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사 스트레스’ 저만 그런가요?

2019.12.23 공감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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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기해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송년회 자리가 잦아지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송년회는 가족이나 친지, 직장 동료는 물론 동창, 동호인 등 지인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중한 자리다. 세밑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며 유종의 미를 되뇌고 부지런히 새해 계획도 세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을 돌리고 폭탄주를 마셔가며 지나간 시간을 곱씹는다.
송년회 자리에서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건배사다. 건배사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고 모인 사람들의 기분을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사실 건배 자체를 탓할 것은 없다. 건배는 술자리에서 서로 잔을 들어 축하하거나 건강이나 행운을 비는 동서고금 공통의 관습이다. 미국과 영국은 ‘치어스(Cheers!)’, 독일은 ‘프로스트(Prost!)’, 프랑스는 ‘상테(Santé!)라고 외친다.

우리나라 건배사는 단순히 축하를 넘어선다. 모임 성격에 맞게 진솔한 느낌과 이야기를 전해야 하고 때로는 시대의 아픔이나 사회적 의미까지 담아낸다. 그만큼 한마디의 건배사가 상대방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너나 잘해”(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해), “변사또”(변함없는 사랑으로 또 만나자) 등 세대와 좌우 불문하고 스테디셀러형 건배사는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말주변 없는 사람은 이맘때가 가장 두렵다고 한다. 어떤 이는 ‘후래자 삼배’(약속 시간보다 늦게 온 이에게 세 잔을 연거푸 마시게 하는 술자리의 악습)를 각오하고라도 보통 술자리 초입에 이어지는 건배사 순간만큼은 피하고 싶어 일부러 느지막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아무리 청산유수의 달변을 뽐내는 이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억지로 시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더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두려워 건배사 할 때마다 생각과 말이 따로 놀기도 한다. 막상 건배사를 해야 할 차례가 오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쯤이면 ‘건배사 스트레스’라고 할 만하다. 실제 한 취업 포털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건배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한 사람이 51%에 이른다고 한다.
굳이 건배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압축성장 시대 상명하복 문화의 그늘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연말 쓸데없는 감정노동으로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괜한 헛심을 써야 하는 걸까.

김성철 인천 부평구 십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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