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2019년 12월 21일 전남 신안군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열린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은퇴 대국에서 바둑판에 흑돌을 놓고 있다.│연합
“한판 잘 즐기고 간다.”
풍운아 이세돌(36) 9단이 2019년 12월 21일 고향인 전남 신안의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열린 국산 인공지능 한돌과 마지막 3국 패배 뒤 한 말이다. 노년의 도사가 하직할 때나 할 법한 응축된 수사는 지난 36년간 거침없이 살아온 이세돌의 풍운아 기질을 보여준다.
30대 중반에 은퇴를 한다는 것은 보통 기사들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전성기는 지났다고 하지만 한국 랭킹 10위권 기사라면 바둑리그나 각종 기전 등에 참가해 충분히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세돌은 “다시 태어나도 바둑을 둘 것 같지만, 바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이제 전환점, 반환점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새로운 출발을 할지, 무엇을 할지 정해진 것은 없다. 이세돌은 “아직 정리가 덜 됐다”고 말했다. 물론 인공지능 한돌과 은퇴 대국으로 바둑을 모르는 사람조차 이세돌 열풍에 빠지게 한 스타성은 이세돌의 자산이다. 방송에 출연하든, 사업을 하든 아니면 정치에 나서든 못할 것은 없다.
세계 대회 18회, 국내 대회 32회 우승
이세돌의 삶은 거침이 없었다. 6세 때부터 아버지 따라 바둑을 둔 그는 12세이던 1995년 입단한 뒤 2000년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이후 통산 18차례 세계 대회, 32차례의 국내 대회 우승으로 50승 고지에 올랐다. 전성기 때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기풍처럼 바둑판 밖에서도 늘 논란의 중심이 됐다. 1999년 대국료 없이 별도로 연간 10판씩 소화해야 하는 승단 대회를 거부했고, 2009년에는 한국바둑리그에 불참하고 중국리그에 참여하려 했다가 한국프로기사회와 마찰을 빚어 휴직계를 내고 잠적했다. 2016년에는 프로기사 상금 일부를 일률적으로 공제하는 프로기사회의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며 기사회 탈퇴를 선언했다.
대부분 기성의 권위나 관례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로 인해 바뀐 제도는 ‘이세돌법’이라 불렸다. 하지만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전투적 행보가 스스로를 고립시킨 적도 있다. 한 프로기사는 “이세돌의 주장이 전혀 틀리지 않다. 많은 대목에서 수긍이 간다. 하지만 자기가 소속된 기사회에까지 돌을 던지면, 이세돌을 도와주려 해도 도와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화살이 되어 돌아온 기사회 탈퇴
기사회 탈퇴는 이세돌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한국기원이 기사회 회원이 아닌 경우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정관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세돌의 운신 폭은 좁아졌고, ‘인공지능을 넘어설 수 없다’는 바둑 환경을 이유로 은퇴를 결정했다.
하지만 은퇴를 해도 이세돌은 이세돌이었다. 그는 은퇴 대국의 상대로 사람 대신 인공지능을 선택했는데, 2016년 ‘인류 대 기계’의 대결에서 유일하게 1승(4패)을 거둔 역사를 기억하는 팬들한테 다시 이세돌 열풍을 불러온 계기가 됐다.
실력의 열세를 인정해 두 점을 먼저 깔고 두는 접바둑으로 대국 방식을 정하고, 이기면 대등하게 맞서는 치수 고치기로 승부의 박진감을 높였다. 전문가들의 예측을 깨고 1국에서 78번째 수로 한돌의 버그를 일으켰고, ‘다시 인공지능을 이긴 기사’로 등극한 것은 그의 운발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세돌은 최종 1승2패로 은퇴 대국을 마감했지만, 가장 이세돌답게 대미를 장식했다. 한돌도 1국의 버그를 사흘 안에 개선하면서 실리를 얻었다.
이세돌이 거침없이 운명을 개척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자신이 쓴 <판을 엎어라>의 제목과 비슷하다. 판을 흔들고 엎고 새로 짜는 능력은 바둑판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여서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독창성과 당돌함이 새로운 길을 여는 데 길잡이가 됐다. 기존의 정석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이걸 꼭 내가 해야 해”라는 직설적이고 삐딱한 시선이지만, 다른 한편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파격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이 가족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기원
톡톡 튀는 캐릭터, 앞으로 어디로 튈까
앞으로 이세돌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바둑 바깥에서도 이미 그의 주가는 뛰어올랐다는 것이다. 방송 쪽에서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설 뜻도 비쳤다. 반대로 바둑 현장에 돌아올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활동할 수 없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뛸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의 명성으로 국내에서 이벤트 대국을 다시 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그는 한동안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주목을 받을 것이다.
24년 4개월의 현역 기사 생활을 마감한 이세돌은 마지막 은퇴 대국 뒤 어머니 박양례 씨와 후배 기사들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이세돌은 “바둑 팬들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바둑 외적으로는 떠나지만, 많이 응원해주시기를 바란다. 앞으로 다른 곳에서 좋은 모습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대의 천재가 세상 모든 사람과 코드를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은퇴 대국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음 가는 대로 판을 펼친 뒤 급작스레 은퇴한 그의 풍운아적 면모가 바둑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김창금_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