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옷에 ‘기부 배지’ 달고 나눔 전파해요

2019.12.23 최신호 보기

▶그린피스 ‘북극곰 배지’

‘착한 소비’ ‘기부 굿즈’ 인기

10월 7일 서울에 사는 양현아(31) 씨 인스타그램에는 북극곰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배지 사진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엔 #그린피스 #기후위기 #폭염 #아마존산불 #플라스틱쓰레기 등의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이는 그린피스(국제환경보호단체)가 진행하는 ‘북극곰 가족의 집을 지켜주세요’ 캠페인 정기 후원자에게 주는 북극곰 배지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 독립영화 관련해 기부 굿즈배지를 모으는 양현아 씨가 그간 모은 배지들| 양현아

나만의 관심·신념 담은 기부 굿즈
양 씨는 “후원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아마존 화재”라며 아마존 화재 기사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그린피스에서 메일을 받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환경문제에는 늘 관심이 많던 편이라 북극곰 배지를 접하기 전 4월쯤 미세플라스틱과 북극곰 관련 문제로 그린피스에 일시 후원을 한 적 있었어요. 그 계기로 그린피스에서 소식 메일을 계속 받고 있죠. 사실 저는 평소 핀배지 모으는 걸 좋아해요. 주로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 독립영화 관련한 배지인데, 이번에 그린피스 후원자들에게 북극곰 배지를 준다고 해서 좋은 수집 기회다 싶었어요.”
양 씨처럼 각자 관심 이슈나 분야에 후원하거나 펀딩에 참여해 팬상품(굿즈)을 보상(리워드) 받는 것도 큰 인기다. 최근 나눔 문화의 열쇠 말 가운데 하나로 ‘기부 굿즈’를 빼면 서운할 정도다.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가운데 ‘전안수 프로젝트’에서 제작한 ‘원배지’ | 아름다운재단

‘이게 뭐냐면…’ 설명으로 이슈 알리미 역할도
배지, 텀블러, 에코백, 마스킹 테이프, 목도리, 머그 컵, 파우치, 달력, 마그넷, 키홀더, 휴대전화 케이스, 책갈피 등 각 굿즈에는 관련 이슈의 메시지가 구호처럼 적혀 있다.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가운데 ‘전안수 프로젝트’에서 제작한 ‘원 배지’에는 헬멧을 쓴 청소년의 옆모습에 ‘원(ONE)’이라는 단어가 작게 새겨졌다. 보육원의 ‘원’을 모티프로 만든 디자인이다. 동그란 유리 헬멧은 ‘원’을 뜻하면서 세상의 편견에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한다. 유리 헬멧을 쓰고 있는 모든 이들이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굿즈다.
기부자는 이렇게 다양한 메시지가 담긴 굿즈로 자신의 사회적·정치적 신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 행태와 기부가 결합한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미닝아웃이란 ‘신념’을 의미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에서 나오다’란 뜻을 지닌 ‘커밍아웃(coming out)’의 합성어로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과 가치관을 소비 행위를 통해 표현하고 이를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노출해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양 씨의 경우 “전용 가방에 그동안 모은 배지를 달고 다녔다. 그러면 처음 만나는 사람도 하나하나 의미를 물어보는데, 그걸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어색함 풀기(아이스 브레이킹)’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개수가 너무 많아져서 핀배지 앨범을 따로 만들어 집에 진열해놓고 있어요. 그리고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해당 이슈에 대해 소개해요.” 그가 보내준 사진에는 매우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배지가 빼곡했다. “일상 속 굿즈가 어떤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면, 그걸 휴대하는 작은 움직임으로 선행을 장려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도 지속적으로 기부 굿즈를 통해 후원하는 것이고요. 후원이 강요의 형태가 아니라 문화적 의미에서 유행처럼 번져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진행하는 ‘골든타임 세이버’ 관련 굿즈 가운데 물병| 세이브더칠드런

청소년, ‘동백꽃 소녀’ 등 배지 디자인 기부도
기부 굿즈 소비를 넘어 기부 굿즈 디자인을 기부하는 흥미로운 사례도 나오고 있다. 배지 쇼핑몰을 운영하는 김영우 씨는 201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굿즈 디자인을 기부받아 제작 및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플랫폼 ‘소녀해방단’을 만들었다. 수익금은 (재)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등에 꾸준히 기부했다. 김 대표는 “이 일을 하며 놀란 점이 청소년 참여가 매우 두드러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앳된 목소리의 학생이 전화를 걸어와 ‘할머니들을 위해 디자인을 기부하고 싶다’고 문의하는 겁니다. 저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어린 학생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실제 재능 기부까지 하려는 뜻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실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백꽃 소녀 배지’ 디자인을 기부한 경기도 화성시 청계중학교 역사 동아리 ‘동백꽃’ 소속 학생들 | 곽윤섭 기자

경기도 화성시 청계중학교 역사 동아리 ‘동백꽃’ 소속 학생들은 최근 김 대표 측에 ‘동백꽃 소녀 배지’ 디자인을 기부했다. 동백꽃의 꽃말 중에 ‘청렴’이 있는 것 처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실도 청렴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디자인한 것. 이 동아리 박솔우 학생은 “할머니들이 내 나이대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사건이라 더 관심이 갔다”며 “학생들이 가방이나 교복, 필통 등에 가장 많이 달고 다니는 게 배지인데 이를 통해 이 문제를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희 학교 기술가정 선생님도 배지를 구매해 옷에 달아주셨고, 여러 학우도 교복 상의나 필통, 가방에 달고 다녀 고맙게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이 배지 사진을 찍어 해시태그를 달아준 분이 꽤 있더라고요. 굿즈를 통해 기부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믿을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수능을 치른 신현고등학교 고아현 학생은 1학년 때 소녀해방단에 ‘찬란한별빛배지’ 디자인을 기부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 금전적인 기부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던 터였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더 많은 분에게 알릴 수 있는 일일 것 같아 디자인 기부를 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부나 나눔이라고 하면 금전적인 걸 많이 생각하는데 이런 방식의 기부도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방식의 기부는 제가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주변에선 잘 모르잖아요. 근데 굿즈는 늘 갖고 다니면서 저 스스로도 기부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기부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좋은 매개인 거 같아요. 요즘 기부 관련 굿즈가 워낙 예쁘게 나오니까 사람들이 ‘이거 뭐야?’라고 관심을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사회적 약자를 도우려는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물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기부가 된다는 점에서 참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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