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세계의 불편함

2020.01.06 공감 최신호 보기

▶아날로그 매체 바이닐 누리집 온라인 마켓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독립서점 채그로│채그로 누리집

아침이면 현관 앞에 지난밤 주문한 식료품이 도착한다. 휴대전화로 몇 번의 터치를 하면 집 앞으로 택시가 도착한다. 우편물은 도착하기 전에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도착 시간을 알려준다. 세탁물을 집 앞에 놔두면 며칠 뒤 깨끗하게 세탁되어 다시 집 앞으로 돌아온다. 은행에 가지 않고 통장을 만들 수 있고 대출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광고에서는 이 차가 얼마나 세련되고 잘 달리는지가 아니라 이 차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보일러를 켜고, 주차할 때도 골목 안 목적지까지 정확히 안내해주는 기능들. 음성 인식뿐 아니라 몸짓으로 작동하는 시스템까지, 바야흐로 고객 경험(ux)이 중요한 시대에 모든 서비스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계가 온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소식도 눈에 띈다. 각종 첨단 기능이 도입된 자동차 시장에서 클래식 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전자식이 아닌 수동으로 시동을 거는 오토바이도 인기다. 서점 주인이 책을 추천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동네 서점들도 계속 늘어난다. 원재료의 풍미가 살아 있는 냉동식품이나 ‘집밥’이라 불리는 요리는 여전히 인기가 높다.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 참석이 가능한 독서 모임도 계속 인기를 얻고 있고, 음악 분야에서는 바이닐(아날로그 매체)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귀찮고 불편하다.

21세기에 ‘귀찮고 불편한 것’을 찾는 이유
어째서일까. 사람들은 왜 이 첨단의 21세기에 불편하고 귀찮은 20세기적인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그에 대해선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귀찮고 불편한 것’에 원인이 있을 것 같다.
기술 발전, 즉 테크놀로지는 효율성을 우선 과제로 삼는다. 효율성이란 다름 아닌 최소화된 노동력이다. 그러니까 ‘몸을 덜 움직이는 것’이 테크놀로지의 목표다. 덕분에 인간은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그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그것을 구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21세기가 되자, 몇몇 분야에서는 기능적으로 더는 발전할 곳이 없어진 것처럼 여겨졌다.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독보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질 정도는 아니다. 기술의 속도, 기술의 성취, 기술의 한계가 별로 중요해지지 않은 것이다. 대신 감성적인 면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편리함의 추구는 몸을 주변화한다. 몸의 기억을 지운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몇 번의 터치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고, 세탁물을 맡기고, 택시를 부르고, 근사한 요리를 대접받는다. 이전에는 소수가 누리던 서비스를 대중이 누리게 되었다는 측면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 편리함이 대중적이 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주변에 놔둔다는 생각도 든다. 차를 운전할 때는 주변 상황이나 주차 같은 예민한 부분은 시스템이 보조하거나 대신한다. 대형 마트에 가면 간단하게 끓이거나 데우는 것으로 충분한 간편 요리 제품이 즐비하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고 우리는 돈을 치를 준비만 한 채 각종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가 된다.
하지만 21세기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편리한 서비스는 그것이 내게 오는 과정들을 없애고, 나를 그 생태계로부터 소외시킨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한 부분이 아니라 그저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객체로 여겨진다. 우리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식료품의 모든 공정이 나와는 무관한 것이 된다. 우리 몸이 움직이고 경험하는 모든 데이터가 사라지고, 그러니까 현실감이 사라지고 마법처럼 문 앞에 주문한 제품이 제때 도착하는 결과만 오는 것이다.
과정의 사라짐. 21세기 편리함의 결과는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예로 들면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고, 그걸 찾고, 직접 음반을 가지러 가고, 그걸 가지고 와서 꺼내 듣는 모든 과정에서 내 몸이 경험하는 순간들이, 인공지능의 큐레이션(추천)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빅데이터로 분석된 내 취향에 맞춰 음악이 자동으로 소개된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말거나, 지금 나오는 음악이 누구의 것인지, 어떤 스토리를 가졌는지 알 필요 없이 그저 귀에 들렸다가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데이터 로그에 흔적으로 남을 뿐, 내가 그 로그 파일을 볼 일은 사라지는 셈이다.

▶온라인 마켓 오아시스 누리집

▶차량호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택시 누리집

▶첨단 미래 세단 기아자동차 K5 누리집

불편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
따라서 이런 편리한 세계에서 불편함을 강조하거나 추구하는 서비스들은 바로 그 불편함이 ‘진짜의 무언가’라는 점을 상징하는 것 같다. 우리는 왜 굳이 돈을 내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일까. 혹은 불편함에도 돈을 내야 하는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21세기, 앞으로 미래 사회에서 교류(네트워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네트워크 자체가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네트워크가 제품이 되고, 서비스가 된다. 사람들은 이 네트워크를 위해 돈을 낸다. 현재의 모든 편의 서비스는 바로 네트워크 효과에 대한 비용이다. 호텔 룸서비스 같은 편리한 서비스를 이젠 누구나 돈만 내면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시간을 보장받는다. 빈둥거릴 시간, 혹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
그러나 한편, 이 시간은 또 다른 부류에게는 비용보다 중요한 가치다. 불편함을 통해 각인되는 경험, 불편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 어떤 과정에 대한 감각 등등. 단지 옛날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그 불편함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창작, 식료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이해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음악이든 생필품이든 어떤 산업 생태계의 한 부분에 속해 있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편리할 대로 편리한 세계에서 불편함이란, 그 자체로 리얼리티(사실성)가 될 수 있다. 2020년이라는 상징적인 시기에 ‘편리하지 않은 감각’을 다시 생각해볼 만한 이유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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