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인 일자리를 적극 늘리겠다며 ‘일하는 복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부가 2020년에도 재정을 통해 노인 일자리를 늘린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무엇보다 노인 일자리는 노인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사회참여 활동을 통해 건강한 삶을 이끈다는 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 일자리는 중앙정부의 재정 확대로만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새로운 노인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고, 일자리 사업 수혜자들의 직업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살뜰히 살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의 사례는 눈에 띈다. 제주도는 2012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선정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평가에서 7년 연속 공익활동 및 시장형 분야 우수기관으로 뽑혔다. 최근에는 4732명의 어르신에게 38개 사업의 일자리를 제공해 복지부·한국노인인력개발원 평가 ‘2018년 노인 일자리 사업’ 부문에서 전국 237개 지자체 가운데 대상을 수상했다. 2017년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한 제주도에서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과 공익형 일자리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특히 제주도의 전통문화를 일자리와 연계한 사업들이 이채로웠다.
▶카페 살레에서 어린이들이 떡을 만들고 있다.| 제주시니어클럽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 ‘카페 살레’를 가다
제주시 아연로에 있는 ‘카페 살레’는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의 하나로 2017년에 문을 열었다. 노인 일자리 가운데 특정한 사업체를 꾸리고 수익을 내는 ‘시장형’ 사업이다. 이곳에는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와 제주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장이 함께 자리한다. 카페에서 진행하는 체험교실은 제주 전통음식인 빙떡, 지름떡, 돼지고기적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예약제로 운영된다. 어르신들은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제주 전통음식 만드는 법을 전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알린다. 현재 제주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 10명이 활동하는 카페 외부에는 나무 데크와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어르신들과 제주시니어클럽 임상민 팀장을 2019년 12월 11일 카페 살레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카페 살레 정문
제주 전통문화와 노인 일자리 사업 연계
-제주 전통문화를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한 점이 눈에 띈다.
=임상민 팀장: 사업 아이템으로 제주 전통문화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주다움’을 전하는 것이었다. ‘제주답다’는 걸 활용하면 어르신들에게 따로 교육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것, 먹는 것, 입는 것을 이용해 아이템을 만들었다. 중부발전소에서 취약계층 노인 일자리를 지원하는 기금 공모 사업을 하고 있어 신청하면서 제주 음식, 특히 차롱(제주 사투리로 대나무 바구니를 이름)에 음식을 담아 파는 사업을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미 특허를 냈더라. 그래서 대신 제주 전통음식 체험장을 만들게 된 것이다. ‘카페 살레’에서 살레는 제주 고유의 언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반찬을 보관하는 찬장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다른 지역의 어르신 일자리 사업단에서도 부러워한다. 다른 지자체도 자신만의 특색을 잘 살렸으면 좋겠다. 지역 방송 등에 이 사업이 소개되면서 많이 알려졌다. 다른 노인 일자리에는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장이 거의 없어 반응이 좋다.
이 밖에 ‘고랑몰라’ 사업도 진행 중이다. 고랑몰라는 ‘말로 해서는 모른다, 직접 들어봐야 안다’는 뜻의 제주 사투리다. 이 사업단에는 100여 명의 어르신이 참여하고 있고, 어린이집에 가서 동화를 읽어주신다. 요즘 어린이들이 제주 말을 잘 몰라서 제주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는 사업이다. 30대인 나도 사투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어르신들의 진짜 제주 방언은 못 알아듣는다. 제주도 어린이들이 점점 사투리와 멀어져서 알려주기 위한 일인데 학부모들 반응이 좋다.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의 특징은 무엇인가?
=임 팀장: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 다른 공공형 일자리 사업에 비해 살레는 시장형 사업이라 스스로 수익 창출을 해서 인건비를 가져간다. 또 인건비 외에 남는 수익은 사업체에 투자하고, 교육하고, 사업 아이템을 늘리는 데 쓴다. 공공형 일자리는 참여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책 정리하는 사서, 배식 도우미, 학교 교통안전 도우미, 공공주차장 민원 안내, 주차 관리 돕기, 어린이집 도우미 등이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이에 반해 시장형은 참여자가 적다. 시장형 사업으로는 카페, 공방 등이 있다. ‘카페 살레’와 또 한 곳의 카페가 있다. 예전에 제주도지사가 거주하던 관사 한쪽을 무상 임대해 카페를 열었고, 어르신 바리스타가 근무한다. 시장형 사업으로 어르신 바느질 공방도 운영하고 있다. 공공형 일자리로는 만족을 못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기술이 있는데 막상 이 기술로는 취업이 안 되다 보니 만족을 얻지 못하는 거다. 일자리가 다양하면 과거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데 예산 부분이 어렵다. 시장형 사업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예산이 드니까. 공공형은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어르신들과 연결만 하면 된다. 대신 시장형 사업은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근무 기간이 길고 만족도가 높다.
