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문을 연 국회 수소충전소는 ‘산업융합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추진된 사업이다.
‘1호’ 국회 수소충전소를 가다
1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옆 흰색 건물에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4개월 전에 문을 연 국회 수소충전소였다. 지붕 너머로 국회의사당을 상징하는 돔형 지붕이 보일 만큼 국회와 가까웠다. 충전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수소연료전지자동차(수소차)는 모두 파란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파란 번호판은 수소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에 부착된다.
국회 수소충전소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추진된 사업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실증특례 및 임시허가를 통해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줌으로써 혁신을 촉진하는 규제 유예제도다. 현대자동차는 도심 수소전기차 충전소를 규제 샌드박스 사업으로 신청했고, 2019년 2월 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국회를 비롯한 3곳에 실증특례를 부여했다. 이어 관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인허가부터 완공까지 모든 절차를 7개월 만에 완료했다. 2019년 9월 10일 열린 국회 수소충전소 준공식에서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정부는 2019년 1월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각 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 이번 국회충전소가 대표적 성과”라고 말했다.
▶1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수소충전소에서 직원이 수소차에 충전하고 있다.
충전 속도 빨라 하루 최대 95대까지 충전
국회 수소충전소는 안전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가 솔선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수소차 운전자 박동열(71) 씨는 “국회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했다는 건 나름대로 의미 있고 획기적인 일”이라며 칭찬했다. 경기도 평택에 사는 그는 볼일이 있어 서울에 온 김에 국회 수소충전소에 들렀다고 했다. 다른 수소충전소보다 충전 속도가 두 배 이상 빠르기 때문이다. 국회 수소충전소는 시간당 5대 이상 완충할 수 있는 25㎏/h의 충전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하루 70대 이상 완충할 수 있는 셈이다. 국회 수소충전소 이승주 소장은 “여기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소차를 충전하는 곳”이라며 “오늘은 대기 줄이 짧은 편인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10여 대씩 줄을 선다. 하루에 많게는 95대까지 충전한 날도 있다”고 말했다. 수소충전소는 타워형 이동차량(튜브 트레일러)에서 수소를 공급받아 수소 압축 패키지로 이를 압축하고, 고압용기에 일시 저장했다가 충전기를 통해 수소를 충전한다. 충전 속도는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데, 튜브 트레일러에서 막 수소를 공급받았을 때 압력이 높아 가장 빠르다. 충전 요금은 ㎏당 8800원이다.
2019년 3월 낡은 디젤차를 폐차하면서 환경에 도움이 되는 수소차를 산 박 씨는 평택에서 가장 가까운 수소충전소가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라 불편함이 크다고 했다. “충전소가 많지 않아 충전하러 왔다 갔다 하는 연료비만 해도 상당하다”며 “충전이 문제지, 차는 조용해서 굉장히 마음에 든다. 연료비도 디젤의 반값 수준이다. 충전소만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 아무개(65) 씨도 “2019년 2월 수소차를 샀지만, 충전하기 어려워 기존에 있던 휘발유 차를 처분하지 못하고 계속 몰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상암과 양재에 수소충전소가 있지만 충전 속도가 느리고 충전 압력이 350bar로 낮아 수소 승용차 충전량의 절반만 충전할 수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에서 연구용으로 마련한 양재 충전소는 충전 요금이 무료라 지역 이용자까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반면 국회 수소충전소는 충전 압력이 700bar로 높아 전량까지 충전할 수 있다. 김 씨는 “국회 충전소가 생긴 뒤에는 충전이 쉬워져 수소차만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2019년 수소충전기 20기 구축 ‘세계 최대’
1월 현재 국회를 포함해 전국에 모두 34기의 수소충전기가 있다. 2018년 말 14기에서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일본의 112기, 독일 81기, 미국 70기에는 못 미치지만, 2019년 한 해 동안 구축한 충전기 수는 20기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정부는 2020년 20여 기를 추가로 착공하는 등 2022년까지 310기, 2040년 1200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소충전기 구축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10건 넘게 개선했다. 지상에만 설치할 수 있었던 수소충전소가 2020년 상반기부터는 복층형 건설이 가능해진다. 수소충전소 시설 간 이격거리 규제도 완화된다. 수소 충전과 제조, 공급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수소충전소 등장에 맞게 개선할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개발제한구역 내 설치 가능한 수소충전소 범위도 확대돼 앞으로는 산업시설 구역에도 제조 기능이 있는 수소충전소가 입주할 수 있다. 수소 사고 발생에 따른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도 강화됐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 유럽 등 국제 기준과 국내 여건을 고려해 생산·운송·저장·활용 등 수소의 가치사슬 전반에 대한 안전기준과 관리체계를 마련했다.
