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초로, 불로소득을 위한 투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택 투기 수요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주택 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주택시장을 거주 목적의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하겠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월 16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12·16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주택시장 안정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발언이다. 그에 맞게 금융, 세제, 공급 등 여러 측면을 망라한 고강도 종합대책이 또 나왔다. 문재인정부에서는 2017년 6·19 대책부터 시작해 2018년 8·2 대책과 9·13 대책에 이어 종합대책으로는 이번이 네 번째다. 각 대책마다 구체적인 내용과 방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원칙과 정책 방향은 같다. 투기 수요 등 시장 불안 요소를 해소하면서 공급 안정에 필요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국민 주거 복지를 꾀한다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12·16 대책의 중점 방안을 네 가지로 들었다. 금융 대출이 투기 수요 자금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을 차단하고, 다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강화하며,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불법·우회 행위를 금지하고, 실수요 중심의 도심 내 주택 공급은 확대한다는 것이다.
15억 원 넘는 아파트 담보대출 전면 금지
12·16 대책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당장 시장에 파급력이 있는 조치는 대출 규제다. 시세 차익을 기대하고 초고가 아파트를 새로 구입할 경우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공급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도록 하는 카드를 꺼냈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 원을 넘는 아파트에 대한 담보대출이 12월 17일부터 전면 금지됐다. 주택 구입자가 무주택 개인이든 임대사업자든 법인이든 구분하지 않고, 시세가 15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산다면 원칙적으로 금융권 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시가 9억 원을 초과하며 15억 원 이하인 주택에 대해서도 대출 규제가 더욱 엄격해졌다. 종전까지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이 일률적으로 40%였지만 12월 23일부터 9억 원 초과 부분에 대해서는 20%만 인정된다. 예를 들어 주택 가격이 14억 원이라면 9억 원까지는 LTV가 종전대로 40%이고, 나머지 5억 원에 대해서는 20%로 축소된 것이다. 이에 따라 5억 6000만 원이던 대출 한도가 4억 6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가계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적용 방식과 기준도 확 달라졌다. DSR는 연간 총소득에서 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데, 가계대출의 부실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 당국이 2018년 하반기부터 금융권에 적용하는 건전성 관리 지표다. 기존 총부채상환비율(DTI) 방식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만 부채로 계산했던 것에 비해 DSR 관리는 다른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카드대출, 자동차 할부금융 등 모든 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득의 일정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한도를 정한다는 게 특징이다. DSR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신고소득이 적거나 빚이 너무 많은 가계는 주택 구입을 위해 새로 대출을 받기 어렵다.
게다가 정부는 12·16 대책에서 기존에 금융회사 단위로 평균을 내 관리해온 DSR 지표를 개별 대출 신청자(차주) 단위로 전환하도록 했다. 대상 차주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시가 9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신청자다. 시중은행의 경우 종전에는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DSR 평균이 40%를 넘지 않는다면 개별 차주의 DSR가 40%를 넘더라도 문제가 없었으나 이제는 대출을 거절하거나 한도를 대폭 줄여야 한다. 금융 당국은 현재 60%인 비은행권의 DSR 한도도 2021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축소하기로 했다.
9억 원 초과 1주택 보유자 종부세 세율 인상
초고가 주택이나 다주택 보유에 대한 세제 개편은 공평 과세의 원칙에 따라 세금 부과를 강화하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우선 정부는 공시가격 9억 원을 초과하는 1주택 보유자, 또는 공시가격 합산 금액이 6억 원을 넘는 다주택 보유자에게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세법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가 설정한 종부세의 인상 조정 폭은 지역과 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최소 0.1%포인트, 최대 0.8%포인트다. 일반 지역에서 과세표준이 6억~12억 원 구간에 있는 주택 종부세율은 현재 1.0%에서 1.2%로 0.2%포인트, 집을 세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이거나 서울 같은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율은 1.3%에서 1.6%로 0.3%포인트 올라간다.
정부는 다주택 보유자에게 한시적이지만 ‘당근’도 제시했다. 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 보유자가 내년 6월 말까지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처분할 경우 최대 60%에 이르는 양도소득세 중과율 적용은 면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적용해주기로 했다. 이는 다주택 보유자의 매물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다.