노인 일자리 하나가 지역 사업단으로 확대
-수익을 내지 않으면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 텐데 상황이 어떤가?
=임 팀장: 연 4000만 원 매출로 손해는 보지 않는다. 시장형 사업단은 자체 수익과 정부 보조금을 함께 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보면 시장형 사업단은 유지가 안 돼서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인식이 예전에는 사회적 약자나 노인이 만들면 사주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맛있어야 하고, 예전보다는 시장이 냉정하다. 판로 또한 힘들다. 그런데 이런 점도 있다. 시장형 노인 일자리가 하나 생기면 파생돼서 사업단이 확장하는 거다.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는 사업단, 지역 영농사업단이 있는데 메밀 등을 수확한다. 이 메밀을 수매해 이곳에서 음식 만드는 전통 체험을 진행하고, 작두콩을 수매·가공해서 차를 만들어 판다. 여러 분야가 뭉쳐서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카페 살레 손님들에게 전수하는 제주 음식 세 가지는 무엇인가?
=박성자: 먼저 빙떡이라는 토속 음식이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음식인데 제주도는 땅이 육지처럼 고르지 않고 투박해 전국 메밀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메밀이 많이 난다. 우리 사업단에서는 밭을 구했고,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거둬 그걸 방앗간에서 빻은 재료를 쓴다. 웰빙 식품으로 빙떡 안에 무를 채 썰어 소로 넣는다. 메밀의 찬 성질, 무의 따뜻한 성질이 잘 어우러진다. 또 다른 음식은 지름떡이다. 지금은 기름떡이라고도 한다. 제사상에 떡을 해서 올리는데 별 같은 판을 제사상 제일 위에 올린다. 후손들이 반짝반짝 빛나라는 의미도 있고, 우리도 하늘의 별처럼 조상을 모신다는 뜻에서 별떡을 가장 윗자리에 둔다. 마지막으로는 돼지고기적인데, 옛날에는 사는 게 어렵고 하니 제사 때 돼지고기를 삶아서 꼬치에 꿰어 올렸다. 제주에서는 돼지고기를 일곱 점씩 꿰어 양념해서 제사상에 올렸다.
▶2019년 12월 11일 제주시 아연로에 자리한 ‘카페 살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임상민 팀장(맨 오른쪽)과 어르신들
“외로움도 없어지고 손님들 보면 즐겁고”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것 같다.
=김금순: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 모두들 모여 같이 하하호호 웃으니까. 나이 들면 외롭지 않나. 여기 오면 외롭지 않고 즐겁다. 손님들이 들어왔을 때 밝은 얼굴 보면 ‘아, 여기서 일하길 잘했다. 보람 있다’ 하고 느낀다. 정말 다 재미있다.
=안인자: 다른 노인들이 우리를 부러워한다. 유치원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장애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온다. 초등학생들이 와서 “할머니, 어떻게 만들어요?” 하고 묻기도 한다. 장애인들이 온 적 있는데,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음식을 만들어보려 노력하더라. 여기서 일하면 유치원생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장애인들에게도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람을 느낀다. 우리가 처음 카페를 차릴 때는 빙떡 체험장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제주 여기저기서 빙떡 체험하는 가게가 생겼다. 그런데 다양한 곳에서 체험한 분들이 “여기가 제일 맛있다”고 칭찬할 때 또 기분이 좋다.
-체험 참여자들에게 설명하거나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서옥순: 제사 때마다 하던 음식이니 (요리에는) 자신 있는데 처음에는 가르치는 게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수강생은 20~30명일 때도 있고 10명일 때도 있다. 상황에 따라 수강생이 모르는 것은 재차 설명해주고, 또 한 번만 가르쳐줘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박성자: 요리하는 법을 서로 배우고 있다. 고기적을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더 맛있겠다’ ‘이렇게 해야겠다’ 의논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지름떡도 옛날에는 돼지기름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콩기름으로 하는 게 낫다고 서로 얘기한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려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낸다. 회의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해보자’ ‘오늘 손님이 몇 명이니 이렇게 분담하고 계획을 짜보자’ 서로 얘기하는 시간이다.
▶제주 전통음식 체험을 하고 있는 참여자들 | 제주시니어클럽
좀 더 낫게, 좀 더 재미있게, 좀 더 맛있게
-시장형 사업이다 보니 어르신들의 자발성이 요구된다. 시장형 사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춘자: 어떻게 하면 한 번 온 분들이 다시 방문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더라. 이런 게 장점인 것 같다. 우리 전부의 사업이라 생각되고, 그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거다. 처음에는 뭐 하나 만들기 어색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좀 더 낫게, 재미있게, 맛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웃고 스트레스도 풀고, 외롭지 않다.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란 무엇인가?
=김금순: 나이 들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다. 노인도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일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날 할 일은 꼭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간다. 작업장 정리도 철저히 하고. 노인이라 일을 못할 거라는 편견보다는 이 같은 장점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글·사진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