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신이여, 도와주소서

2020.02.10 최신호 보기

▶태평소의 구성진 가락은 황도 붕기풍어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바람이 분다. 비릿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바람일까? 어디에서 시작된 바람인지 모르지만 바다에서 오는 바람이다. 너른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은 풍요로운 갯벌을 지나 어촌의 생명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바다는 어민들에게 보배로운 삶의 현장이다. 생선과 해초 등 많은 먹거리와 생활비를 제공한다.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거친 파도와 바람은 사정없이 생명을 앗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바다의 절대자에게 제물을 바치고, 춤과 노래를 하며 안녕을 갈구한다. 또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 그것이 풍어제(豊魚祭)다. 음력 정월 초하루가 지나면 곳곳에서 풍어제가 열린다. 가장 먼저 열리는 것이 충청남도의 ‘황도 붕기풍어제’다. 음력 정월 초이틀부터 1박 2일로 진행되는 이 풍어제는 ‘마을굿’이다. 주민들이 무탈하고, 생업이 번성하게 해달라고 빈다. 마을 잔치인 셈이다.

▶바닷가에 정박 중인 어선에는 풍어를 바라는 오색기가 나부낀다.

날카로운 징 소리로 시작된 풍어제
“쟁 쟁 쟁 쟁~.” 멀리서부터 풍어제가 한창 진행되고 있음을 알 리는 날카로운 징 소리가 마을 전체를 휘감는다. 1월 26일 오후,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 한복판에 있는 마을회관에서는 신명 나는 풍어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회관 입구에 차린 제사상 앞에 붉은 옷을 입은 만신(무당)이 춤을 추며 신(神)을 부르고 있다. 세경굿이다. 신을 부르는 청신(請神)의 과정이다. 제주의 집에서 지내는 굿으로 마을 가정마다 평온과 풍어를 기원한다. 굿의 주관은 김혜경 만신이다. 2019년 타계한 김금화 만신의 제자다. 김금화 만신은 생전에 이곳 풍어제를 30년간 주관했다. 이날 아침에는 피고사가 열렸다. 황도 풍어제의 제물은 돼지가 아닌 소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매우 귀한 동물이다. 농사와 운반 수단으로서 절대적인 존재. 그럼에도 왜 황도 어민들은 그 비싼 소를 제물로 바쳤을까? 애초 이곳 어민들이 모신 신은 뱀이었다. 뱀이 이무기가 되고 용이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뱀은 돼지와 상극이다. 그래서 이곳 어민들은 돼지를 키우지도 먹지도 않는다.
제물로 선정된 소는 제당에 올라오기 전 샘물로 깨끗이 몸을 씻긴다. 정화다. 제당 앞에서 희생시키고, 각 부위의 고기를 조금씩 떼어낸다. 소의 심장, 허파, 간과 피를 그릇에 담아 고사를 지낸다. 피고사다.

▶풍어의 신’ 임경업장군 깃발을 앞세운 행렬이 본굿이 열릴 제당을 향해 가고 있다.

‘풍어의 신’ 임경업 장군이 앞장
세경굿을 마친 뒤 마을을 지나 본굿이 열리는 제당으로 행렬이 움직이다. 맨 앞에는 임경업(1594~1646) 장군을 그린 커다란 깃발이 앞선다. 임경업 장군은 서해 어민이 모시는 신이다. 중간계(中間界)의 신인 셈이다. 임 장군은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청나라로 가던 중 선원들의 식량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얕은 바다에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아 썰물 때 나무 빗살에 걸리는 조기를 잡는 어설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임 장군이 풍어의 신이다.
뒤에는 서리화가 따른다. 서리화는 긴 장대에 삼단으로 흰 종이꽃을 장식한 것. 서리화는 뿌리 없이 눈 위에 피어난다는 상상의 꽃이다.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이 서리화를 타고 내려온다고 믿는다.
행렬이 마을을 돌고 제당에 도착하면 황도의 선주들은 오색 깃발을 잡고 달리기 경주를 한다. 제당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긴 배 기를 두 손으로 잡고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한다. 먼저 제당 앞 깃발 꽂는 곳에 자신의 깃발을 꽂기 위해서다. 가장 먼저 도착해 깃발을 꽂아야 신의 보살핌으로 1년 동안 무사고와 만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놀이다. 붕기풍어제의 붕기(鵬旗)는 하루에 수만 리를 난다는 붕새에서 따온 말로 글자에 걸맞게 큰 깃발이 제당 앞에서 계속 휘날린다.

