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막혀 좌절하는 혁신기업 없도록

2020.02.10 최신호 보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가전전시회(CES)는 미래 핵심기술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장으로 평가받는다. 2020년은 단연 인공지능(AI)과 모빌리티(이동성)가 최고의 화두였다. 새로운 산업의 급격한 성장은 디지털 기술의 융복합 확산과 업종 파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변화에 맞춰 세계 각국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책은 단연 규제혁파다. 문재인정부는 출범과 함께 이런 시대적 흐름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규제혁신 패러다임을 크게 전환하고 규제혁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산업·일자리·민생불편 해소와 관련해 3700여 건의 규제를 개선했다. 특히 ‘선(先)허용-후(後)규제’ 원칙 아래 2019년 1월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는 다른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신제품과 새로운 서비스까지 일정 조건 아래 시장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제도다.
예를 들면 현행 법령상 국회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수 없다. 입지를 제한하는 국토계획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서울시 조례와 국유지 임대를 제한하는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법 등에 따라 금지되는 것이다. 이런 덩어리 규제를 일거에 완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 해도 이 모든 법령을 개정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국회 수소충전소는 2019년 2월 11일 특례를 받아, 9월 10일 정식 운영을 시작했다. 단 7개월 만에 설치가 완료된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이렇게 시장에 우선 진출을 허용하는 한편, 막연한 추측보다는 객관적인 실증 결과를 토대로 신기술 도입에 필요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시행 첫해 안정적 정착과 질적·양적 성과도
규제 샌드박스는 2016년 영국에서 금융 분야에 처음 시작됐다. 아이들이 모래 놀이터(Sandbox)에서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것처럼 혁신의 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부는 영국 모델을 발전시켜 금융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융합 분야 등 실물경제를 포함했고 지역 단위에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하는 규제자유특구를 도입하는 등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었다. 전례 없는 혁신적 제도인데도 시행 첫해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은 물론 질적, 양적 성과도 거뒀다.
2019년 당초 목표인 100건 대비 2배에 가까운 195건의 사업 특례를 승인하면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의 시장 진출을 견인하고 있다. 제도를 먼저 시행한 영국 등에 비해 3배나 빠른 승인 속도다. 주목할 점은 중소·신생기업(스타트업)이 전체 승인기업의 7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중심에서 탈피한 혁신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또 시행 초기인데도 14개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58개 기업이 특구로 이전하는 등 지역혁신과 국가균형발전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19년 승인된 195건 중 도심형 수소충전소, 모바일 전자고지, 택시 동승 서비스, 공유주방, 온·오프 해외여행자 보험, 대출비교 플랫폼 등 58개 사업이 이미 시장에 출시되어 매출이 늘고 있고 21개 기업은 25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경북 차세대 배터리 규제자유특구에는 단일 사업 최대 금액인 1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세종시 자율주행 특구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자율차 전문기업인 팬텀AI 한국법인이 설립된다. 20여 개 기업의 해외 진출도 성공했다. 승인기업의 90.2%가 제도에 만족하며 시장 출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장기 교착상태에 있던 공유경제 등 이해 갈등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됐다.

민관협력 강화하고 승인기업 시장 진출 지원 보강
그동안 제도 시행 초기임에도 제도 운영과 관련 기업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시행 100일(2019년 4월), 6개월(2019년 7월) 계기 때마다 보완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감한 혁신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시행 1년을 맞아 세 가지 전략을 골자로 하는 전방위적 개선 방안을 1월 23일 발표했다.
첫째, 민관협력을 강화하고 편의성 증진 등 실행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우선 정부 주도의 기존 4대 전담 접수기관 외에 대한상공회의소에 별도의 민간 접수기구를 신설한다. 그리고 기존 승인 사례와 동일 과제는 심의기간을 1개월 이내로 크게 줄인다. 특히 특례 중단에 대한 기업 불안 해소를 위해 불가피한 사유로 법령 정비가 지연되면 법령이 개정 될 때까지 특례기간 연장도 추진한다.
둘째, 승인기업의 시장 진출 지원을 보강한다. 초기 자본과 사업 여력이 부족한 중소·신생기업을 위해 기존 예산·세제·특허 지원뿐 아니라 공공조달 때에도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혁신성 심사를 면제하는 등 승인 제품의 초기 시장수요를 창출한다. 사업자금 확보를 위해 전용 펀드·우대 보증을 확대하고 특례 제품과 관련된 사업으로 재편할 경우 기업활력법의 지원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실효성 제고를 위한 추가 조치도 추진된다. 먼저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은 갈등조정위원회, 4차산업혁명위원회 해커톤 등과 연계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도록 유도한다. 또한 적극행정 연계를 강화한다. 규제 샌드박스 적용 전 부처의 유권해석 등 적극행정만으로 우선 해결하고 규제 유무를 확인하는 신속확인 시 ‘적극행정지원위원회’ 심의·의결을 통해 담당 공무원의 면책을 보장하는 방법도 추진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성장을 이끄는 주요한 수단으로 규제 샌드박스 운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혁신기업이 생기지 않도록 규제 샌드박스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으로서 기업과 늘 소통해나갈 것이다.

이련주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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