대신 주택 매매에서 발생하는 다른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더욱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된다. 9억 원 초과 주택을 매매한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의 장기보유특별공제에 실제 거주 기간 요건이 추가된다. 현행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에서는 집 한 채를 10년 이상 보유하면 해당 주택에 살지 않더라도 양도차익의 최대 80%까지 특별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이후 집을 팔면 10년 이상 보유하고 실제 거주도 해야 80% 공제율을 적용한다.
아울러 정부는 2년 미만 보유 주택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더 강화할 예정이다. 1년 미만 보유한 경우에는 현행 40%인 양도세율을 50%로 올리고, 1년에서 2년 미만의 경우 현행 기본세율(6~42%)에서 40%로 일률 조정한다. 이런 세제 개편은 모두 국회의 법 개정 사안이다. 정부는 내년 7월까지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
부동산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 높여 현실화
주택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투자하거나 보유하려는 사람들에겐 종부세나 양도세 강화보다 무거운 압박으로 다가오는 정부 대책이 있다. 바로 부동산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높여 현실화하겠다는 것으로, 국토교통부가 법 개정 없이도 곧바로 내년부터 시행할 수 있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각종 세금에다 건강보험료 등 공적 부담금을 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일종의 공인된 자산 가액이다. 지금까지 이런 공시가격에 실제 거래가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공평 과세의 기반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올해 공동주택(아파트) 공시가격의 경우 시세 반영률이 평균 68.1%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가격대별로 반영률을 살펴보면 심지어 역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주택 가격이 많이 오른 초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의 시세 반영률이 중저가 아파트보다 더 낮은 것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우선 시가 9억 원 이상 공동주택을 위주로 공시가격의 현실화율 목표치를 구간별로 설정해 끌어올리기로 했다. 구간별 목표치는 9억 원 이상~15억 원 미만 아파트는 70%, 15억~30억 원은 75%, 30억 원 이상은 80%다. 구간별로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목표치 대비 1% 낮을 때마다 0.5%포인트씩 가산하는 방식으로 지역 및 주택 가격대 간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게 국토부 방침이다.
아울러 공시가격 정책을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추진하기 위한 ‘현실화 로드맵’도 마련해 내년 중 공표하기로 했다. 중장기 로드맵을 구축하면 공시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좀 더 효과적이면서 투명한 현실화 제고 방안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국토부는 기대하고 있다. 로드맵에는 부동산 유형과 지역, 가격대 등에 따른 최종 현실화율 목표치와 도달 기간, 기타 구체적인 현실화율 제고 방식 등이 담길 예정이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 322개로 확대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는 정부가 12·16 대책에서 적용 지역을 크게 확대됐다. 정부가 11월에 서울 강남 3구 등 제한적으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첫 지정한 뒤 서울과 수도권의 미지정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상 기류가 발생하자 적용 지역을 확 늘리게 된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동 기준으로 세어보면, 기존 27개에서 322개로 증가하게 됐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으로 청약 과열 우려가 제기되면서 청약 제도도 손을 본다. 분양가 상한제 대상 주택이나 투기과열지구 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10년, 조정대상지역에서 당첨되면 7년 동안 재당첨을 제한하기로 했다. 또 분양권 불법 전매 등 공급 질서 교란 행위가 적발되면 주택 유형과 상관없이 10년 동안 청약을 금지하기로 했다. 투기과열지구나 대규모 신도시에서는 청약 1순위 자격을 부여하는 거주 기간 요건이 현행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또 고가주택에 대한 자금 출처 전수조사 등으로 이른바 ‘현금 부자’들이 집을 사는 과정도 철저히 검증할 계획이다. 국세청이 자금조달 계획서를 전수 분석하고 탈세 혐의가 포착될 경우 예외 없이 세무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또 국토부와 국세청, 금융감독원, 한국감정원 인력 등으로 구성된 상설조사팀을 신설해 부동산 시장 과열 지역에 대한 실시간 단속도 강화한다.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전방위 대책은 시장에서 당장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시중 유동성의 과잉과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 등 주택시장을 둘러싼 거시 환경이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주택시장 안정은 여건의 유불리를 떠나 정부의 당연한 임무다.
헌법 35조 3항에는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막연한 공급 부족 우려감을 불식하고, 투기적 수익에 대한 기대 심리가 퍼지는 것부터 차단하는 게 급선무다.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신뢰 확보와 일관성 유지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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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