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뜨거운 물속에 넣으면 바로 뛰쳐나온다. 하지만 물속에 개구리를 넣고 온도를 조금씩 올리면 뛰쳐나오지 않다가 물이 끓는 순간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다. 무엇이 개구리를 죽였을까? 보통은 끓는 물이 개구리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구리는 뛰쳐나가야 할 때를 결심하지 못해서 죽은 것이다. 스웨덴의 16세 소녀가 9월 ‘유엔(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을 상대로 연설해서 눈길을 끌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다. 그녀는 ‘지금 우리의 지구, 우리 집이 불타고 있으니 당장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때’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항생제 내성 문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금 ‘행동해야 할 때’다.
세균은 항생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형시킨다. 이렇게 바뀐 세균이 항생제에 저항성을 갖게 되면 ‘항생제 내성균’이라고 부른다. 이 균은 사람, 농축산물, 식품 등 감염경로가 다양하고 확산 속도도 빠르다. 사람이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면 치료제가 없어 단순 감염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10가지 위험’ 항생제 내성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항생제 내성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10가지 위험’ 중 하나로 경고했다. 열 가지 위험 중 기후변화와 항생제 내성은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당장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다음 세대에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항생제 내성 문제를 검토한 2016년 영국의 ‘짐 오닐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70만 명이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사망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2050년에는 매년 암 사망자보다 많은 사람이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동안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항생제 내성의 심각성을 알리고 글로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5년 세계보건총회에서 항생제 내성 관리를 위해 유엔식량농업기구, 세계보건기구,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협력을 강조한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2018년 5월에는 항생제 내성 공동 대응을 위해 유엔식량농업기구, 세계보건기구, 세계동물보건기구가 업무협약을 체결해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2018년 11월에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는 아시아 지역 차원의 협력을 강조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항생제 내성과 맞서 싸우기 위한 ‘원헬스(One Health)’ 접근 방식이 강조되었고 정치적 의지, 국제 협력, 다분야 협력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원헬스’ 접근 방식이란 사람, 동식물, 환경의 건강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므로 모든 분야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도 원헬스 접근법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가 참여해 2016년에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마련하고 항생제 내성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품 분야의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가축 사육환경을 개선하고 내성균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더불어 대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를 확대하는 등 항생제 내성 안전관리 정책을 적극 시행해오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성과로 동물용 항생제 사용량 감소와 일부 지표 항생제 내성률의 감소를 꼽을 수 있다. 2011년 배합사료에 항생제 첨가를 금지하고 2013년 수의사 처방제를 도입해 항생제를 신중히 사용하도록 했다. 또 가축 사육환경을 개선하고 축수산업 종사자 대상 항생제 사용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및 홍보를 강화했다. 이런 노력으로 국내산 소고기에서 검출되는 대장균의 테트라사이클린 항생제 내성률은 2008년 57%에서 2018년 25%로 감소했다.
항생제 내성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생산부터 소비까지 식품 공급망 내의 모든 관계자들이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항생제 내성 관리에 쏟은 노력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아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항생제내성특별위원회 의장국으로 선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국제규범 마련을 이끌어가고 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문제 해결 위해 해야 할 일
12월 9일부터 13일까지 제7차 코덱스 항생제내성특별위원회가 동계올림픽이 열린 평창에서 개최되었다. 코덱스 188개 회원국과 219개 국제기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회의에서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이해당사자들이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 지켜야 하는 사항을 정하고 정부 차원의 항생제 사용, 항생제 내성을 통합적으로 감시하는 방법을 주요하게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가축 성장촉진 목적의 항생제 사용 금지와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규범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해소 방법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우리나라는 사전에 온라인으로 회원국 의견을 수렴하는 전자작업반 의장국들, 대륙별 지역조정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절충안을 마련하는 등 의장국으로서 논의를 이끌어나갔다.
특히 12월 9일 개회식에는 테드로스 아드하놈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과 쿠 동유 유엔식량농업기구 사무총장이 영상메시지를 통해 항생제 내성 대응을 위한 국제 공조의 필요성과 의장국으로 기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 코덱스 총회 부의장인 스티브 원, 퍼위야노 하리야 박사가 직접 참석해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항생제 내성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국제규범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중·저소득국들이 항생제 내성 관리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글로벌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의장국으로서 국제규범 마련에 기여했듯 규범을 적용하기 위해 역량 향상이 필요한 국가들을 지원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항생제 내성 국제기구 간 조정그룹(Inter Agency Coordination Group)의 권고사항 중 ‘글로벌 거버넌스 강화’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파트너십 강화’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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