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부터 주 최대 52시간제(이하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중소기업에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또 계도기간 중 최대한 신속히 준비를 해나갈 수 있도록 인력채용과 추가비용 등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현행 제도 아래서 법 준수가 어려운 경우를 해소하기 위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한다.
정부는 12월 1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50~299인 기업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업의 준비현황과 어려운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해 현장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동안 2020년부터 주52시간제가 시행되는 300인 미만 기업에 1:1 밀착지원을 했다.
또 많은 기업들이 교대제 개편과 신규채용 등 방안을 마련하고 정부 지원제도를 활용해 주 52시간제를 준비하고 있으나, 중소기업은 원하청 구조 등으로 인해 자율적인 업무량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탄력근로제 등 보완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나, 정부는 정기국회 종료로 보완입법 통과가 더욱 불투명해졌다면서 불가피하게 잠정적 보완조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50~299인 기업에 1년간 계도기간 부여
이번 보완대책은 그동안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제기된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50~299인 기업에 1년간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해당 기업은 장시간근로 감독 등 단속대상에서 제외한다. 또 근로시간 규정 위반이 확인되는 경우에도 총 6개월의 충분한 시정기간을 부여해 기간 내 기업이 자율개선토록 하고, 시정할 경우 처벌없이 사건을 종결한다.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에도 법 위반 사실과 함께 사업주의 법 준수 노력 정도와 고의성 등을 함께 조사해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이를 참고해 처리하기로 검찰과 협의했다.
계도기간 중 인력채용 등 정부지원 강화
계도기간이란 법을 잘 지키기 위한 시간을 좀 더 주는 것인 만큼, 정부는 이 기간 내에 기업이 최대한 준비를 끝낼 수 있도록 ‘노동시간 단축 현장지원단’과 일터혁신 컨설팅 등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신규채용이 필요한 기업에는 최우선적으로 구인·구직 연결을 지원하고, 각종 정부지원사업도 확대해 신규채용 인건비와 기존 근로자 임금보전 비용 등의 기업부담을 최대한 덜어줄 방침이다. 특히 내년에는 모범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기업 약 500곳을 선정해 장려금을 지원하는 ‘노동시간 단축 정착지원사업’도 신설한다.
아울러 구인난 등으로 채용이 어려운 기업에는 한시적으로 외국인력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는데, 연간 외국인력 고용 총량은 유지하면서 해당 기업에는 총 고용한도를 20% 상향 조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
그동안 주 52시간제는 현장지원 등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 아래서는 법 준수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가령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할 수 있으나,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재해·재난 및 그 밖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총 노동시간 한도가 줄어들면서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을 좀더 폭넓게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정부는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해 확인한 애로사항과 외국의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인명 및 안전 확보 ▲시설·설비의 갑작스러운 장애·고장 등 돌발적 상황의 긴급 대처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적 증가 및 단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나 손해가 초래되는 경우 ▲국가경쟁력 강화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 등이 해당된다.
이에 따라 응급환자의 구조·치료와 갑작스럽게 고장난 기계의 수리, 대량 리콜사태, 원청의 갑작스런 주문으로 촉박한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시적 연장근로 초과가 불가피한 경우 등에도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제도 취지와 노동자의 건강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특별연장근로를 불가피한 최소한의 기간에 대해 인가하고, 사용자에게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적극 지도함으로써 제도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각 부처 소관업종별 지원방안 마련·추진
이번 보완대책에 따라 각 부처별로 업종별 구조적·관행적 문제 개선 및 노동시간 단축 기업 우대, 업종별 주 52시간제 가이드 마련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먼저 제조업은 노동시간 단축 중소업체에 정책자금 및 기술보증을 우대 지원하고, 스마트공장 등 시설설비 구축도 최우선 지원한다. 또 건설업 관련해선 주 52시간제 적용에 따른 인건비 증가가 건설공사 단가에 적기 반영될 수 있도록 ‘표준시장단가’ 산정체계를 개편하고, 현재 훈령으로 운영 중인 ‘공기 산정기준’을 법제화한다.
