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2일 제주시 이도동 변정순 씨 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노케어 참여자 김부자, 이앵춘 씨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한국인들의 부모 부양 가치관과 태도가 급변하고 있다. 부모를 돌보는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인식은 줄어들고 국가와 사회 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커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에 실린 ‘중·장년층의 이중부양 부담과 정책 과제’ 보고서를 보면, 통계청의 2002~2018년 사회조사에서 ‘부모 부양을 누가 담당할 것이냐’는 물음에 ‘가족’이라고 답한 비율이 2002년에는 70.7%였으나 2014년 31.7%, 2018년 26.7%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면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대답은 늘고 있다. ‘사회 혹은 기타’가 부모 부양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2002년 19.7%에서 2014년 51.7%, 2018년 54.0%로 늘어났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대답도 2006년 7.8%, 2010년 12.7%, 2014년 16.6%, 2018년 19.4%로 꾸준히 상승했다.
‘노노케어’는 2003년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시작됐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전통적 가족 가치관이 변화한 것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자녀 세대가 노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앞서 시행된 노인 일자리 사업이 실패하면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해진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돌봄 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가 주목받게 됐다. 현재 노노케어는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권자인 경우 서비스 제공자로 참여할 수 있다.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의 ‘친구 맺기’
사회적 외로움이 화두로 떠오르는 가운데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가 친구를 맺는다는 장점 또한 있다. 정기적으로 1일 3시간, 한 달에 10일 대상자 가정을 방문하는데 어르신 두 명이 짝을 지어 같은 동네에서 노노케어 일자리에 참여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돈독하다.
제주시 이도동에서 홀로 살고 있는 변정순(93) 씨, 그리고 그를 돌보는 노노케어 사업 참여자 김부자(83), 이앵춘(78) 씨를 2019년 12월 12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변 씨는 제주 4·3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오다 노노케어 참여자들을 만나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이들은 종종 변 씨의 집에 찾아와 식사는 했는지, 편찮은 점은 없는지 살핀다. 김 씨는 살아온 이야기, 가슴 아팠던 얘기를 함께 나눈다고 했다.
“변정순 어르신한테 들은 이야기와 어르신 주변 분들한테 들은 얘기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4·3사건 때 할머니는 세 살짜리 조카를 업고 곡식을 쌓아두는 곳에 숨었다고 해요. 올케는 두 살배기 아이를 안고 도망가는데 아이가 울었던 모양입니다. 흉기를 가진 사람들이 아이를 죽였대요. 그런 끔찍한 일, 서러운 일들을 겪고 눈으로 직접 보신 거죠. 또 할머니는 평생 결혼을 안 하셨습니다. 오빠, 부모님, 결혼을 약속한 분 모두 4·3 때 돌아가셔서 긴 세월 혼자 살아오셨대요. 이제 아파서 누워 있어도 주위에 사람이 없으니 걱정스럽죠. 우리가 사흘에 한 번 오지만 안 올 때 혼자 앓아누워도 ‘어디 편찮으세요?’ 물어보는 사람이 없지 않아요? 식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그렇고. 그런데도 할머니는 낙천적이고 꿋꿋하며, 늘 웃으시죠.”(김부자)
▶노노케어 수혜자 변정순 씨
아플 때 병원 함께 가고 말벗하며 지내고
돌봄을 받는 변정순 씨는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청력이 떨어져 곁에 붙어 앉아서 질문과 답변을 이어갔다. 시간이 나면 요즘도 뜨개질을 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취미다. 직접 손으로 짠 양말을 노노케어 참여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변 씨는 “‘이 사람들이 없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노노케어 참여자들은 변 씨가 아플 때 병원에 동행한다. 겨울 독감주사를 맞으러 보건소에 갈 때도 함께했다.
