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노라, 밝았노라, 희망찼노라

2019.12.30 공감 최신호 보기


▶호미곶에 해가 솟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다. 바다에 세운 조형물인 ‘상생의 손’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일출을 바라본다.

뜬다. 해가 뜬다. 아스라한 수평선 위를 살포시 가렸던 구름을 헤치고, 붉은 해가 불끈 솟아오른다. 매일매일 변함없이 뜨는 해지만, 막 뜨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 심장을 뛰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능적으로 해가 주는 빛과 에너지에 감사하기 때문일까?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콘크리트 집 안에 갇혀 지내 바다나 땅 위로 솟는 해를 볼 기회가 적어서일까? 해가 바뀌는 새해 첫날, 바다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는 것은 누구라도 설레고 흥분되기 마련이다. 그것도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른다는 바닷가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본다는 것은 심장의 벅찬 박동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러기에 수많은 이들이 새해 첫날 어둠을 뚫고 포항 호미곶에 모인다.

▶동해안 최대 어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에는 항상 인파가 넘친다.

▶죽도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싱싱한 수산물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 호미곶은 꼬리
12월 20일, 호미곶의 일출 시간은 오전 7시 30분.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虎尾)처럼 바다로 돌출한 육지다. 경도상 가장 동쪽이다. 정확한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장기반도의 끝부분. 영일만에 돌출한 곶으로,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보았을 때 꼬리에 해당한다. 조선시대의 역학 풍수지리학자 남사고(1509~1571) 선생이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인데,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 장기곶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했다. 호미곶의 조선시대 명칭은 장기(長?)곶.
2000년 밀레니엄 새천년 해맞이 행사 때 탁 트인 수평선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해맞이광장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청동으로 만든 손이 바다와 육지에 세워져 있다. 바다에 있는 손은 왼손으로 높이 8.5m이고, 육지에 있는 손은 오른손으로 5.5m이다. 이름은 ‘상생의 손’. 힘차게 손가락을 벌린 채 바다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기운을 내뿜는다. 바다 갈매기 한 마리가 손가락 위에 앉아 일출을 기다린다.
수평선 위를 짙은 회색 구름이 살짝 덮고 있다. 이날 전국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모여든 수십 명이 여명의 해안가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서 있다. 일출 시간이 됐으나 해는 보이지 않는다. 구름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뒤 강렬한 붉은빛이 구름을 뚫고 조금씩 내비친다. 환호성이 터진다. 간절한 기대가 헛되지 않았다.
점차 세상은 환해진다. 온 천지를 환히 밝히는 엄청난 빛과 에너지가 방금 솟아오른 태양에서 뿜어져 나온다.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어본다. 가족, 연인의 손을 잡고 간절히 소원을 빈다. 동해 바닷가 일출의 기운을 믿어본다. 

▶포항운하를 운행하는 유람선에서 바라본 포항시. 갈매기들이 따라온다.

막걸리 안주로 제격인 서민 음식 과메기
포항에 오면 과메기를 맛봐야 한다. 겨울이 제철이기 때문이다. 전국 과메기의 70%를 포항 구룡포읍에서 생산한다. 구룡포는 포항 시내에서 호미곶으로 가는 중간쯤에 있다.
과메기는 서민의 음식이다.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다. 비릿한 꽁치의 쫄깃함이 매력적이다. 비릿함이 싫은 이들은 미역이나 김, 마늘과 함께 먹는다. 지금은 대부분 꽁치로 만들지만 처음엔 청어였다. 1960년대 이후 청어 생산량이 급격히 줄면서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과메기라는 이름은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시작됐다. ‘목’을 구룡포 사투리로 ‘메기’라고 해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고 다시 ‘ㄴ’이 탈락하면서 ‘과메기’로 굳어졌다.
옛날 동해안의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에 배가 고파 바닷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인 채 말려 있는 청어를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 겨울마다 먹은 것이 과메기의 기원이라는 이야기와 뱃사람들이 배 안에서 먹으려고 배 지붕에 청어를 던져놓았더니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해 저절로 과메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과메기의 유래라고 한다. 
 