▶황도 붕기풍어제는 밤이 깊도록 진행된다. 제당 주변의 신목들이 인상적이다.

충남 무형문화제 제12호로 보존·전승
제당에서 본굿이 시작되면 막걸리와 함께 대나무에 소고기 살코기를 줄줄이 꿴 꼬치를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오전에 희생된 황소의 살점이다. 장작 모닥불에 익힌 소고기는 잔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황도의 황자는 누를황(黃)이다. 이곳에 보리를 많이 심어 봄에 멀리서 섬을 바라보면 누렇게 보인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제당의 주변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한 나무는 벼락을 맞아 가운데가 갈라졌지만 신령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다.
충남 무형문화재 제12호로 보존·전승되고 있는 황도 붕기풍어제는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밤에 출어한 황도리 어선들이 항로를 잃고 표류할 때 제당이 있는 산에서 밝은 불빛이 비춰 무사히 귀항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자신들을 보살펴준 신성한 곳이라 하여 당집을 짓고 제신을 모시기 시작했다. 한때 황도에는 돈이 넘쳤다. 그러나 새만금 방조제가 바다를 가로막으면서 어획량이 크게 줄었고, 제방 일부를 허물자 갯벌에 바지락 등 조개들이 살아나며 그나마 어촌의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현재 황도에는 142명의 주민이 살고 42척의 어선이 근해에서 어업에 종사한다.
만신들과 주민들은 어울려 노래하고 춤춘다. 신을 즐겁게 만드는 오신(娛神)의 과정이다. 인간과 신이 어우러져 즐거워야 복이 깃든다. 인절미도 나눠준다. 영혼과 육체가 찰떡같이 하나로 붙어 떨어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말이 있을 만큼 굿과 떡은 붙어 다닌다.

▶이번 황도 붕기 풍어제를 주관한 김혜경 만신. 그는 2019년 타계한 김금화 만신의 후계자로 국가무형문화제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 굿보존회 회장이기도 하다.

새벽녘 풍어 타령이 흐르며 막 내린 풍어제
굿은 새벽까지 계속됐다. 어떤 만신은 삼지창을 흔들고, 한 박수무당은 칼을 휘두르며 신과 인간의 거리를 좁혀주었다. 중력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듯 만신의 육체는 허공을 춤춘다.
김혜경 만신이 물동이에 올라선다. 물동이 안은 깨끗한 물로 채워졌고, 지폐와 사과 등이 둥둥 떠 있다. 물동이에 올라선 만신은 공수를 내린다. 접신한 신이 인간의 목소리로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고 축복을 내리는 과정이다.
마당의 장작불은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파괴했다. 굿을 구경하는 주민들은 희생된 소의 내장과 뼈를 우리는 큼직한 가마솥 주변에서 추위를 잊었다.
다음 날에는 어민들이 자신의 배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배 고사를 지냈고, 김혜경 만신은 다른 다섯 명의 만신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강변용신굿을 지냈다. 바다에 떠도는 원혼을 달래는 굿이다. 신을 떠나보내는 송신(送神)의 과정이다. 김혜경 만신은 양손에 서낭대를 들고 빙빙 돈다. 서낭대는 가는 대나무 막대에 백지(한지) 여러 가닥을 술처럼 길게 묶은 도구다. 바람에 백지가 흔들리며 굿춤이 더 율동적으로 보이고, 신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감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미끄런 조기야 코코에 걸려라/ 에이야 술배야/ 껄끄런 박대야 코코에 걸려라/ 에이야 술배야/ 선주에 마누라 술동이 이고/ 발판 머리에 엉덩이춤 춘단다/ 걸렸구나 걸렸구나/ 우리 배 망자에 걸렸구나/ 이놈의 조기야 어디 갔다가 이제 왔냐/….” 풍어 타령이 흐른다. 바람이 차다. 비린내가 정겹다.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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