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진에 대응해 확장적 재정 운용 기조를 내세운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512조 3000억 원으로 확정됐다. 총 513조 4580억 원 규모의 정부 원안에서 1조 2000억 원이 순삭감된 512조 2504억 원 규모다. 정부안 대비 9조 1000억 원이 감액되는 대신, 정부안 제출 이후 발생한 현안 대응 소요 중심으로 7조 9000억 원이 증액된 결과다. 올해 본예산 469조 6000억 원보다는 9.1%(42조 7000억 원)가 증가했다.
분야별로는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올해보다 12.1% 증가한 180조 5000억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산업·중소·에너지 분야는 올해보다 26.4% 늘어난 23조 7000억 원이 편성돼 12개 분야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는 올해보다 17.6% 늘어난 23조 2000억 원이 배정됐다. 농림·수산·식품은 21조 5000억 원, 교육 72조 6000억 원, 환경 9조 원, 문화·체육·관광 분야는 8조 원으로 각각 올해보다 7.4%, 2.8%, 21.8%, 0.6% 증액됐다. 반면 공공질서·안전(20조 9000억 원→20조 8000억 원), 일반·지방행정(80조 5000억 원→79조 원) 등 5개 분야는 정부안 대비 줄었다. 국방(50조 2000억 원)은 정부안을 유지했다.
예산안 통과 직후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는 예산을 적기에 효율적으로 집행해 국가의 당면 과제에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원들이 증액해준 (부문인)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변화에 대비한 농업 경쟁력 강화,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환경 개선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SOC와 농림·수산·식품 예산 증액 두드러져
2020년도 예산의 두드러진 특징은 보건·복지·고용 예산과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이 정부안보다 각각 1조 원과 2000억 원 줄어든 반면 SOC와 농림·수산·식품 예산이 각각 9000억 원, 5000억 원 증액된 점이다. 최근 불거진 WTO 개발도상국 지위 변화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 경제활력 조기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한 균형발전 프로젝트 등에 공감대를 형성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정부는 앞서 WTO 개발도상국 지위 변화에 대비해 쌀 변동 직불제 등 기존 7개 직불제를 공익형 직불제로 개편하고 지원 규모도 2000억 원으로 늘렸다. 농어업 재해보험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국가 재보험금 지원 예산을 200억 원으로 편성했는데, 이번 심의에서는 1193억 원으로 증액됐다. 올 한 해 양돈 농가를 휩쓴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방지 투자 예산 역시 정부안이던 3222억 원에서 524억 원 늘어난 3600억 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경제활력 조기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한 관련 예산 증액도 눈에 띈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사업인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관련 예산은 정부 예산안 1786억 원에서 1891억 원으로 105억 원 늘어났다.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는 광역교통망 개선과 노후 SOC 유지보수, 도시재생사업 등을 통해 2018년 이후 침체된 건설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정책이다.
안성~구리, 함양~울산 고속도로 건설 사업도 각각 정부안보다 460억 원, 450억 원이 증액됐다. 도시철도 노후 시설 개량에 들어갈 예산은 929억 원으로 정부안인 566억 원에서 363억 원 증가했다. 올해 414억 원에서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버스 공영차고지 확충 예산은 627억 원으로 정부 예산안보다 60억 원 증가했고, 교통 약자가 대중교통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기 위한 비용은 648억 원으로 정부 예산안인 510억 원보다 138억 원 늘었다.
소·부·장 경쟁력 위해 2.1조 특별회계 신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2조 1000억 원 규모의 특별회계 항목을 신설했다. 소·부·장 특별회계의 운영 시한은 내년부터 5년간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 중심 산업융합 집적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예산은 당초 정부 예산안인 426억 원보다 200억 원 증액된 626억 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전기버스와 화물차에 지원하는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 물량도 대폭 증가했다. 전기버스는 올해 300대에서 650대로, 전기화물차는 같은 기간 1000대에서 5500대로 늘었다.
민생 개선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예산도 크게 늘어났다.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 단가 인상을 위한 유아교육비 보육료 지원 예산이 2470억 원 증액된 가운데 4조 316억 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지원 단가를 월 22만 원에서 24만 원으로 인상한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은 1조 1539억 원에서 1조 2414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난임부부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난임시술비 지원 단가를 최대 110만 원으로 크게 인상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도로에 무인단속 장비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일명 ‘민식이법’이 통과하면서 과속·신호 위반 단속카메라와 신호등 설치에 1100억 원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이날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신규 재정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준비를 서두르고, 지방자치단체 등과 연계한 재정 집행 계획도 세울 예정이다.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으로 규정된 처리 시한(12월 2일)을 일주일 넘게 초과한 만큼 집행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12월 13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2020년 예산 공고안 및 배정계획’을 의결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체 세출예산의 70% 이상을 상반기에 배정해 경제활력 조기 회복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내년도 회계연도 개시와 동시에 재정집행이 가능하도록 재정집행 사전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