▶구룡포는 전국 과메기의 70%를 생산한다. 해풍에 말리려고 대나무에 걸어놓은 꽁치

해풍 건조 ‘대걸이과메기’와 온풍 건조 ‘발과메기’
구룡포에서 ‘발과메기’를 만드는 김동우(45·땅끝수산 대표) 씨에게 과메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 씨는 15년 전부터 과메기를 생산했다. 고향이 구룡포인 김 씨는 처음엔 대나무에 꽁치를 꿰어 해풍에 말리는 전통적인 ‘대걸이과메기’를 만들다, 지금은 실내에서 플라스틱 발판에 꽁치를 널어 온풍기로 만드는 발과메기를 생산한다. 현재 구룡포에 있는 400여 개 과메기 생산 업소의 60%는 대걸이과메기, 40%는 발과메기다.
대걸이과메기는 기름이 잘 빠져 담백한 맛이 나고, 발과메기는 기름이 있어 고소한 맛을 낸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등 공기 오염 탓에 발과메기를 선호한다고 한다.
과메기는 12월 초부터 1월 초까지가 최고 성수기. 김 씨의 과메기 공장에는 30여 명의 직원이 바쁜 손길로 움직인다. 하루 평균 2000개의 두릅(한 두릅은 20마리)을 생산해 전국에 보낸다. 직원들은 대부분 결혼 이주민이다. 부산에서 사 온 냉동 꽁치의 배를 가르는 작업은 주로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들이 담당한다. 30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명이 베트남에서 왔다.
배에서 내장을 빼고 뼈를 발라낸 꽁치는 중국에서 온 교포들이 바닷물과 담수로 번갈아 세척해 발에 넌다. 중국 교포는 8명. 발에 가지런히 널린 꽁치는 외부와 차단된 온실에서 28℃의 인공 바람으로 18시간 건조한다. 밀폐된 작업장에서 생산부터 건조, 포장까지 위생적으로 작업해 과메기를 만든다. 김 씨는 “실내 온풍 건조를 하면 미세먼지 걱정이 없고, 꽁치의 육질이 기름을 품은 채  꼬들꼬들하게 반건조 상태가 돼 고소한 맛이 입맛을 당긴다”고 말한다. 

▶구룡포의 과메기 덕장에는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대부분 일하고 있다. 실내온풍 건조는 미세먼지 걱정이 없어 해풍건조보다 위생적이다.

겨울 대게가 발길 붙잡는 죽도시장
과메기를 맛보았으면 이제 포항의 상징인 죽도시장을 가보자. 죽도시장은 1954년 남부상설시장으로 시작해 1971년에 포항죽도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15만㎡ 부지에 2500여 개 점포가 자리 잡아 동해안권에서는 최대 규모의 어시장이다. 주중에는 평균 1만 2000여 명이, 주말엔 3만 명이 시장을 찾을 정도로 큰 시장이다. 겨울이 제철인 대게와 과메기가 손님을 부른다. 대게는 12월이 되면 알과 살이 차기 시작한다. 가자미도 포항을 대표하는 생선이다. 참가자미, 용가자미, 범가자미, 분홍가자미, 홍가자미, 물가자미 등 종류도 다양하다. 붉은 알을 품은 싱싱한 생물 가자미, 말린 가자미, 반건조 가자미를 죽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호미곶의 해맞이광장은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포항운하 유람선 타고 바다 갈매기와 대화를
죽도시장에서 싱싱한 대게나 회로 한 끼를 채웠다면 포항운하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포항 구경을 해보자. 포항운하는 2014년에 만들어졌다. 1970년대 초반 포항에 제철소가 들어서고 형산강 줄기를 막으면서 강과 바다의 오염이 심해졌다.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827가구, 2225명을 이주시키고 길이 1.3㎞, 폭 20m의 운하를 건설했다. 깊이는 어른 어깨 높이 정도. 1만 원을 내고 유람선을 타면 40분간 죽도시장과 동빈내항을 거쳐 바다로 나가 포항제철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새우깡을 준비하면 바다 갈매기와 대화도 나눌 수 있다.
포항제철소의 높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 역동성이 느껴진다. 운하 옆에는 철로 만든 다양한 예술 작품이 눈길을 끈다. 쇠로 만든 돈키호테와 화려한 꽃, 케이크 등이 철을 만드는 포항을 상징한다. 포항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총 세 개다. 다리 이름이 재미있다. 첫 번째 다리는 탈랑교. 이곳에 온 부부가 사투리로 배를 탈 것이냐고 묻는 말이다. 조금 더 가면 나오는 다리의 이름은 말랑교. 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노부부가 서로 밀고 당긴다. 세 번째 다리 이름은? 직접 가서 확인하자.

이 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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