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도 팬덤이 움직이는 시대

2020.02.10 최신호 보기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2019년 2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방송한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은 그해의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이 됐다. 송가인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킨 이 프로그램은 총 100명의 참가자가 오디션을 통해 우승을 가리는 구성뿐 아니라 중장년층 팬덤(가수·배우 등 유명인의 팬층)의 존재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프로듀스101>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미스트롯>의 시즌2로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시작됐다.
<미스터트롯>은 시즌1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판도 커졌다. 상금부터 시작해 차량 지원, 참가자 수가 크게 늘었고 그에 비례해 시청률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상금은 종전 3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올랐고, 최후 1인의 우승자에게는 최신형 에스유브이(SUV) 차량과 함께 의류 상품권도 지원한다. 데뷔곡은 조영수 작곡가의 노래를 받는다.
<미스트롯>에는 1만 2000여 명이 지원한 반면, <미스터트롯>에는 1만 5000여 명이 지원했다. 제작진은 10대부터 45세까지 나이 제한을 두었다.
사실 <미스트롯>도 애초에 ‘트로트를 좋아하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고등트롯’(<고등 래퍼>의 패러디)이란 내용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지원자 수가 적어 지원 연령을 10~40대로 넓혔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시즌2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높아 중국 버전도 방송됐다. 방송 시작부터 여러 국가에서 판권 구입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한편 <미스터트롯>의 시청률도 폭발적이다. 분당 최고 시청률 19.9%(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수도권 기준), 전체 시청률 17.7%(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전국 기준)로 동시간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종편)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어떻게 보여주느냐’보다 ‘얼마나 보여주느냐’의 문제
이렇게 보면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방송계가 아니라 현재 가요계의 시장구조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이란 생각도 든다. 일단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력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방송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특히 미디어의 힘은 마케팅 영역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음악 산업의 구조는 21세기 이후 유통과 판매, 그러니까 마케팅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미디어가 복잡해지고, 소비 습관이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음악의 성패는 노출 자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페이지 등 다양한 플랫폼(콘텐츠를 수용하고 발행할 수 있는 웹사이트)을 활용하는 마케팅이 고도화되고, 그에 대한 비법(노하우)가 곧 경쟁력이 되는 상황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사재기 논란’ 역시 이 과정에서 소셜 마케팅(기업이 이익 추구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행하는 마케팅 활동)의 모호한 경계가 가시화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멀티플랫폼(다양한 환경의 운영체계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컴퓨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시대에 음악은 대중에게 선택받기보다는 노출 여부가 중요하다. 따라서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콘셉트와 형식(포맷)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음악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보여주느냐의 문제다.
한편 이렇게 노출이 되어도 음악은 그 자체로 수익을 보장하기 어렵다. 음원이 아닌 다른 것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모든 영역에 해당되는 얘기다. 그래서 음악 판매가 아니라 부가 수익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부가 수익 창출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는 노동력과 아이디어, 자본이 투입된다. 현재로서는 공연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부가가치다. 이런 환경에서 실구매자, 즉 팬덤이 중요해진다. 음악 산업의 각 단계에서 고려되고 준비되는 기획들은 모두 팬덤을 만들고 그 결속력을 유지시키는 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각 단계의 완성도뿐 아니라 예술가와 음악의 매력, 미디어 콘텐츠의 대중성과 화제성, 결과물의 만족도가 모두 요구된다.
음악 사업은 결코 쉽지 않은 사업이다. 그래서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된 가요계는 팬덤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운영된다.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50대 팬들이 10대 팬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현실
그런데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이런 구조가 아이돌 음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을 증명했다. 심지어 아이돌 팬덤 역사에서 쌓인 노하우들이 다른 팬덤으로 이전되면서 연령에 상관없이 팬들은 팬덤의 행태를 학습하고 전파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50대 팬들이 10대 팬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팬덤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보통 문화 연구에서 팬덤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좋게 본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건강하지 않은 소비자 행태의 일부였다.
그러나 K-팝 이후,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팬덤은 사회적 편견과 그에 맞서는 또래 집단의 경험, 개인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 팬덤은 아티스트의 노동조건을 대변할 정도로 건전하게도 보인다. 한국 사회가 개인에게 억압적이라는 사실이 한국 팬덤을 이렇게 복잡하게, 혹은 남다르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팬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이제 팬덤은 음악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음악뿐 아니라 거의 모든 브랜드에 팬덤이라는 개념이 개입한다. 사업의 기본 단위로서 팬덤이 중요해지는 현상은 앞으로 콘텐츠, 미디어, 플랫폼의 연결 구조 안에서 팬덤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음악을 이해하는 데 음악의 장르, 지역의 특징 등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소비자 행동론, 팬덤의 마음 구조 같은 것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는 얘기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