 머금고 있는 수많은 해산물 가운데 값비싼 낙지 못지않게 어민의 사랑을 받는 것이 김이다. 신안 김은 완도 김과 함께 남해안의 대표적인 김으로 꼽힌다. 물이 빠진 신안의 갯벌에는 김 양식을 위해 세워놓은 나무 기둥(지주)이 사열받는 병사들처럼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다. 재래식 김 양식 방법이다.
지주식 김은 하루 두 차례 바닷물 밖으로 노출돼 광합성을 하기때문에 광택이 나고 맛이 좋다. 소나무로 만든 기둥에 매달아놓은 그물에 자리 잡은 김 포자가 싹을 틔워 자라기 시작한다. 갯벌에 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바닷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 남해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왕성한 광합성 작용을 하며 몸집을 키운다. 부드러운 해풍도 김 맛을 높인다.
해와 달을 보며 자란 물김을 걷어 올려 말려서 밥상에 올리기까지 모두 아흔아홉 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조상들은 정월 보름에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김의 영양분 가운데 눈에 좋은 비타민A가 많다는 것을 알았을까?
▶지주식 김 양식을 하면 김 포자가 바닷물과 해풍, 햇빛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 색깔이 짙고 맛이 좋다.│배창남
2019년 6716억 원 수출… 김 최대 강국
갓 지은 밥에 빛깔 좋은 김과 간장 한 종지만 있어도 훌륭한 밥상이 될 만큼 김은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식품이다. 김은 세계적으로 80여 종이 있고 한국에는 방사무늬김, 둥근돌김, 긴잎돌김, 잇바디돌김 등 10여 종이 자란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김 생산국이다. 최고의 김 소비국으로 손꼽히는 일본은 한 해 7000만~8000만 속(한 속(톳)은 100장)을 생산하고, 중국은 7000만 속 정도 생산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1억 8000여만 속이니 일본이나 중국보다 두 배 이상 김을 생산하는 김 최대 강국이다.
김은 ‘바다의 반도체’라 불린다. 수출의 선봉에 서 있다는 뜻이다. 별명에 걸맞게 수출로 참치보다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다. 2019년 김 수출액은 5억 8000만 달러(6716억여 원)였다.
김은 지금이 제철이다. 가을에 채묘(종자 붙이기)를 한 김은 매서운 찬 바람이 부는 요즘이 한창 수확의 계절이다.
22세에 시작해 IMF도 버텨낸 아버지
배창남(58) 씨는 신안군 압해도가 고향이다. 남한에 있는 3300여 개 섬 가운데 전남 신안군에 3분의 1에 가까운 1004개의 섬이 있다. 그래서 신안의 섬들을 통칭해 ‘천사섬’으로 부른다. 그는 압해도에 있는 100여 개의 김 생산업체 가운데 한 곳을 책임지고 있다. 한 해 60억~7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는 어릴 때 압해도 바다에서 헤엄치며 물고기를 잡으며 자랐다. 농사를 지었지만 소유한 농토가 없어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섬 안에 있는 중학교를 10km씩 걸어서 통학하다 고등학교 때는 목포로 나갔다.
목포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22세에 김 양식을 시작했다. 24세이던 1986년 김 가공 공장을 세웠다. 10년 만인 1997년에 김 공장 한 동을 더 지었다. 잘됐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닥치며 휘청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버텼다.
▶바다에서 채취한 물김은 현대식 공정을 거쳐 김으로 태어난다.
기후 탓에 갈수록 어려워지는 김 양식
그가 모는 모터보트를 타고 해안가에서 멀리 보이는 그의 김 양식장에 접근했다. 마침 밀물 때라 기둥만 줄줄이 보인다. 가까이 배를 대고 김이 자라는 그물을 끌어올렸다. 검붉은 빛깔의 물김이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김 양식장에는 모두 600책의 김 양식 그물이 설치돼 있다. 한 책은 가로 2m, 세로 40m의 크기. 작지 않은 규모다. 압해도 전체에는 모두 3000여 개의 책이 설치됐다고 한다. 그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김 수확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후가 바뀌었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9월에는 태풍이 안 왔어요. 이제는 10월에도 남해안에 태풍이 와요.”
“태풍이 김 양식에 큰 피해를 주나요?”
“김 포자를 9월 중순에 심어요. 보름 정도 지나면 포자가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자라죠. 그때 태풍이 오면 순간적으로 수온이 1~2℃ 올라가요. 그럼 육지의 채소가 우박이나 서리를 맞으면 시들듯 김도 시들어가요.”
올해 김 수확도 예년보다 한 달 반 정도 늦어지고 수확량도 줄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탓인지 남해안 어종도 많이 바뀌었다. “10년 전에는 남해안 인근에서 삼치를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쉽게 봐요. 그때 아주 흔한 생선이던 부세조기는 지금 희귀종이 됐고요.”
▶신안 압해도 바닷가의 지주식 김 양식장. 밀물 때라 나무 기둥만 보인다.
맛이 좋기에 힘들어도 재래식 재배 고집
그래서 요즘은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에서 채묘를 하고, 계속 바닷물 속에서 김을 키우는 부유식 재배가 재래식 재배보다 널리 퍼졌다. 조수간만의 차가 작고 수심이 깊은 부산 등에서는 100% 부유식 재배를 한다. 스티로폼 등을 이용해 김 포자가 붙은 그물을 바다에 띄워놓은 것이다.
재래식 재배를 하면 채묘 후 첫 번째 수확까지 45일이 걸리고, 6~7회 수확할 수 있다. 부유식 재배를 하면 첫 수확도 빠르고 9~10회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재래식 김 양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김 맛이 좋기 때문이죠.”
뱃머리를 돌려 육지로 돌아와 바닷가 근처에 있는 그의 김 공장을 방문했다. 바다에서 건진 물김을 깨끗이 씻고 불순물을 거르는 작업을 첨단 자동화 기계가 한다. 자동화 기계는 물김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말려서, 한 속씩 묶어 인간의 손을 거쳐 내보낸다.
“지금은 90% 직접 매장에 납품합니다. 해산물 전통시장이나 홈플러스, 이마트 같은 대형 마트에 중간상인 거치지 않고 납품해야 그나마 이윤을 남길 수 있어요.”
이전에는 생산된 김의 100%를 목포의 재래시장에 팔았다고 한다.
▶그물에 자리 잡은 김 포자가 싹을 틔워 자라고 있다.
대학 졸업 뒤 김에 푹 빠져 가업 잇는 아들
유통 과정의 변화에는 그의 아들이 큰 역할을 했다. 아들 배수철(31) 씨는 목포에 있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나,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 주로 김 가공 공장을 담당한다. 며느리(이현준)도 아이를 키우며 틈틈이 시아버지를 돕는다.
“지난달에는 곱창김 주문이 전국에서 몰렸어요.” 아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곱창김 이야기를 한다. 처음 따는 김은 생김새가 길고 구불구불해서 곱창김이라 부른다. 부드럽고 입 안에 퍼지는 풍미가 뛰어나 김 중의 김으로 꼽힌다.
“곱창김은 1년에 20여 일밖에 나오지 않고, 생산량도 적어 미식가들은 1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한 속에 2만 원을 웃돌아도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어요.”
아들의 표정이 밝다. “앞으로 김 양식에 삶을 몰두할 것인가요?”
“그럼요. 김에는 미래가 있어요. 각종 영양분이 풍부해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특히 김 한 장에 들어 있는 비타민 A는 달걀 두 개분과 같아요.”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