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등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이윤기 선생은 여러 면에서 특이한 분이었다. 그는 공부에 연연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들과는 다른 궤도의 인생을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최고의 작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는 중학교 때 유도를 시작했고 고등학교는 3개월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저는 지금도 그놈의 컨베이어 벨트(고등학교)에서 뛰어내린 걸 내 생애 가장 잘한 선택이라 자부합니다. 학교는 그만뒀지요, 주먹질에 이골이 났지요, 그러면서 음악 듣고 영화 보다 질질 짜기도 했지요. 종잡을 수 없는 놈이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의 고백이다. 그는 인생 대부분을 3등칸에서 보냈다. 고봉산에서 근무하고, 베트남전에도 다녀왔다. 그는 자신의 에너지가 일정 부분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제는 슬슬 2등칸을 타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시쳇말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뭐 그런 거죠.”
나쁜 일, 좋은 일 따로 없다
세상에 나쁜 일과 좋은 일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상황에 처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초년에 아버지를 잃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가난한 집에서 먹을 걸 못 먹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잘 승화시키면 성공의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다.
대기업 사장으로 있는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어. 그래서 달동네로 이사를 갔지. 교과서 살 돈도 없고 교복도 남이 입던 것을 물려 입었어. 창피했지만 한편으로 내가 아버지가 되면 절대 이런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고 어금니를 깨물며 결심했어. 그때만큼 열심히 살고, 공부한 적은 없어. 내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고교 시절 겪은 가난 때문일 거야.”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또 한두 가지 콤플렉스 없는 사람도 없다. 열등감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느냐는 것이다. 열등감에 파묻혀 “나 같은 놈이 뭘 하겠어”라며 평생을 살 수도 있고, 반대로 “그래, 내가 보여주지.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하며 노력할 수도 있다.
필자도 대학 졸업 후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어영부영하다 취업에도 실패해 놀게 되었다. 참 한심했다. 갈 곳이 없으니 일찍 일어나 동네 도서관에 가 책을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이 책 저 책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생각을 다 했다. 그때 한 생각 대부분은 ‘한심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였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생각은 있었다.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취직하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반년쯤 지나 지방에 있는 모 연구소에 취직됐다. 서울이 아닌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 거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무조건 예스(Yes)를 하고 내려갔다. 연구란 것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워낙 공부를 안 해서인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지금 주변의 잘나가는 친구들이 그때 연구소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필자가 박사 학위까지 받은 것도 이들을 만나면서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인생은 그런 것
필자는 사실 청춘에게 뭐라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의 청춘처럼 열심히 살지도 않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게으르고, 짜증 많고, 늘 남 탓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필자도 우연한 기회에 취직을 해 좋은 상사와 동료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했다. 환경이 필자를 바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묘미가 있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바로 그 일에 대해 재정의를 하는 것이다. 청춘이 그렇다. 청춘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청춘의 정의는 방황이다. 청춘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방황하지 않는 건 청춘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청춘은 화려한데 왜 힘들까? 이는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회 앞에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은 보이지 않고 열등감만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미래 시점에서 지금을 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 명확하다. 내가 왜 헤매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부디 희망을 갖고 ‘일신우일신’ 하길 고생하는 모든 청춘에게 부탁한다.
한근태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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