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입주 작가 포리스트 스턴스(Forest Sterns)가 그린 저온 유지 장치에 들어 있는 양자 컴퓨터 ‘시커모어’ 개념도
안녕하세요? <공감> 536호부터 우리 삶을 바꾸고 있는 기술과 과학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미래 이야기’ 코너를 맡은 권오성입니다. 첫 칼럼을 쓰는 시점이 마침 2019년을마무리하는 시기였네요.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지난해 가장 큰 관심을모았던 기술에 대한 이야기로 ‘미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무어의 법칙’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라
2019년에도 많은 기술적 진보와 혁신이 있었습니다. 문재인정부도 이른바 ‘4차 산업혁명’ 대응으로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수립·발표하며 대처하고 있는데요. 인공지능을 비롯해 최근 눈부신 정보기술(IT) 혁신의 기반에는 컴퓨터 하드웨어의 발전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1940년대 30톤에 달했던 최초의 슈퍼컴퓨터 에니악(ENIAC)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성능을 지녔다는 점이 단적으로 그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런 발전 경향과 속도를 요약한 법칙이 집적회로의 반도체 소자 밀도가 2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입니다. 연구자와 기업들이 1970년대부터 지속해서 더 정교한 회로를 더 작은 면적에 집어넣는 데 성공하며 지금의 놀라운 디지털 세상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계속될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전통 방식으로는 정보가 흐르는 통로를 원자 단위 밑으로 더 작게 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시커모어의 프로세서 사진│구글
슈퍼컴으로 수만 년 걸릴 연산 200초에 끝내
2019년 이런 한계를 뚫을 가능성을 제시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상황이나 판도를 뒤집는 결정적인 사건이나 사람)가 등장했으니, 바로 구글이 2019년 10월에 발표한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 입증입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컴퓨터 과학자 스콧 아론슨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를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에 비견할 역사적 사건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이 소식은 기술 관련 뉴스를 도배했고 이후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여러 뉴스가 큰 관심거리로 떠올랐죠. 양자 우월성은 2019년 대표적인 기술적 성과로 꼽기에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양자 우월성이란 무엇일까요? 반도체 트랜지스터로 구성된 지금의 컴퓨터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양자 컴퓨터로 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구글은 이번에 만들어낸 자사의 양자 컴퓨터 ‘시커모어’(Sycamore)가 전통 컴퓨터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아이비엠(IBM)의 슈퍼컴퓨터 ‘서밋’(Summit)이 1만 년 걸릴 일을 단 200초 만에 끝냈다고 밝혔습니다. 그 내용은 권위 있는 과학 저널 <네이처>에 논문으로 발표했고요.
양자 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누르는 이유
어떻게 이런 컴퓨터가 가능할까요? 복잡한 원리는 접어두고 핵심만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전통 컴퓨터는 아시다시피 비트(bit)라는 정보 단위로 작동합니다. ‘비트’는 0 또는 1이라는 값을 갖는 단순한 단위지요. 그런데 양자 컴퓨터에서 기본 단위는 양자(quantum) 비트라는 ‘큐비트’(qubit)입니다.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양자역학 세계의 중첩(superposition)이라는 특이한 현상 덕분에 큐비트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큐비트는 또한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양자역학 현상으로 다른 큐비트와 서로 연동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큐비트 n개는 전통의 비트로 ‘2의 n 승’개의 정보를 동시에 다룰 역량이 됩니다. 지수적인 증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복리의 마법’ 등으로 잘 아시죠? 2의 300승만 되어도(즉 300 큐비트만 있어도) 그 수는 우주의 원자보다 많다고 합니다. 양자 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가볍게 누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구글 ‘도발’에 주요 기업들 연구 박차
논란은 있습니다. IBM은 구글의 발표를 즉각 반박했습니다. 자사의 서밋도 이틀 반이면 해당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시커모어가 여전히 빠르긴 하지만 전통 컴퓨터가 할 수 없는(1만 년이 걸린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일을 했다는 의미의 양자 우월성을 달성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시커모어 성능 측정에 별 의미 없는 난수 생성이라는 과제가 쓰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저 연산력을 보이기 위한 목적의 단순한 일을 했다는 뜻으로, 아직도 양자 컴퓨터를 조작해서 우리 삶에 필요한 일(기후변화 연구나 새로운 치료제 개발 등)에 쓰려면 갈 길이 한참 멀었다고 하네요.
논란에도 불구하고 양자 우월성을 이뤘다는 구글의 ‘도발’에 삼성을 비롯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손꼽히는 기술 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미국·유럽·일본 등 각국 정부가 양자 컴퓨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으니, 머지않아 양자 컴퓨터가 전통의 컴퓨터처럼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날이 올지 모릅니다. 전통의 컴퓨터는 여러 혜택 못지않게 해악도 가져왔습니다. 컴퓨터 기반의 사이버 세상이 가짜 뉴스와 집단 극화(신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릴수록 해당 가치관이 확고해지는 현상)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게 한 예이지요. 무서운 성능의 양자 컴퓨터의 미래를 맞이하려면 그만큼 많은 사회적 고민도 필요할 터입니다.
권오성_ 2007년 <한겨레>에 입사해 미래, 과학 분야를 맡던 중 뉴욕 시러큐스대학으로 연수를 떠나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융합 분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인공지능이 사회에 가져올 영향 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미래와 과학>(인물과사상사,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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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