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델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주최 국제컨퍼런스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
국제사회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불평등과 불균형은 세계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위기의 징후다.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뒤 더욱 깊어진 불평등의 골은 지속적인 성장과 경제 발전의 토대마저 위협하고 있다. 유엔(UN)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는 불평등 문제의 해법으로 ‘포용적 성장’을 제시한다. 이는 성장의 기회를 모든 계층에게 공평하게 제공하고, 성장에 따른 혜택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누리도록 하자는 정책 방향이자 체계다. 한국이 바로 포용적 성장론에 따른 정책 패더라임의 전환의 시험대에 서 있다. 국제 사회가 권고하는 포용적 성장의 한국적 방식이 바로 소득주도 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위원장 홍장표)는 국제기구의 전문가, 국내외 저명 학자들과 함께 12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 성장’을 주제로 국제컨퍼런스를 열었다. 홍장표 위원장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추구하고 있는 양극화와 불균형의 완화, 이를 통한 균형 잡힌 성장 패더다임으로 전환은 우리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제정책의 화두가 되고 있고 실제로 여러 나라들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OECD가 2018년 5월에 발표한 ‘포용성장 정책 프레임워크’의 첫 번째 사례 연구 대상으로 한국이 채택됐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포용 성장론의 문제 의식은 소득주도 성장의 비전 및 주요 정책과 맞닿아 있어 OECD 의 정책 프레임워크를 통해 소득주도성장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 제언을 듣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리처드 코줄라이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국장
“가계소득 증가 통한 소비 증진이 필요”
‘세계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정책 프레임워크’를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 리처드 코줄라이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세계화와 발전전략국 국장은 “오늘날 세계경제의 포용 성장과 균형 발전, 기후 안정을 제약하는 4가지 큰 흐름(매크로 트렌드)이 있다”며 노동소득 분배율의 하락, 공공지출의 둔화, 생산적 투자의 약화, 그리고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탄소경제의 증가 등이라고 꼽았다. 코줄라이트 국장은 “이런 4가지 트렌드에 제동을 걸려면 충분하고 담대한 정책 전환과 함께 여러 정책들 간 내적 통합성이 중요하고 국제적인 정책 조정과 공조도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경쟁력 증진과 투자 촉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념은 환상이다. 모든 나라가 동시에 해외 수요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임금 억제에 기반한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도 곤란하다”며 “생산적 투자를 촉진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핵심 요소는 견고한 총수요 증대이며 이를 위해 가계소득의 증가를 통한 소비 증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줄라이트 국장은 노동소득 분배율이 1%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이 나라별로 0.2~0.47%포인트씩 높아진다는 UNCTAD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노동소득 분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 조합과 아울러 산업과 기업, 성별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정책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재정 정책과 관련해, 코줄라이트 국장은 국내총생산(GDP)의 3~4% 이내 적자를 감수한 확장적 재정을 강조했다. “2000년 이후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서 재정지출의 승수가 1보다 큰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총수요가 취약한 시기에 재정지출은 민간 투자와 소비 증가를 견인할 수 있는 유일한 외생적 도구”라는 게 그 이유이다. 그는 “민간 투자가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시야에서 이뤄지는 반면에 재정 지출은 공공 인프라, 녹색 기술, 연구개발(R&D) 등 장기적인 성장 기반의 영역으로 자원을 재배치하는 데 유리하다. 또 재정을 통한 공적 이전지출의 확대와 사회보장 체계의 강화는 소비의 안정성을 보장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탄탄한 총수요 기반에도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지가 자르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책자문관
“국민 삶의 질과 행복 증진에 초점 맞춰야”
이번 국제컨퍼런스에서 OECD 관계자들은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정책 기획 단계에서부터 단순한 GDP 성장 지표보다는 산업 전반의 역동성과 효율성 제고, 그리고 국민 삶의 질과 행복 증진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글로벌 가치사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지가 자르닉 OECD 포용성장 담당 정책자문관은 “한국은 1970년 1인당 국민소득이 OECD 평균의 7% 수준이었는데 2018년에는 89%에 이를 만큼 선진 경제권을 추격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며 “그러나 산업과 기업 간 생산성과 수익성의 격차 확대에다 이에 따른 임금과 노동 조건의 양극화를 간과하는 바람에 다방면에 걸친 이중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8년 이후 한국의 소득분배 지표가 개선 흐름을 보이지만 상하위 계층 간 임금과 소득 차이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다”면서 “불평등의 심화에 따른 피해가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취약 계층과 영세 중소기업에 집중되는 현상을 개선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르닉 자문관은 포용적 성장을 위해 OECD가 제시한 지표와 정책 체계를 한국에 가장 먼저 적용한다는 것은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의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에 대한 국제적 지지이자 지원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OECD는 포용적 성장의 방향을 세 가지 기준과 따라 분류하면서 한국의 핵심 정책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사람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공정한 기회를 창출하고 성과 배분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둘째, 기업의 역동성 제고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다. 