소프트웨어(SW)분야는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의 SW개발사업 조기발주를 추진하고, 과업변경 시 계약금액 조정이나 지체상금 한도 설정 등의 내용을 포함한 SW표준계약서를 개선·보급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노선버스의 경우 약 3000여 명의 버스운전인력 양성과 신규인력 확보 지원 및 벽지노선 운행 손실금 등의 비용을 지원하고, 사회복지·농식품·문화예술·콘텐츠·관광·스포츠 등 업종별 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300인미만 기업의 여건을 고려할 때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해서는 법률 개정을 통한 제도개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입법이 늦어짐에 따라 불가피하게 보완조치를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 52시간제는 사회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정책과제인 만큼, 정부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현장안착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중에도 국회의 보완입법이 이뤄지면 그 내용을 감안해 보완조치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다. 또 계도기간 종료 시까지 입법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경제 상황과 기업규모별 근로시간 단축 추이 등을 고려해 대책의 추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청연 기자
“중소기업 상황 고려 계도기간 부여”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일문일답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월 11일 발표한 ‘50~299인 기업 주 최대 52시간제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과 관련해 “중소기업들이 1년 반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중소기업 상황을 고려하면 대기업에 비해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맞다”라며 “이 때문에 중소기업에 대기업보다 더 많은 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재갑 고용부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1년이라는 계도기간은 어떻게 마련됐으며 6개월 간 (법 위반을) 적발해도 처벌하지 않는 시정기간은 왜 부여하는 것인가.
=계도기간이라 하는 것은 정부가 단속을 위해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근로감독 대상으로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노동자가 진정을 제기하거나 또는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에는 조사대상이나 수사대상이 될 수는 있다. 주 52시간제를 초과하는 경우, 3개월의 시정기간을 부여하고 추후 개선 여부를 확인한 후 다시 시정기간을 3개월 부여할 수 있다.
-계도기간 1년과 시정기간 6개월을 합해 최대 1년 6개월의 계도기간을 주는 것이 아닌가.
=계도기간을 1년 부여하고 만약 그 사이에 진정이 들어오면 시정기간을 6개월 준다. 그런데 계도기간 맨 마지막날인 12월 31일에 진정이 들어오면 이론적으로 6개월의 시정기간을 줘, 최대 1년 6개월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예상하기는 좀 어렵다. 우선 계도기간이 지나면 감독 대상이 된다. 1년 이후에도 탄력근로제 등 보완입법이 안 된 경우는 다시 정부의 추가 대책이 필요한지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1년 계도기간 끝난 이후 고소·고발이 진행되거나 나중에 적발되는 경우 등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데.
=계도기간 1년 이후에도 주 52시간을 초과하게 된다면 그건 사업주의 고의성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법리적으로 본다면 그때는 처벌대상이 분명히 된다. 그런데 300인 이상 기업의 계도기간을 운영해본 결과, 주 52시간제를 안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300인 이상 기업 중에 이런 사례로 처벌 받은 경우는 없었다.
-주 52시간제 시행 1년 반이 지나고 보완대책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8년 3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이 개정됐다. 지금은 그 당시와 경제·사회적 여건이 바뀌었다. 시행 이후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해서 1년 동안 계속 실태조사도 하고 현장의견도 들어가면서 많이 지도·점검을 해보니 일부 사업장에서는 지금 현재로서는 당장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보완대책을 지금 발표하게 된 것이다.
-특별연장근로 허용 사유 중 업무량 폭증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갑작스럽고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폭증은, 예를 들자면 갑작스럽게 주문 등이 들어와 업무량이 늘어나는 경우다. 이 경우 사업주가 신청을 할때 주문이 들어와 있는 서류 등을 제시해야 한다. 말로만 업무량이 증가했다고는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주문량이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 한해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해주겠다는 사유를 포함했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