“난 성당에 다니니까 아무도 없을 때는 성경을 읽어요. 1년에 한 권을 다 읽어요. 읽고 또 읽고. 이제껏 네 번인가 다섯 번 읽었어요. 이걸 읽으면 아무 생각도 잡념도 없어지죠. 내가 젊은 사람한테 피해 주지 말고 살아야겠다 생각하는데, 가끔은 오래 산 것이 미안하기도 해요.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니까 살아요. 평생을 홀로 살았는데 잠을 자면 성모님 꿈도 꾸고. 혼자 지내지만 외롭다 뭐하다, 그런 감정을 덜 느끼고 살아요.”
변 씨는 기초연금과 장수 수당으로 받는 한 달 27만 5000원으로 생활한다. 관리비와 건강보험료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는 더 줄어든다. 평생 귤 장사를 하며 모은 돈으로 13평 집을 얻어 기초생활수급 등 추가 지원은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변 씨가 늘 온화하고 밝다며 노노케어 참여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사실 일하다 보면 성격이 다른 다양한 노노케어 수혜자분들을 만나는데 이분은 굉장히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할머니는 되도록 정부나 젊은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세끼 밥을 먹고 살고 싶어 하세요. 그런데 연세가 많다 보니 체력도 떨어지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잖아요? 어떤 분들은 형편이 어려우면 손 벌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분은 그렇지 않아요. 함께 말벗을 하며 지내봐도 늘 마음이 한결같아요.”
또래 어르신 돌보며 활력 얻는 어르신
노노케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독일, 일본 등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70대 후반이지만 어르신을 돌보면서 이앵춘 씨는 오히려 활력을 얻는다고 했다. “젊었을 때 회사를 다녀보기도 했지만 제주시니어클럽은 갈 때마다 마음이 편해요. 가족적인 분위기라서 그런 거 같아요. 시니어클럽 직원들도 참여자들을 잘 보듬어주니 일하는 것도 즐겁고 그래요. 나이 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일할 거예요. 일자리라는 게 꼭 벌이를 위한 수단만은 아니잖아요. 노노케어에 참여하면서 상부상조하니까 기쁘고요. 노노케어 수혜자도 좋지만 우리는 왜 좋냐면, 이 나이에 국가에서 일을 하게 해줘 너무 즐겁죠. 일자리가 있으니 나올 때 화장도 하고 꽃무늬 옷도 입고요(웃음).”(이앵춘)
홀로 있는 시간에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변 씨는 “식사는 배가 안 고프면 안 먹고. 고프면 해 먹고. 저녁에 그냥 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변 씨는 귤 도매상을 하면서 60대 중반까지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제주도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제주도는 2017년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의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한 도시다. 세계보건기구는 세계 인구의 고령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06년부터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Global Network of Age-Friendly Cities & Communities, GNFCC)를 추진하고 있다. 고령친화도시란 나이 드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도시,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살기 좋은 도시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 아울러 건강한 노년을 위해 고령자들이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정부도 노노케어 서비스 차츰 확대
제주도는 2026년에 고령인구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제주의 현재 인구 고령화율은 전국 평균(14.9%)과 비슷하지만, 고령 수준이 다른 지자체보다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주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 공선희 박사가 발표한 ‘제주의 저출산 고령화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친화 환경 조성’ 자료에 따르면 제주 지역 65세 이상 인구는 전국 17개 시·도 중 두 번째지만, 65세 이상 중 85세를 넘는 노인인구 비율은 11.96%로 1위인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인구가 늘면서 2020년부터 노년 부양비(21.4%)가 유소년 부양비(20.4%)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노년 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에 대한 고령인구(65세 이상)비, 유소년 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 100명에 대한 유소년인구(0~14세)비를 말한다.
문재인정부는 홀로 있는 어르신에게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돌봄이 필요한 취약 어르신을 보호하고 있으며, 돌봄 서비스를 지속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안전 확인 외에도 생활교육, 서비스 연계, 후원 전달 등 홀로 있는 어르신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변 할머니가 홀로 살아가는 데 말벗과 돌봄을 제공하는 노노케어 서비스도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글·사진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