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 수 있게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로”

2019.12.23 공감 최신호 보기



<위클리 공감>은 문재인정부 2년 반의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과제를 제안하기 위해 12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함께 잘사는 나라,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김현철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가 사회를 맡고 정해구 당시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이태수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정책연구단장,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좌담회를 ‘경제’와 ‘사회’ 주제로 나눠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문재인정부 들어 본격화한 복지정책”
김현철 문재인정부가 사회 분야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과거 정부들과 비교했을 때 문재인정부의 사회정책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정해구 한국이 압축적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는 성공했다고 보는데, 복지국가를 만드는 건 성공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은 11.1%인데 유럽 선진국 대부분은 20%가 넘습니다. 복지비 지출이 절반도 안 되는 거예요. 공공사회지출이 GDP 대비 10%에 도달했을 때를 찾아봤더니 유럽 선진국은 1960년대 초고, 일본은 1980년대 초더라고요. 우리가 일본보다 40년, 유럽 선진국보다 60년 이상 늦었으니 복지 측면에서 한국은 후진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복지정책을 과거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때 시작했습니다만, 문재인정부 들어서 본격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한다든지,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등 복지 부분을 상당히 강화하고 있어요. 여론조사를 하면 가장 긍정적인 게 복지하고 의료 부문입니다. 특히 ‘문재인 케어’라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한 게 만족도가 높습니다. 과거에는 암 같은 병에 걸리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잖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암 환자의 경우 비용이 10분의 1밖에 안 들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복지, 보건의료 부문은 상당히 진전했다고 봅니다.

이태수 문재인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부분이 사회정책입니다. 현대 정상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했는데 워낙 경시하고 등한히 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복구시키고 선진국가의 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의 큰 전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사회정책의 핵심 슬로건으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내세웠습니다. 그랬더니 일부에서 “국가가 어떻게 삶을 책임지겠다는 얘기냐?”며 힐난 어린 비판을 했는데, 국민 삶을 모두 책임지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동안 워낙 각자도생으로 자기 삶을, 자기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면 이제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은 나라가 책임을 지는 현대 복지국가의 가장 고전적인 명제를 표방한 거라고 봐야 합니다. 인생 주기별로 보면, 먼저 아동수당을 새롭게 도입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1921년에 처음 도입한 걸 우리는 거의 백 년 늦게 도입한 셈이죠.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하지만 취업 등에서 열패감을 겪는 청년을 위한 청년수당도 새롭게 도입했고요. 또 기초연금을 인상하는 등 특별한 비용이 필요하거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인생 마디마디마다 정부의 역할을 추진했습니다. 이게 날줄이라면 씨줄은 전 생애에 걸쳐 의료, 주거, 고용, 문화 등을 강화한 정책이겠죠. 이처럼 제도적 씨줄과 날줄로 굉장히 촘촘한 안전망을 만들어두고 유럽 선진국가의 2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사회복지지출(2018년 GDP 대비 11.1%)을 조금씩 확대해 씨줄과 날줄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부가 두세 번만 더 들어서면 개인의 삶이 안정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정부의 사회정책을 각별히 주목하고 있으며, 앞으로 문재인정부가 집요하고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철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와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노동시장 차별과 격차 문제 중심에 둬야”
김현철 정부에서는 좋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은데 늘 입법에 걸려 진행이 더디거나 안 되는 문제를 많이 지적하더라고요. 법률 개정이 안 되니까 시행령을 개정해서라도 추진하려다 보면 원래 취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해구 정당 간 생각이 다르더라도 입법을 하는 데가 국회이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철 앞으로 정부가 이것만은 꼭 해결하거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국정과제는 무엇입니까?

홍장표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차별과 격차 문제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반기에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 문제가 어느 정도 완화됐습니다만, 민간부문에서는 기간제와 계약직이 많이 늘어난 한계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주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공공기관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공공부문이 호봉제를 바탕으로 하는 임금체계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함과 동시에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경영 참여를 종합적으로 다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가는 대표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문재인정부에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 큰 변화의 흐름을 마련해 민간부문으로 전파하는 것이 우리 청년의 미래를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육과정에서 공정 문제가 굉장히 중요”
김현철 정부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칭찬의 소리도 들리지만 아직 체감하지 못한다는 질책도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거든요. 남은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태수 출범 초기 국정과제를 기획할 때는 전체적으로 고르게 배치했지만, 남은 기간에 괄목할 성과를 모두 거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른 걸 후퇴시키자는 게 아니라 예산과 정책 의지를 투여해 국민이 “문재인정부에서 이거 하나만큼은 해결했다”고 확실히 체감할 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정책 분야에서는 어르신의 빈곤과 돌봄 문제가 앞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데, 어르신의 소득에 대한 보전과 돌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가계지출을 줄여주거나 전체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현철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드러났듯 공정과 개혁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공정과 개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정해구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 때 이야기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라는 슬로건에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기회의 평등’을 들여다보면 성장과정, 특히 교육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자원이 굉장히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 진출하기 전 이미 편차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굳어지는 게 대학교 입시 때입니다. 한번 학벌이 만들어지면 죽을 때까지 현대적 신분으로 굳어져버리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공정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둘째, ‘과정에서 공정’을 위해 재기 가능성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대학교 입시 한 번으로 인생이 갈리고 그대로 굳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여러 차례 다시 도전할 수 있게 사회 진출할 때도, 그 후에도 계속 재기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해도 ‘결과가 정의’롭지 않을 수 있어요. 그 부분을 메워주는 게 복지라고 생각해요. 혁신적 포용국가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게 공정이기 때문에 기회, 과정, 결과에 공정을 철저히 반영해야 합니다. 공정이란 화두를 하나의 제도로 따로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정책과 예산에 공정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평가할 수 있도록 공정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장표 국민이 민생에서 공정을 체감할 수 있는 게 갑질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공부문이 일종의 갑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700개 이상의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무수히 많은 중소기업과 사업자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민간부문의 대기업은 그래도 기업 이미지 때문에 갑질 문제에 대해 조심스러운데 공공부문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외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중소업체가 가장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게 납품단가 문제인데,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민간기업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공공부문에도 최저가 낙찰제도가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중소 벤처기업들에 기회를 주고 싶어도, 여전히 거기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공공부문이 모범 사례를 만들어내면 민간부문으로 전파 효과도 크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는 이처럼 국민이 실질적으로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문재인정부가 집중적인 드라이브를 걸어 과감하게 뚫어줘야 합니다. 
 
▶정해구 당시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과 이태수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정책연구단장

“기득권자와 약자가 함께 갈 수 있는 방향 찾아야”
김현철 이번 좌담회 주제가 ‘함께 잘 사는 나라, 혁신적 포용국가’입니다. 이런 나라로 가기 위한 여러 방안이 지금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정부나 국민에게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정해구 함께 잘산다는 건 생각과 주장이 서로 달라도 같이 추진할 터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언론이나 정치를 보면 자기주장만 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너무 없어요. 기득권자와 사회적 약자가 함께 갈 수 있는 방향이 뭔지 고민하는 사회 분위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패러다임 전환은 굉장히 중장기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민은 기다릴 여유가 없기에 단기적 성과를 요구해요. 정책 실행 과정에서 중장기적 안목과 단기적 성과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태수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정책은 결국 정치적 결정이라는 겁니다. 정부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정치의 결정구조랑 정책의 결정구조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책의 결정 과정이 정치의 결정 과정 속에서 표류할 여지가 있어 최근 비례대표제 등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국민 여러분이 삼권분립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정치의 결정 과정과 정책의 결정 과정이 부합하도록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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