마지막으로는 정부가 정책 수요자의 요구에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OECD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네크워크를 통한 세계화,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 고령화도 한국의 포용적 성장에 중대 도전 과제로 본다. ‘한국 기업 환경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한 OECD의 키아라 크리스쿠올로 생산성·혁신·기업가정신 과장은 “흔히 시장경제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은 포용성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한국 경제에서는 효율성과 생산성, 포용성 간에 강력한 상호 보완적 관계가 구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특정 산업에서 생산성이 낮고 디지털 기술 활용도가 낮은 중소기업과 저숙련 노동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정책적 지원을 집중하면 전체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까지 높아지면서 포용적 성장의 엔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쿠올로 과장은 “한국의 제조 대기업은 디지털 산업에서도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지만 중소기업은 정보통신기술(ICT) 도구의 보급 수준이 세계 평균에 미달한다”며 “부가가치 창출 기회가 제조업에 편중되어 있는 가운데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선 1등 기업 또는 선도 기업과 나머지 뒤쫓아 오는 기업들 사이의 생산성 차이와 이에 따른 임금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부가가치 창출 구조의 개선과 생산성 향상 노력을 서비스업에 집중하고, 서비스 분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도 잘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면서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보급을 촉진해야 한다”는 게 포용적 성장을 위한 그의 제언이다.
▶아우렐리오 파리소토 국제노동기구(ILO) 팀장
“성장·분배 동시 추구는 경제 위기 극복에 유리”
위기를 겪은 뒤 주요 선진국에서 추진되는 정책도 소득주도성장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름이나 강조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내수 확대와 총수요 진작을 통해 포용적이고 균형적인 성장 패더라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은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아우렐리오 파리소토 국가정책개발팀 팀장은 ‘유럽의 소득 불평등과 포용성장’이라는 발제에서 “프랑스와 영국, 벨기에, 포르투갈 등 유럽 주요국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니계수가 하락하는 등 소득불평등이 완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현상을 두고 높은 세율을 기반으로 한 재분배 정책의 효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사실은 오해다”라고 말했다. 파리소토 팀장의 분석에 따르면, 조세를 통한 분배 개선 효과는 유럽보다 오히려 미국이 더 두드러진다. 성장 단계에서 발생하는 임금 등 시장소득의 불평등을 누진적 세제를 통한 2차 분배로 완화하는 게 미국 방식이다. “반면에 유럽은 적극적 고용 정책과 단체 협상 활성화, 저렴하고 포괄적인 공공서비스 제공 등 사전적 분배 촉진과 과세를 통한 재분배를 혼합한 정책 조합으로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억제함으로써 포용성장을 추구한다”는 게 파리소토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 조합은 경제 위기 극복에도 유리하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포르투갈을 들었다. 포르투갈은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과도한 금융부채 때문에 2010~2011년 극심한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에 빠졌다가 2015년 이후 경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4%로 유럽 평균보다 높고, 실업률은 7.8%로 위기 이전인 2008년 수준을 회복했다.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 정부는 재정 긴축,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 삭감 같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고 구조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화, 직업 훈련 강화, 공공 인프라 투자 확대, 최저임금 적용의 확대와 인상 등 내수 증대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추진한 덕분에 경제성장과 고용 회복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토 펭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포용적 사회 정책은 효과적인 성장 정책”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이토 펭 교수는 포용적 사회 정책이 혁신과 성장 촉진으로 이어진 캐나다 사례를 발표했다. 지난 2015년 출범한 쥐스탱 튀르도 정부는 연방 내각 장관의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양성 평등 정책과 함께,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며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이민자에게 친화적인 다양한 정책을 펴오고 있다. 펭 교수는 “사회적 포용성을 강화하는 캐나다 정부의 정책이 사회 통합과 혁신,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게 여러 실증 연구 결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토 펭 교수는 캐나다 인문사회과학연구위원회(SSHRC) 지원을 받아 젠더, 이주, 돌봄노동에 관한 연구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최근 연구팀은 GDP의 2%를 도로 건설 등 유형자산 투자에 지출하는 것과 보건·교육·직업훈련·사회서비스 같은 사회복지 분야에 투자하는 경우를 비교해 각각의 고용유발 효과를 추정해보면 사회복지 투자의 고용이 유형자산 투자에 견줘 1.4 배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토 펭 교수는 “포용적 사회 정책은 취약 계층의 경제활동 참가를 촉진해 국가 전체의 인적 자원의 개발과 활용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성장 정책이다”라고 강조했다.
글 박순빈 기자
사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