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두려움 줄이고 ‘스타트업 사우나’ 만들고

2019.12.30 최신호 보기
혁신창업 강국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는?
혁신을 추구하는 창업 생태계는 단순히 인적, 물적 자원의 투입을 늘린다고 저절로 조성되는 게 아니다. 투자 주도형 또는 효율 중시형 경제에서는 혁신창업이 꾸준히 활발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창업 강국으로 불리는 나라에서는 경제적 요소보다 기술과 제도, 문화, 사회적 인식과 관행 같은 비경제적 요소가 상호작용해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환경을 더 중시한다. 또 창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 인프라 조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

▶스웨덴의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일렉트룸 내부| 중소벤처기업부

스웨덴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 체계가 뒷받침


대표적인 나라가 유럽에서 스타트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스웨덴이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와 프랑스 경영전문대학원 인시아드(INSEAD)가 공동 조사해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지수(GII)를 보면, 스웨덴은 2019년 스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 120여 개국 가운데 스웨덴은 지금까지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스웨덴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소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경제구조가 유사하다. 그런데 뚜렷하게 갈리는 지표가 있다. 64세 이하 경제활동인구 1000명당 신생기업 수가 8.1개(2016년 기준)로, 우리나라(2.6개)보다 월등히 많다. 그만큼 창업이 활발하고,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능력이 강함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8년에 발표한 회원국 ‘창업 기회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스웨덴에서는 창업을 기회로 본다고 인식하는 성인 비율이 81.6%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과 일본 등은 40%대로 꼴찌 수준이다. 스웨덴 국민이 창업에 대한 도전 의식이 적극적인 배경에는 무엇보다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실업수당과 다양한 공적부조 등을 통해 개인 파산으로 내몰리지 않게 하는 소득원을 제공받기 때문에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이다. 국민의 높은 교육 수준과 1990년대 이후 디지털 사회 진입을 위해 정보기술(IT) 인프라 투자를 확충해온 것도 창업 활성화의 밑거름이 됐다. 무엇보다 스웨덴에서는 창업과 그 결과물을 현세대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스웨덴 창업 생태계에서 ‘정부 주도’라는 말은 없다. 정부 계획에 따른 상향식 추진이 아니라 지역이나 특정 산업 내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등 구성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와 수평적 협업을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한 게 스웨덴의 창업 생태계다. 예컨대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시스타 과학도시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인 에릭손과 스톡홀름시, 왕립공과대학과 스톡홀름대학 등이 1970년대부터 서로 협력해 키워온 산업 클러스트이자 혁신적 스타트업의 요람이다. 2020년에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개방형 창업 허브에 ‘코리아 스타트업 센터(KSC)’가 들어선다.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최근 국빈 방문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 일행이 방한 기간 중 이런 내용의 협력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로 우리 정부와 합의했다.

▶핀란드 스타트업 축제 ‘슬러시(SLUSH)’에서 토크 콘서트 장면 | Slushmedia

핀란드
‘하나의 큰 노키아 대신 백개의 작은 노키아’를


스웨덴과 함께 핀란드 역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스타트업 강국이다. 핀란드 경제는 2000년대 중반 노키아의 침몰이 시작된 뒤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스타트업에서 찾았다. 핀란드 정부는 ‘하나의 큰 노키아 대신 100개의 작은 노키아’를 만들겠다는 전략에 따라 스타트업 육성에 총력을 쏟아왔다. 2015년부터는 해마다 인구수 대비 기술혁신형 스타트업 창업이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2016년 기준 핀란드 전체 제조업 생산의 77%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담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핀란드의 스타트업 활성화에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여가 컸다. 특히 2010년 핀란드의 3대 국립대학을 통합해 설립된 헬싱키 알토대학은 특정 분야를 뛰어넘는 다양한 지식에 실무 능력까지 갖춘 통섭형 인재 육성과 스타트업 보육 기능으로 유명하다. 알토대학의 교육은 이론보다 실습과 팀 프로젝트 중심으로 운영된다. 학생들 스스로 창업 동아리를 구성해 사업 타당성을 인정받으면 마케팅과 투자 유치, 사업화를 위한 컨설팅 지원 등을 해준다. 대학이 보유한 특허를 활용해 창업을 하면 적정 매출과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지적재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알토대학에서 지원하고 배출하는 스타트업만 한 해 평균 100개를 넘을 정도다.
핀란드 정부는 알토대학의 모델을 전국의 다른 대학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교육과 연구 기능을 연계한 산·학·연 클러스터를 확산시켜 핀란드 전역에 혁신창업의 동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핀란드에도 스웨덴처럼 개인보다는 조직, 지식과 기술의 독식보다는 협력과 공유를 장려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핀란드 대학가에는 ‘스타트업 사우나’라는 이름의 창업 동아리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동아리에는 사우나처럼 뜨거운 열기로 함께 창업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알몸으로 땀을 흘리며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상적으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업화를 모색하는 모습에서 핀란드만 갖출 수 있는 독특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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