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인의 파업

2019.12.23 최신호 보기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가 지구의 오로라와 함께 찍은 국제우주정거장 모습│ 한겨레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는 약 38만km입니다. 그렇다면 국제우주정거장(ISS)의 고도는 어느 정도일까요?” 대중 과학강연 중 청중에게 물었습니다. 이걸 정확히 대답하기는 쉽지 않으니 보기를 드렸습니다.
① 10~100km ② 100~1000km ③ 1000~1만km ④ 1만~10만km. 청중의 나이가 어릴 때는 비교할 대상을 주기도 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는 8848m로 약 10km죠. 또 지구의 지름은 1만 2800km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몇 번일까요?
청중이 선택한 답은 ④ ›③ › 순입니다. ④번 1만~10만km가 압도적으로 많고 ①번 10~100km를 선택한 분은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하지만 실제 답은 ②번 100~1000km입니다. 400km 정도의 고도에서 움직이고 있죠. 지구 반지름 6400km의 6%에 불과한 높이입니다. 지구를 동전 크기로 그리면 ISS는 동전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려야 할 정도로 지구 표면과 가깝습니다. ISS에 체류하는 우주인들은 둥근 지구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죠.
 
휴식 시간이 보장 안 된 우주인들의 노동
ISS는 저궤도 우주정거장입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ISS가 심(深)우주 탐사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2020년까지만 운영하고 팔아 치울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심우주 탐사에는 적절하지 않지만 그래도 국제적으로 함께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ISS는 그야말로 세계 평화의 상징이거든요. ISS는 냉전 소멸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각각 우주정거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자 소련은 1971년 4월 19일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류트 1호를 발사합니다. 5일 후인 23일에는 소유스 10호가 발사되어 살류트 1호와 도킹하는 데 성공하죠. 이때 해치가 고장 나서 우주인이 살류트 1호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6월 6일 발사된 소유스 11호의 우주인들이 사상 최초로 우주정거장에 진입하게 되죠. 이들은 우주 식물 배양과 같은 실험을 수행한 후 지구로 귀한하다 사고로 모두 사망합니다. 하지만 우주정거장에 사람이 체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죠.
소련의 살류트 우주정거장에 맞서 미국은 1973년 5월 스카이랩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5월 14일 스카이랩 본체를 발사했습니다. 스카이랩 본체는 새턴 V 3단 로켓을 개조해서 한 사람이 2년 동안 생활할 수 있는 보급품을 실었습니다. 꼭대기에는 도킹 모듈이 달려 있었죠. 스카이랩 1호가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입니다. 그 후에 발사되는 스카이랩 2~4호는 1호와 도킹하는 사령선일 뿐이죠.
5월 25일 발사된 스카이랩 2호의 우주인들은 장기간 인간이 우주에 체류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측정하는 임무를 받았지만, 1호와 만나자마자 1호를 수리하고 햇빛을 막아주는 파라솔 설치 임무를 먼저 수행해야 했습니다. 28일 50분간 우주 공간에 체류한 우주인들은 그동안 키가 2.5cm 자라고 심장은 3% 수축했지만 지구로 귀환한 지 이틀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7월에 발사된 스카이랩 3호 우주인들의 임무 기간은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59일 11시간 동안 우주에 체류했고 그사이에 선외 활동을 세 번이나 했지요. 이들은 귀환할 때 장난기를 발동해서 스카이랩 1호 안에 비행복을 사람처럼 곳곳에 세워놓고 왔습니다. 다음 우주인들을 놀려주려는 심산이었지요. 우주인들의 삶은 즐거워 보였습니다.
11월에는 스카이랩 4호가 발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아폴로 19호 승무원으로 내정된 세 명의 우주인이 탑승했습니다. 비록 초보 우주인이기는 했지만 모든 우주비행 훈련을 마친 정예 요원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카이랩 3호보다 25일이나 긴 84일 동안 우주정거장에 체류했습니다. NASA는 우주인들에게 열여섯 시간씩 일할 것을 요구하면서 분 단위의 일정표를 짜주었습니다.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죠. 그런데 예상과 달리 2호, 3호 때와는 다르게 4호 우주인들의 임무 수행은 더뎠습니다. 결국 NASA는 식사 시간과 수면 시간을 줄일 것을 요구했죠. 지상의 다른 우주인들은 무리라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12월 23일에는 우주인 가운데 한 명이 “우리는 휴식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스케줄이 너무 빡빡합니다. 식사 후에 운동하고 싶지는 않아요. 모든 것이 제대로 통제돼야 합니다”라고 하소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NASA의 존슨 우주센터에서 우주인들이 오리온 우주선 모형 안에서 착륙 훈련을 하고 있다.│한겨레

우주인 파업 뒤 수면·식사 시간 보장
하지만 NASA의 관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주인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죠. 5일 후인 12월 28일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상 관제탑과 스카이랩 우주정거장 사이의 통신이 꺼진 것입니다. 지상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우주인들은 맘껏 잠을 자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일부러 라디오를 끈 것입니다. 사상 최초의 우주 파업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주인들은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다시 통신 스위치를 켜고 파업을 중단했습니다. 파업 투쟁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NASA는 분 단위로 활동을 지시하는 대신 하루 단위로 임무를 부여해 우주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통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을 보장했죠. 그러자 우주인들의 미션 수행 능력도 올라갔습니다. 이들은 예정된 임무보다 많은 작업을 소화하고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1973년 12월 28일의 우주 파업 이후 NASA는 우주인들의 업무량을 적절히 정하고 그들의 육체와 심리 상태를 고려해 임무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업이 효과가 있던 셈이죠.
소련이 망하고 냉전이 종식되자 우주에서는 협력이 일어났습니다. 1998년부터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함께 IS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습니다.
ISS는 세계 평화의 상징입니다. 군사적 적대 행위뿐만 아니라 강도 높은 노동과 파업도 없습니다. 우주인들과 지상의 관제탑은 충분히 소통하고 있죠. 거저 주어지는 명랑한 노동 현장은 없습니다. 모두 투쟁의 결과죠.

 이정모_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 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 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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