2020년 상반기에는 정부세종청사에도 수소충전소가 문을 연다. 국회에 이어 국가 주요 시설에 구축하는 두 번째 수소충전소다. 국회와 마찬가지로 정부세종청사 수소충전소도 한국가스공사, 현대자동차 등 13개 수소 관련 기업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가 구축해 운영한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 수소인프라운영실 최성현 과장은 “수소충전소를 구축하려는 지자체의 대표적 견학 장소가 국회 수소충전소”라며 “수소충전소를 짓는다고 하면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지역 주민이 많은데, 국회 수소충전소를 단체로 방문해 국회 안에서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을 본 뒤에는 주민 여론이 달라진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같은 날 오후 국회 앞 도로에 ‘친환경 수소 전기버스’라고 적힌 경찰버스가 서 있다. 현재 정부는 낡은 경찰버스를 수소버스로 교체하고 있다. 수소버스 1대는 경유차 50대가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정화할 만큼 공기 정화 효과가 크다.
친환경 차량 교체로 환경 개선 효과도 커
국회 수소충전소에서 충전을 위해 기다리는 수소차 가운데에는 하늘색 차체에 ‘수소 TAXI’라고 크게 적힌 차가 있었다. 국회 수소충전소가 문을 연 날부터 서울에서 운행을 시작한 수소택시다. 현재 2개의 택시업체에서 각 5대씩 모두 10대의 수소택시가 서울 시내 도로를 누비고 있다. 수소택시 기사 이 아무개(62) 씨는 “그 전에는 액화석유가스(LPG) 차량을 운행했는데, 수소차가 훨씬 조용하고 진동이 없다”며 “피로도가 50%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수소택시 10대는 4개월 동안 평균 3만㎞를 운행하며 모두 2만 2000여 명의 승객을 태웠다. 수소택시를 이용한 승객들은 승차감이 좋고 매연이 없으니 수소택시만 호출할 수 없냐고 문의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이 씨는 “아직 수소택시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손을 들어 세웠다가 수소택시는 요금이 더 비싼 줄 알고 안 타는 사람들도 있다”며 “수소택시 요금이 일반 택시와 똑같다는 점을 꼭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국회충전소 근처에는 ‘친환경 수소전기버스’라고 적힌 경찰버스도 있었다. 정부는 낡은 경찰버스를 차례로 수소버스로 교체하고 있다. 이승주 소장은 “국회 앞 도로에 대기하는 경찰버스 가운데 수소차가 2대 있다. 거의 이틀에 한 번씩 여기서 충전하는데 일반 승용차보다 5~6배 들어가기 때문에 30분 이상 걸린다”며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이 불편할까 봐 경찰버스는 아침 8시 문 열기 전에 충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와 버스 등 사업용 자동차는 운행이 잦아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할 때 환경 개선 효과가 크다. 수소택시 한 대는 경유차 2대가 내뿜는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1시간 운행하면 성인 70명이 마시는 공기를 정화할 수 있는 셈이다. 수소버스 1대는 경유차 50대가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정화할 만큼 공기 정화 효과가 크다. 현재 수소버스는 전국에서 13대가 운행되고 있다.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라 2022년까지 수소버스 2000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성윤모 장관은 “수소택시와 수소버스는 ‘달리는 공기청정기’로 도심 미세먼지 저감과 함께 수소전기차 확산 및 산업 육성에 기여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